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엘리어트 review] 빌리가 되지 못한 나의 이야기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났던 영화. 복싱화와 글러브가 아닌 발레화를 목에 걸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길에서 춤을 추던 빌리. 빌리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자유롭게 움직이던 그 몸짓과 행복한 표정을 기억하는가? 눈을 감아도 빌리는 여전히 도로 위를 무대인 양 발레를 선보이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다.
빌리의 행복이라. 나는 빌리가 행복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빌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은 누구였을지에 대해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링 위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발레를 하고 있던 빌리는 그곳에 눈을 떼지 못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곳에 스며들어 선생님을 따라 하고 주변 친구들을 따라 한다. 그 도전이 빌리는 과연 쉬웠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남자가 무슨 발레냐며 소리치던 아버지 재키의 말을 살짝 빌리자면 그 당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여자'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발레라니. 수백 번 되짚어보고 고민한 끝에 발레에 입문했을 빌리를 생각하면 현재의 나로선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결국은 발레를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 발레단을 이끄는 무용인이 되었으니 빌리의 행복을 이끈 사람은 가히 빌리 자신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물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빌리는 발레라는 것을 위해 수많은 산을 넘는다. 남자면 복싱이라는 아버지 재키의 말이 첫 번째 산으로 발레학교를 가기 위한 돈 마련, 시위를 하는 아버지와 형에 대한 미안함. 그것들이 모두 빌리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산마다 넘어가기 위해 소요된 시간들이 모두 달랐지만 결국 빌리는 그 산들을 넘었다. 발레를 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자락엔 발레가 자리하고 있었고 포기란 빌리의 진실된 마음이 아녔으니 가능했던 일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관계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영화 속의 세계도 우리의 세계를 담고 있으니 관계없이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어렵다. 빌리엘리어트를 보면서 따뜻했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첫 번째, 윌킨슨 선생님과 빌리. 빌리에게 선생님이 있었기에 발레를 배울 수 있었으며, 발레학교를 알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빌리에게 멘토이자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이 없었다면, 발레를 하고 싶어 슬그머니 꼈는데 돌아가라고 소리쳤다면, 돈 없다고 빌리를 돌려보냈다면?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빌리라는 남자아이를 존중했기에 빌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빌리가 발레학교로 가기 전 선생님을 향한 마지막 작별인사에도 한없이 차가웠던 선생님은 조용한 체육관에서 쓸쓸하게 빌리의 빈자리를 느낀다. 어쩌면 빌리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 번째, 아버지 재키와 빌리. 평생을 한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광부로 살아오던 재키에게 발레를 하는 빌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들이었을 것이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시위하거나 빌리에게 화를 내는 모습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화나 침묵보다 무서운 빌리의 춤은 재키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돈 없는 집안의 재능 많은 자식은 불효자다'는 이제열 님의 왓챠 코멘트처럼 가난한 광부 재키에게 재능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빌리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자식이었으리라.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를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조금은 엿볼 수 있던 관계였다.
빌리는 혼자 성장하지 않았다. 꼬리를 물고 늘어난 관계들 속에서 성장했고, 그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 한, 두 명의 인정이 아니라 빌리를 알고 대하는 모든 이들의 인정을 스스로 싹틔웠다. 누군가는 마이클과의 관계가 좋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할머니와의 관계가 좋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비중 차이는 있는 것이 맞으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화 세상 속에서 빌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이 각각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주인공이 부럽다니. 정해진 러닝타임 동안 기승전결의 구조로 완벽한 삶을 사는 캐릭터가 부럽다니 조금은 부끄러운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정말 빌리가 부러운 것을. 하고 싶은 것을 자신 있게 밀고 나가는 진득함도 나아가는데 주어지는 고난들도 직접 부딪히며 해결하는 능력도,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없는 편이니 말이다. 빌리가 발레리노가 되고 싶었고 발레리노가 된 것처럼, 나도 꿈이 있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매 순간마다 높고 낮은 산들과 넓고 작은 강들이 존재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믿음이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춤을 한 번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좋고, 새처럼 날아갈 것 같고, 전기가 오는 것 같아요"라는 빌리의 말처럼 나는 어떤 걸 할 때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영화 속 주인공 빌리를 부러워하며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니, 값진 경험 중 하나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꿈을 이룬 빌리가 부럽진 않은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