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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0. 2023

[단편] 돌이킬 수 없는. -후편

“말도 안 돼!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도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서 친구하지 말라는 얘기잖아! 그래도 돼?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고 한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지만, 세상의 많은 집단에는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일도 많다. 남의 일은 별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어쩔 수 없는 '신문에서나 본' '남의 일'일 뿐이다.


딱 한번 얼굴을 봤을 뿐인 내 눈에 아직 어린 도현이의 길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도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더욱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됐다.


소질이 있으니 일찍 영재성을 깨우기 위해,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어렸을 때 아니면 커서는 못해서, 학교 가기 전에 미리, 다른 애들도 하니까..... 이유는 어디에나 있다.


하나하나의 이유는 모두 타당했다. 그 합은 가혹할지라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어, 수학은 물론 음악, 미술, 체육까지. 도현이의 엄마는 수영이 끝나면 바로 바이올린 학원으로 보내기 위해 체육관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픽업을 했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했다고 한다. 늘 주차장에 있다가 그날 처음 수영장이 한눈에 보이는 대기실 창가에 섰고 도현이는 엄마를 발견했다고 한다.


"엄마! 엄마!"


얼마나 반가웠을까. 수영복 바지를 입은 8살 도현이가 엄마를 발견하고 발은 동동 구르며 "나 여기 있어요, 엄마" 양 손을 번쩍 들고 신나게 흔들었다고 한다.


그날 도현이는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에 들어와 옷을 벗지도 못한 채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평소에도 이렇게 집중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엄마가 하나하나 보지 못하니 평소의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눈물이 쏙 빠지는 훈계와 종아리를 내려치는 회초리, 전해듣기만 해도 서러울 지경이었다. 여덞 삶은 어땠을까. 엄마아빠가 세상의 전부인데, 그 세상이 내 삶을 후려치는 그 시간을 그 아이는 어떻게 견뎠을까.

 

“8살짜리가 엄마를 보면 반갑지? 안 반가워? 엄마 보고 반갑다고 좋아하는 게 혼날 일이야?”

“그러게.”

“언니는 그 얘기 어떻게 들었어? 최 팀장이 얘기해? 얘기 듣고 뭐라고 했어, 언니는? 최 팀장도 열 받았지? 와이프랑 싸웠겠네. 그러게 왜 그랬대. 아직 앤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나의 이해를 끝내 구하지 않고 다음으로 상황으로 이어진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던데? 와이프가 자녀교육 야무지게 잘 시키고 있다고.”  

   

이후 도현이는 교육인프라를 풍부하게 갖춘 서울로 전학을 갔다. 최 팀장 부부는 주말부부가 됐다.


서울은 그야말로 넘치는 교육문화 환경에 둘러싸인 곳. 당당히 서울시민이 된 도현이는 월, 화, 수, 목, 금은 다양한 교과를 이끌어줄 유명 학원에서, 토일은 영어 뮤지컬, 음악회,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쉴틈 없는 일정속에 어린 도현이의 시간은 흘러흘러 9살, 10살, 11살, 12살, 13살, 졸업. 중학교 입학. 14살, 15살이 됐다. 그래봤자 고작 15살인 도현이는 엄마가 짠 빈틈없는 스케줄을 군소리 없이 소화해 내야 했다.


16살, 17살, 18살, 19살이 되면 도현이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숨을 쉴 수 있을까. 도현이는 정말 괜찮을까?


나는 문득문득 건너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궁금했다.


어떻게 저 아이는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그릇이 저렇게 크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으니 쉬지 않고 양질의 자양분을 채워주는 걸까. 그래, 아이가 좋아할 수도 있지, 내가 남의 일을 속단할 수는 없지. 내 잣대로 남의 가정은 판단할 수는 없지, 라고 애써 생각의 고삐를 잡았다.


“최 팀장 주말 부부잖아. 금요일 밤 늦게 집에 도착하면 현관에 부러진 회초리가 나와 있을 때도 있대. 그런 건 또 요즘 같은 시대에 어디서 구한건지.”


“뭐????? 애를 때려? 그 순한 애를?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그 얘길 듣고 가만히 있었어?”


