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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1. 2023

[단편] 돌이킬 수 없는. -전편

잠 못 드는 밤, 온라인 타로점이나 볼까 해서 엑스퍼트에 접속했었다.      


무얼 잘못 눌렀는지 엑스퍼트가 속해 있는 상위그룹 지식인으로 연결이 되어 수 십 개의 질문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다.


관심분야를 따로 설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잡다한 분야의 다양한 질문과 도움을 요청하는 글들이 자동으로 실시간 올라오고 있었다.


의도와 다른 상황에 당황했다.


게다가 그 짧은 글들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타인의 내밀한 속내들이 얼핏얼핏 보이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아, 이건 뭐야,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어볼 생각은 없었기에 재빠르게 창을 닫으려 했다.

     

순간 하나의 문장이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대놓고 제목이 "도와주세요" 였으니까.      


안 돼, 감정 소모가 심할 거야, 무시해야 해, 라는 마음과 달리 본능적으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글의 작성자는 중2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반친구들 몇몇이 단톡방을 만들어 자꾸 자신을 초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대 여섯줄 썼다.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단톡방이 있고, 톡방을 나가면 다시 부르고 부르고, 새벽마다 그렇게 하는 일들이 너무 괴롭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사춘기 중학생의 난처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다소 긴박함이 묻어나는 문장들이 쓴 이의 진정성을 활자밖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문장을 읽어내리며 가슴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부모님께 말씀은 드렸나요? 우선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거 같고 담임 선생님께도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을 거......'


몇 자 쓰다가 지우고 창을 닫았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알리세요'라는 뻔한 답을 기대하고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또 그 정도의 답은 내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답을 달겠거니, 했다.


무시하자, 생각은 선을 정확하게 그었지만, 어쩐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귀찮았던게 아닐까.


번거로워질까봐. 내 시간을, 내 마음을 쓰기 싫었던 거 아닐까. 손을 잡아달라는 이의 손을 잡으면 더 깊은 바닥을 보고, 내가 해결해줘야 할까봐 귀찮았던 거 아닐까.


괜히 봤다 싶었다. 무시하라는 마음의 신호에 더 충실했어야 했는데.


자잘한 죄책감이 신발에 붙은 껌처럼 쭉쭉 늘어져 며칠을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검색창을 여는 일만큼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누군가는 댓글을 달고 아이의 도움에 응답했을까. 그래서 아이는 답을 찾았을까.   

    




도현이의 이야기를 들은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 였다.      


회사긴급한 일로 TF팀에 들어간 언니가 새벽에 들어왔고, 나는 현관 번호키 소리에 깨 거실로 나갔다.   

   

"언니, 왔어?"      

"어."     

 

다소 상기된 표정이 어제그제의 피곤한 느낌과는 묘하게 다른 긴장된 분위기를 뿜어냈다.


"요즘 언니 회사에 무슨 일이 있어?" 


자기방으로 들어가는 언니를 뒤따르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모르는 척 물었다.     

 

"도현이가 죽었대."      

"어??????"      


뜬금없는 누군가의 부고에 정신이 바짝 날을 세우며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언니가 이렇게 불쑥, 대뜸 이름부터 얘기하는 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도현이가 누구더라.     


"도현이? 도현이가 누구야?"   

  

"최 팀장 아들."      


"아!!!!!! 도현이! 정말? 왜? 갑자기? 걔가 왜 죽어? 언제?"      


"최 팀장도 방금 와이프 연락받고 올라갔어. 자세한 건 몰라."

 

얼굴도 가물가물, 딱 한번 본 언니의 직장동료 아이. 종종 소식만 전해 듣던 아이. 아이의 부고 탓에 뒤숭숭한 밤을 보냈다. 건너편 방문 너머의 기척도 느껴졌다. 분명 언니도 눈을 감고는 있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발가벗겨진 채 도리질을 당하는 듯 불편한 밤이었다.      




도현이는 올해 15살, 중2였다.      


8년 전 미취학 아동인 도현이를 우리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본 적이 있다.


아빠를 따라 온 최도현. 그 나이 때 보통 남자 어린이처럼 활달하고 천진한 개구쟁이였지만, 또래와 다른 진중함이 있었다.


나를 보며 인사하던 반짝이던 작고 동그란 눈빛이 기억난다. 꼬마 신랑, 어린 선비의 느낌이 이런 걸까. 나는 언니에게 종종 '최 선비'는 잘 지내? 학교는 잘 다니고? 그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 자매는 모두 미혼이었고, 때문에 주변에 아이가 없었다. 일면식만 있을 뿐인 그 아이의 성장과정은 항상 우리 자매의 관심사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엄마, 명문 사립대 박사 출신 대기업 산하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아빠를 둔 도현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영민함이 부모의 기대를 키운 건지, 부모의 기대가 그의 타고난 영재성을 더 키운 건지 모르겠다. 다만, 도현이를 위한 그 부모의 뒷바라지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부부는 신도시에서 가장 핫한 지역의 3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고 있었다. 치밀한 부부에게 아이가 나고 자라면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귀한 아들 도현이가 임대아파트와 같은 학군으로 묶여 H초등학교 배정을 받게 된 것이다.


H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도현이의 엄마는 그 옆 I초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해당 학교 근처에 월세를 구해 위장 전입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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