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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05. 2023

[단편] 비로소, 이별 - 전편

뒤를 돌아보다 하마터면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몽롱한 정신으로 따뜻한 커피를 들고 뒤를 채 돌기 전,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상황에 비해서는 그렇게 또 소스라치게 놀란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와의 만남을 한번쯤은 더 갖고 싶다고 마음속 깊이 소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자와 망자가 삶의 시간 안에서 마주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아버님, 아버님, 어쩐 일이세요?”


 “찬이는?”


어제 내가 당신을 산에 묻고 내려왔으니. 이승에서 그는 뼛가루밖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 그가 온전한 모습으로, 그의 삶속에서도 본 적 없었던 생명 가득한 젊은 모습으로 별안간 내게 나타나서는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고 내 아이를 찾고 있다.


왜 아이를 찾는 거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놀라지 않는 게 정답이고, 예의이긴 할까.      


 “찬이는?”

 

 “학교에 갔죠.”


 “........언제 끝나냐?”  

   

 아이는 8시 반에 등교했다. 오늘은 수요일 6교시하는 날이니 1시 반에 끝난다.      


 “아직 두 시간 반이나 남았어요.”


 “밥은 먹고 오냐?”


 “네, 점심은 먹고 와요. 덕분에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편식하는 습관도 조금씩 고쳐지는 것 같고. 아버님은 식사 하셨어요?”      


내가 저승에 있는지, 그가 이승에 있는지 모를 이 상황에서 망자의 식사를 여쭙는 게 과연 적절할까?


하지만 살아생전에도 워낙 식사시간이 칼 같은 분이셨다. 나로서는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인사였다.    

  

누가 말려도 역정을 내며 일만 하던 그의 지난한 시간이 재촉하듯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전국이 잡히지 않는 최악의 전염병으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병원에서 폐염증 소견으로 시내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받고, 병세 악화로 세상과 이별을 고한 그날까지 20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삼일장을 치렀으니 오늘은 그가 가볍게 병원을 찾은 날로부터도 고작 24일째다.


어쩌면 서로가 산자로서 병문안이나 퇴원 후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게 훨씬 더 맥락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개연성을 논리적으로 따지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직접 겪고 목격한 뒤였다. 따박따박 일어난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어젯밤 꿈에서도 부정하지 못했던 터였다.      


지난밤 꿈에서 나는 그와 나의 남편을 봤었다. 어울리지 않을 만큼 탄력 있고 건강한 검은 피부와 까맣고 수북한 머리의 그는 당신의 아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도 나는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다시는 못 볼지 모를 당신과의 만남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꼭 전해야만 한다고,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는 애틋한 부자(父子)의 시간을 끌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병간호를 하는 이십여 일 동안 5kg이 빠질 정도로 못 먹고 못 자고, 아이처럼 울던 남편에게 그의 부고를 다시 전하는 것은 꿈에서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 끝에 다급하지만, 매우 간절하게 “오빠, 얼른 아버님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꼭 안아드려”라고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나의 말이 전해지자마자 그의 모습은 병원복을 입은 앙상한 모습으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그와 남편 모두 알았다.


이미 더 이상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음을. 셋은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고 울었다.


그렇게 나는 잠에서 울다 깼다.       


 “밥은 됐다. 커피나 한잔 다오.”     


찬장을 열어 믹스커피 한 봉을 꺼냈다. 가루만 녹을 정도로 뜨거운 물을 붓고, 휘휘 저은 뒤 흡사 엑기스가 된 듯 진득한 그것에 찬물을 콸콸 부어 머그잔 가득 채워 그에게 내놓았다.


조경일은 길 위에서 밥을 해결하는 일이 많다보니 훌훌 마시는 게 습관이 된 그만의 커피 마시는 방식이었다. 다른 친척들과 밥 먹을 일이 있을 때 후식으로 커피를 내놓으면 나는 항상 그만의 커피를 만들어 따로 내놓았다.      


장례식 내내 둘째 며느리가 할 일은 고인과의 관계성을 떠나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삼일장을 치루면서 매일 커피를 한잔씩 타서 영정사진 앞에 내놓았었다. 그리고 오늘도 커피를 타서 그에게 줬다.       


커피를 마시는 그를 흘깃 살펴보니, 생전 모습 그대로다. 화장할 때 한복을 함께 태웠드렸는데, 어쩐 일인지 한복도 아니고 병원복도 아닌 카라에 인조털이 달린 체크무늬 낡은 돕바와 다소 엉거주춤한 브라운색 기지바지를 아래위로,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아버님 어쩐 일이세요? 가신 줄 알았는데.”     


무방비로 오랜 세월 햇볕과 비바람에 노출된 그의 검고 두꺼운 피부는 탄력 없는 주름 탓에 골이 깊었다. 때문에 워낙 말이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서 표정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가 크게 웃거나 매우 화가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같은 표정으로 밥을 먹거나, 티비를 보고, 잠을 잤다. 나중에는 치매에 걸리시는 건 아닐까, 자식들이 걱정할 만큼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그와 나는 생전에 꽤 다정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였다.


이제와 채근하듯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망자가 산자를 찾아온 지금의 상황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는 나의 아이를 자꾸만 찾고 있다.


나는 그의 며느리이기 이전에, 아이의 엄마였다. 부득이 알아야 그가 내 집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      


 “갔지. 그렇게 갈지 몰랐지만, 막상 또 가야된다니 미련은 없더라.”


정말로 그랬다. 그는 수십 년을 봄, 여름, 가을, 겨울 길에서 일했다. 다사다난한 가족들 모두의 삶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동안 그는 중심에서 묵묵히 균형을 잡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만 하다 병원에 들어갔고, 허무하게 죽음 앞에 서게 됐다.


남은 가족들은 비통하고 안타깝고 억울한데, 뜻밖에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임종 이후 그의 모습은 마치 지나온 삶 그자체로 충분하다는 듯 두려움 없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다.       


‘그러니까요, 아버님. 편안하게 눈 감으셔서 미련은 저희에게만 있는 줄 알았죠.’라는 생각을 삼키고 천천히 주름진 무거운 입을 조금씩 움직이는 그를 가만히 봤다.     

 

 “사람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떠날 사람은 또 미련 없이 떠나줘야 남은 사람들이 오래 마음 아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갔는데 찬이가 눈에 밟히더라. 일하느라 그 귀여운 녀석, 하나 밖에 없는 손자. 학교 가는 것도 못 봤잖아.”     


그는 못 다 쓴 편지마냥 말을 이어나가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그거 하나 보고 싶더라. 찬이 학교 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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