“그러지 말라고 하지. 후회한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이한테 잘하라고. 귀한 애를 왜 잡느냐고.”   


"근데, 오히려 그러더라. 내가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는거라고. 진짜 내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는 걸까? 나도 애를 낳으면 그렇게 될까? 이해가 안 되네. 아직."    

 

사랑하는 아이다. 열 달 무럭무럭 자라 건강하게 태어나렴, 간절히 소망했을 내 아이다. 태어나면 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고 싶었을 귀한 아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부모는 그 곁은 빈틈없이 지키며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었을 거고, 엄마아빠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이가 잘 자라면서 처음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마음은 점점 뒤로 뒤로 갔겠지. 이 모든 게 사랑이란 이름일텐데,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함이었을 텐데,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를 야금야금 잡아먹는 줄도 모르고, 원래의 소망을 잃은 채.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도현이의 엄마는 그랬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 있기에 자연히 아들과 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본인의 아이가 비교가 됐고, 비교는 곧 뒤쳐진다는 기분을, 패배의 감정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의 패배가 아니라 내 아이의 패배로 여겨졌을 테다. 오지도 않은 먼 미래의 패배로까지 상상은 퍼져나가 순식간에 도현이의 엄마를 집어 삼켰을 것이다. 참을 수 없었겠지, 아이를 사랑하니까.


엄마아빠가 해줄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뒤쳐질 수는 없지, 라고 생각을 했고 자신의 계획과 아이의 행동을 차례차례 채근했을게 분명했다.  


“말려야 해. 적당히 해야 지. 언니가 좀 말려봐. 그러다 정말 애 잡아. 도현이가 순하고 착해서 사춘기가 늦게 오나 봐. 정말 큰일 나. 저렇게 몰아붙이면.”


“최 팀장은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키우면 방임이라고. 나중에 후회한다고.”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가는 거지. 서로 자기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 생각하겠지, 라고 생각한 채 잊고 있던 어느 날 도현이의 비보를 접한 것이다.      






도현이는 강한 아이였다. 다시 살았다. 멈춘 줄 알았던 도현이의 심장은 응급CPR로 다시 뛰었고, 연이은 조치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심정지가 온 탓에 잠시 뇌 산소공급이 중단돼 경미한 뇌손상이 예상됐다. 일상에 영향을 얼마나 미칠지 모르지만, 아이는 아이다. 그 나름의 회복력은 어른과 다를 테니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의료진도, 전해 듣은 우리도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영민함에 비해 좋고 싫은 것에 대해 의사표현이 불분명했던 도현이는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계속 되는 따돌림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힐 게 두려워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점이 더 안타까웠다. 도현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느낄 무렵, 엄마에게 넌지시 털어놓았다가 "창피하다. 처신을 어떻게 하길래. 교우관계가 엉망이냐. 친구가 널 우습게 보는거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더 이상 도현이에겐 털어놓을 곳, 도움을 청할 곳도, 그럴 시간도,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다 죄인이네. 우리 다 방관자야. 아동학대 방관자.”     

 

다소 착잡한 표정과 목소리로 얘기를 전하던 언니가 깜짝 놀라며 나를 봤다. 이어 황급히 발을 뺐다.    

  

“아니, 뭐 또 그렇게까지 얘길 해. 그냥 애는 애 엄마아빠가 잘 하겠거니 했지. 남의 애잖아.”


“언니! 뉴스에서 이런 사례 봤으면 손가락질 안했을까? 자그마치 7년, 8년 도현이가 크는 걸 봐왔어. 애가 힘들텐데, 우리도 여러 번 얘기하고 생각했잖아. 특히, 체벌은 과하다고 혀를 차면서도 일단 나부터도 아무 행동도, 조치도 안 취했잖아. 남이니까. 남의 애니까.”     


남의 일에 흥분하지 말자, 울지 말자, 한해 한해 나이가 들며 마음먹은 것이 도현이의 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단단하게 세운 나만의 성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남보다 못하지. 남은 겁나지 않지. 관계가 틀어질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하나 건너 아는 사람이니까. 언니의 회사생활이 어색해질까봐. 잘못된 거라고 비판하면서, 지적하면서 그로써 나는 내 할 일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한 거 아냐?"  


