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참혹한 전장과 팔레스타인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묻게 된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질문을 살짝 비틀어 보고 싶다.
“이러한 사태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인가, 아니면 거대한 결정론의 일부인가?”
이 질문은 철학자들의 오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철학이 아니라 과학, 그것도 양자역학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어쩌면 현대 과학이 고통과 책임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전물리학: 결정론의 정수
뉴턴 이후 물리학은 세상을 원인과 결과의 사슬로 이해해왔다.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 수 있다면, 미래의 모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것이 고전적 결정론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뇌도 화학적·전기적 신호의 복잡한 집합일 뿐이며,
결국 우리가 내리는 '결정'도 이미 예정된 결과에 가깝다.
히틀러의 선택, 푸틴의 명령도 어떤 조건과 자극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도덕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자유의지가 없다면, 죄도 용서도, 정의도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한 개념일 수 있다.
양자역학: 불확실성이 틈을 만든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등장은 이 결정론적 세계관에 금을 냈다.
전자, 광자 같은 입자들은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확률"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조차 세계는 불확실하게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 불확실성이 인간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미리 정해진 로봇이 아니라,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양자역학과 뇌: 의식의 새로운 실험실
여기서 흥미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와 신경과학자 스튜어트 해머로프는
뇌세포 속의 미세소관(microtubules) 이라는 구조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 미세한 공간에서 양자적 중첩이나 얽힘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의 물리적 기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단순한 전기 신호의 흐름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 법칙과 연결된, 양자 수준의 현상일 수 있다.
즉, 우리 뇌는 무작위성과 확률적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선택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양자적 자유의지: 선택은 존재하는가?
양자역학은 단지 무작위성을 말할 뿐이다.
그래서 비판자들은 말한다. “무작위성이 어떻게 '자유의지'가 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때 중요한 건 확률의 틈새가 만든 선택의 여지다.
완벽히 결정된 기계 속에서는 선택은 불가능하지만,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열려 있다면, 인간이 그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즉, 자유의지는 "완전히 자유롭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신인가, 인간인가?
양자역학의 시선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주는 완전히 결정된 시스템이 아니며,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질 수 있는 존재다.
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축적되어, 역사가 된다.
전쟁은 단지 필연이 아니다.
인간은 양자적인 틈 사이에서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