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못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2+3+2=7
중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길었던 7년간 나는 노래와 함께 살아왔다.
난 본연 노래를 즐기지 않았을뿐더러 음정에 대한 이해도 남들보다 떨어진 아이였다. 흔히 남들이 갖고 있는 평균 정도의 음감도 나에게 있지는 않았다. 피아노를 어렸을 때부터 배웠었는데 몇 년을 배워도 계속 바이엘에 머물러 있었고 악보와 다르게 계속 다른 음을 치는 나를 보는 선생님은 괴로우셨는지 종종 내 손등을 때리고는 하셨다. 나보다 늦게 피아노를 배운 남동생이 나를 금방 앞섰던 것은 내가 음악의 이해가 떨어진다는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진로를 한창 고민하고 있는 어느 날 이런 나에게 교회의 목사님께서 "너는 노래할 때 목소리가 고우니 성악을 해보는 게 어떠겠니? 분명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성악을 권유했고 나 스스로도 '지금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을 들이면 분명 크게 성장해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미래에 있을 차디찬 현실을 알지 못한 채 희망찬 미래만을 꿈꾸면서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특기가 춤추기였던 나는 노래 부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아 했다. 내가 내고 싶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선생님의 가르침 또한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았을 때가 많았다. 선생님은 "복식 호흡을 쓰면서, 음이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보렴." 이 처럼 설명을 해주셨는데 '자연스럽게'라는 말은 애초에 생각할게 많은 성악에서 인위적이지 않게 부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또한 선생님이 말씀해준 느낌과 내가 받아들인 느낌이 일치해 소리를 올바르게 냈을 때에는 레슨 때 일뿐 혼자 연습할 때는 그 느낌이 금방 사라져 버렸기에 다음 레슨 때 몇 번이고 똑같은 소리를 반복해 듣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정말 성악가의 정수라는 '득음'에 대한 열망이 컸다. 실기적인 부분이 급성장하지 않으므로 이론적인 지식을 빠르게 늘리고자 성악에 관한 전문 서적들 유명한 성악가들의 비디오 등을 보면서 지식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이론적으로만 빠싹 했던 걸까 실전에서는 이러한 지식들이 나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것 같았고 현실과 괴리가 점점 커져갔다. 노력하는 만큼 그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점점 나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같은 학년의 어떤 여자애는 유명한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다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저 아이는 소리를 저렇게 멋있게 내네, 나는 왜 발전이 없지'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에 나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질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서 그 기회를 얻고 싶었다.
입시생들은 대학 실기 시험 1-2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며 심사위원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입시생들은 그래서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그런 무대, 입시장과 똑같은 컨디션으로 구성된 무대에 자주 서면서 감을 익히려고 한다. 나도 예외가 아녔기에 입시 평가장, 교회 무대 등 가리지 않고 섰다. 관중,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나의 노래에 대해 신랄하게 실시간으로 평가를 해준다. 지루하다는 표정, 걱정된다는 표정, 눈을 밑으로 깐 표정 등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표정은 오로지 보호막 없이 몸통을 관통되는 느낌이었다. 그거는 그럴 것이 정확하지 않은 음정, 탄탄하지 않은 발성, 스무스하게 흘러가지 않는 프레이즈로 노래를 부르면 어떤 곡이든 시원찮은 게 당연한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말이다. 나름 이걸 전공으로 한다고 하는데 어떠한 대책 없이 갑자기 대학 가기 전에 진로를 바꿀 수 없었기에 이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어디서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입학을 했었다.