언니는 몹시 곤란하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며칠 전, 쓰다만 댓글이 생각이 났다.


누군가 내가 외면한 아이의 도움 요청에 답을 줬을까. 손을 내밀었을까. 그 때 뻔한 얘기라도 쓰던 문장을 마저 완성해서 답을 해줬어야 했어. 최소한 너의 문제를 듣고 있다는 누군가가 여기 한명은 있다는 제스처라도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침묵했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행동하지 않는 비판은 정의가 아냐. 그냥 말 뿐이라고. 아무 것도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아. 말만 하면 뭐해. 바뀌는 게 없는데. 제도가 문제라고 비판만 하면 뭐해? 뭐라도 하나 직접 움직였어야지. 작은 행동이라도 해야지. 우리 다 방관자야.”      


황당해하는, 급습 당했다는 표정의 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서둘러 포탈사이트를 열었다. 아이를 찾고 싶었다.


내가 방관한 그 아이의 도움 요청에 누군가는 답을 달았는지, 나는 확인해야 했다. 1분에도 수십 개가 쌓이는 질문 속에서 며칠 전 아이의 흔적은 묻혀도 너무 깊이 묻혔다.


카테고리 내 검색어를 구체화했다.


‘단톡방’, ‘도와주세요’.


소용없다. 아이의 질문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찾을 수 없다. 때를 놓치면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가 있다. 그 아이가 그랬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어느 곳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깊은 밤. 어디에도 털어놓 수 없어 익명성을 빌려 내게 도움을 요청했던 어떤 손을 나는 못본 채 했고, 때문에 그를 잃었다. 그를 찾을 수 없다. 무엇도 이제 알 수도 없다. 때를 놓쳐서.   


이렇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핑계가 되어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나는 또 잊겠지.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저 편해질 거야.


성인이 되어 종종 맛보는 씁쓸한 기분이 오늘은 참기 힘들게 마음을 괴롭혔다. 심하게 긁힌 상처 위로 과산화수소를 부을 때 일어나는 거품처럼 요란스럽게 보글보글, 부글부글. 그렇게 따갑고 아팠다.  


   



도현이는 일반실에 옮기면서 심리치료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학교를 그려보라는 말에 천천히 펜을 움직여 네모난 건물을 그렸고, 안도 밖도 어둡게 어둡게 덧칠했다. 집은 어때? 집도 그려볼까?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단순한 모양의 집은 창문조차 없었다. 지켜보는 마음이 못견디게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만, 그만해도 돼, 라는 말을 할 때까지 도현이는 덧칠을 했다.


거기에, 사람은 없니? 라는 말에 도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도현아, 도현이는 이제 학교를 가고 싶지 않니?라는 말에는 답이 될만한 어떤 말도,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그럼, 도현아. 도현이에게 필요한 게 있을까? 도현이한테 지금 뭐가 필요할까, 라는 말에 다시 천천히 움직여 사람을 그렸다. 세 명이었다. 그 셋의 가슴엔 하트가 그려졌다. 이내 밝은 빨강으로 채워졌다.  


나를 도와줄 사람, 나를 믿어줄 사람, 나를 안아줄 사람.


도현이는 얼마 뒤, 퇴원을 했고 최 팀장은 휴직을 했다. 서울의 집도, 이곳의 집도 모두 내놓았다고 했다. 최 팀장과 와이프, 도현이는 제주로 간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 거야. 승승장구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최 팀장 가족 모두. 회복될 때까진 거기서 머무를 거 같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언니와 달리 나는 도현이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길 바라지 않는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상처가 아물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내지 않길 바랐다. 어른스러움을 버리고, 조금 더 아이답게 어리광을 부리길 바랐다.


사람은 원하는 것을 하나 얻으면 하나 더 얻고 싶다. 영원히 하나를 얻지 못하면 그 하나를 바라보며 산다. 그것만이 소망이 되고, 그래서 행복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행복하게만 자라다오, 그 바람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살 수 있을 것이다.


도현이는 영민하게 굴어야 한다. 착한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완전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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