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동남아시아 이야기를 적게 되었는가

by Yan

‘왜 이제야 이 이야기를 꺼내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7년간 베트남에 주재하며 동남아시아 전역의 소싱 상품을 총괄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땀을 흘리며 현장을 누볐고, 수많은 시장과 유통망,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했다. 그 시간 동안 동남아는 내게 ‘일터’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낯설었던 문화가 익숙해지고, 언어의 장벽 너머에서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졌을 때, 나는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이 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데 망설였다. 나에게는 조금 더 그들과 부딪히며 지냈다면 좀더 본질에 다가갔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보며 나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보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겠다. 그러기 위해 이 글을 쓰려 하는 것이다.


7년. 그 시간들이 단지 ‘업무의 경험’이 아닌, 나의 삶을 형성한 중요한 조각들이었다는 것을 깨달고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태국은 내게 ‘비즈니스의 완성도’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나라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자국 내 생산 비용 상승을 피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생산 기지를 이전했고, 그중 태국은 가장 중요한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그 영향은 지금도 태국 산업 전반에 깊이 남아 있다. 태국 파트너들과의 협업은 시스템과 의사결정 방식에서 일본식 정교함을 엿볼 수 있었고, 비즈니스의 질적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동남아시아 안에서도 태국은 분명히 한 발 앞선 곳이었다.


반면, 베트남은 정서적으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교문화의 뿌리를 지닌 나라. 집단보다는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 손윗사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정 많은 성정까지… 나는 그들과 대화할수록, 마치 1980~90년대 한국을 마주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젊은 세대는 대담했고, 개방적이었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체감 속도로 실감하게 해준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다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라였다. 천연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은데, 어딘가 그 가능성이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랜 식민 지배의 영향일까. 행정과 사회 전반에 남은 불투명성, 계층 간 거리감, 정체된 도시 인프라는 아직도 그 시대의 상흔을 간직한 듯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 숨쉬는 시장의 활기,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했다.


말레이시아는 좀 달랐다. 한눈에 느껴지는 도시의 정돈감과 질서, 높은 국민소득 수준은 확실히 영국 식민지였던 영향이 크다. 쿠알라룸푸르를 걸으면, 고급스러운 빌딩과 잘 정비된 도로, 그리고 시스템화된 도시 기능이 동남아의 다른 도시와는 결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화교 커뮤니티의 경제적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그 힘은 유통 구조와 기업 생태계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필리핀은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나라였다.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일 정도로 언어적 개방성이 높았지만, 기반 시설은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시내 중심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오래됐고, 물류와 유통망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 수준은 높지만, 산업 기반은 허약했다. 외국계 기업들이 인재는 찾지만, 시스템을 구축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하고, 웃음이 많았다.


무엇보다, 동남아시아는 그저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이 잃어버린 어떤 인간적인 온기를 느꼈다. 삶의 결이 느리지만 다정했고, 경쟁보다는 공존이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려 한다. 동남아의 역사, 민족, 문화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이야기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또 하나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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