입학 후 동기들을 두루두루 보게 되면서 아 이 대학은 우리들의 가능성을 보고 뽑아줬구나 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 된 동기, 배운 지 8년이 돼가는 동기 등 정말 다양했고 실력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사람들이 간혹 성악과는 모두 노래를 잘 부르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고 하지만 학기마다 하는 정기연주회 '위클리'를 방문해 보면 사람들은 '아니, 내가 불러도 저것보다 훨씬 잘 부르겠다'라는 생각들을 할지도 모른다. '아니, 쟤는 어떻게 학교에 들어왔지'부터 '쟤는 성악으로 직업을 갖기는커녕 지금 이 시간들이 인생의 낭비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데' 하는 애들이 참 많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럼 나는 어떻겠는가. 나는 성악으로 밥을 먹고살 수 있을 것 인가는커녕, 내가 저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또한 이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지금 흔히 말해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내가 잡고 있는 '학연'이라는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그럼 새로운 환경은 다르겠지 싶어 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님께서 "너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니 이걸 잘 가공하면 분명 너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하시는 말에 용기를 가져 '아직 나의 때가 도달하지 않았다. 곧 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만약 여기서 떨어진다면 더 이상의 나락은 없을 것 같았기에. 부모님의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과 모든 열과 성을 다 바쳐 일 년을 준비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후일담으로 나의 실력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미래에 있을 나의 불합격을 알고 있었음에도 묵묵히 등을 밀어줬다는 것이다. 애초에 몇 년간 잘 풀리지 않았던 노래가 일 년 만에 급성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교수님께서 그렇게 봐주셨어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10년 20년간 보이지 않을 미래에 걸었을 때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7년이라는 노력 그리고 시간과 돈은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나의 자존감, 배움의 의지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그동안 주변의 소리에도 아직 나의 진짜 실력이 발현되지 않은 거라고 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득음을 할 거라는 그런 희망이 있었는데 떨어지고 나니 '이번 생에는 어렵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난 거기서 스톱을 외쳤다.
그때의 난 어디를 가면 '성악을 전공한다'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했다. 사람들은 잘하는 정도의 기준을 갖고 있고 난 거기에 충족시키지 못하니 그들의 실망감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성악 전공했다면서 이 것 밖에 못해? 내가 해도 이것보다 잘하겠다"라는 눈빛들은 그동안의 했던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어서 마치 수천 만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도 과거와 달라진 것 없이 노래하는 자리는 피하는 편이고 성악했을 때 기억이 미화될 때면 불렀던 노래의 녹음분을 듣거나 하면 보통은 그 감정은 바로 사그라드는 편이다. '아 이래서, 내가 그만뒀지. 난 역시 노래는 아니야.' 이렇게 현실을 깨우친 곤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노래 못하는데 전공을 했지 궁금해 하지만 전공자들인데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들은 은근히 많다. 노력을 안 해서 못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럼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나처럼 효율성이 정말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연습 100퍼센트 투자에 실력 0.5 퍼센트 상승처럼 말이다. 항상 불만이었던 것은 음악은 연습하는 만큼 비례해서 성장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좀 실력이 올라간 것 같은 날 다음날에 다시 노래를 불러보면 실력이 다시 후퇴를 할 수도 있는 신기한 세계라는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는 성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뒤편에 있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라고 해두자. 분명 저렇게 빛나는 사람과는 반대로 나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거 말이다. 한정되어 있는 화려한 무대에 모두가 설 수는 없겠지만 개 개인의 작은 무대는 다들 있을 것이다. 학원 음악 선생님, 유치원 음악 선생님, 그리고 00구 센터의 음악 강사님 모두가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고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게 진정한 행복임을 아셨던 분들 그분들 덕분에 우리 모두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친근 해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던 것이 이제야 하나둘씩 보인다. 나는 오직 경쟁과 현실적인 부분에만 포커스를 맞춰 무너졌지만 그분들은 음악의 진정한 의미 '즐거움'을 터득하여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계시는 것처럼 말이다 투자한 만큼 결과가 비례하게 나오지 않음에도 그 길을 꿋꿋이 지켜나가면서 사시는 끈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가장 인생에서 빛날 때 노력한 어떠한 일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그럼에도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게 되면 과연 나도 그들보다는 아니지만 음악과 함께 여생을 보내게 될까.
성악과 지독한 첫사랑은 짝사랑은 끝나버렸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 다시 첫사랑을 돌이켜 볼 때 슬픔과 후회보다는 행복과 즐거움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잘 가 내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