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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Aug 05. 2022

28. 기내식 먹으려고 비행기 타는 건 아니지만

Day 9. 2022년 3월 30일 수요일

시드니 공항 → 싱가포르 창이공항

 시드니로 올 때 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뒤척인 엄마는 돌아가는 비행기 자리는 한번 제일 뒤쪽 가운데 자리 세 개 가운데 복도쪽 두 자리를 찢어서 예약해 보라고 했다. 시드니로 올 때 비행기 자리가 꽤 찼었으나 가장 뒤쪽 가운데 자리는 나름 비어 있어서 거기에 눕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차피 복도쪽에 앉는 거라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예약했고,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우리 사이의 자리는 아무도 예약하지 않았고 내 왼쪽의 창가 두 자리와 그 앞 세 자리도 비어있었다. 

 해가 지고 밖은 어둑해졌다. 우리가 있는 내내 징하게 오던 비는 가는 마지막까지도 창문을 타고 추적추적 내렸다. 그렇게 우리가 탄 지 30분쯤 지나 싱가포르행 SQ242편이 이륙했다. 창가로 보이는 시드니의 불빛들은 점점 멀어졌고 그렇게 얼마지 않아 구름이 가득한 하늘 위를 비행했다. 

 하늘로 올라오자 비는 사라졌고 이상하게도 저 멀리서 해가 다시 나타났다. 시간이 빠른 쪽에서 느린 쪽으로 이동해서인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공항에 있느라 놓친 마지막 일몰을 그렇게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가서인지 체감상 꽤 오랜 시간 동안 일몰을 보았다. 비행기에서 노을을 그렇게 오래 본 것도, 그렇게 예쁜 노을을 본 것도 처음인 듯했다. 인간은 아무 의미 없는 현상에 의미를 담고 해석하며 추억을 한다. 내게는 그 노을이 졸업 여행의 엔딩 크레딧인 듯 느껴졌다. 

해가 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해가 완전히 지고 나니 기내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곧 기내식이 나올 것이라는 의미였다.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기내식이 너무 맛있다. 정말 그냥 일상 밥 보다 더 맛있다. 기내식 자체가 맛있는 건지, 기내에서 먹는 제한된 음식이기 때문에 맛있는 건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기내식 특유의 아주 뜨거운 음식의 온도를 좋아한다. 나는 치킨과 볶음밥을 골랐다. 그리고 운전하느라 마시지 못한 맥주도 요청했다. 승무원이 가져다 준 싱가포르 맥주 타이거 라거를 플라스틱 컵에 따르고 치킨 한 조각을 먹었다. ‘이거 먹으려고 내가 비행기 탔나?’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치맥은 못 참기 때문에 맥주도 한 모금 마셨다. 특정 음식을 먹으려고 식도락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들을 깊이 이해했다.  

이걸 먹으려고 비행기를 탔나 하는 생각이 들게했던 기내식. 최고의 맛이었다. 

 자리 여유가 있으므로 시드니로 올 때보다는 편안하게 잠들었지만, 워낙 예민한 편이라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싱가포르 도착 시간이 자정 즈음이므로 잠들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차를 고려하지 못했다. 싱가포르와 시드니의 시차는 3시간으로 우리는 그곳에 시드니 시간 새벽 3시가 넘어 도착하는 셈이었다. 저녁을 먹고 얼마 후에 불이 꺼졌고 나를 제외한 승객들은 쉽게 잠드는 듯 보였다. 엄마도 넉넉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잤다. 나도 얼마지 않아 잠들었다. 


 분주해진 듯한 소리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선잠에서 깼다. 엄마를 보니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불은 여전히 어두운데 승무원들이 기내식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시간 밤 11시, 시드니 시간 새벽 2시였다.  

 “치킨랩과 ***중에 뭘 드시겠어요?” (너무 졸려서 다른 메뉴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둘 중에 뭘 먹을지 보다 먹을지 말지에 대해 고민했다. 난 여전히 너무 졸렸고 썩 배고프지도 않았다. 

 “치킨랩으로 주세요.”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싱가포르 공항 8시간 노숙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치킨은 저녁으로 먹어서 다른 메뉴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고기 쪽이 더 배가 든든할 것 같았다. 장거리 비행은 두 번 이상은 밥을 주는데 꼭 한 번은 뜬금없는 시간에 밥을 준다. 이상한 건 그 시간에 밥을 줘도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남김없이. 


 현지시간으로 자정을 넘긴 지 얼마지 않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구역으로 나오니 이미 우리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의자든 공항 바닥이든 한 자리씩 차지하고 본격 하룻밤 노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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