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준호 Nov 11. 2023

가족 찾은 바보

"십일 조가 뇌물 같아요!" 하는 소리에 살아 있음을 짜릿하게 느꼈다. 방안에 있던 청년들 모두가 머리를 소리 난 방향으로 홱 돌렸다. 하지만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더러는 못마땅하고, 더러는 불쌍한 눈초리로, 더러는 반짝반짝 빛나고, 더러는 어리둥절한 눈동자로 소리 낸 청년을 바라보았다. 나는 레이저 광선을 내뿜는 듯한 청년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보물이라도 본 듯 눈이 동그래졌다. 이때 작정을 한 듯 "소득의 10분의 1을 교회에 바치면 하나님이 10배 20배 30배로 갚아 준다고 가르치는 것은 거지 근성을 키우는 일이거나, 도박 심리를 조장하는 일 아니에요?"라고 청년은 외쳤다. 청년과 나의 눈동자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논리 없는 교리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성직자들을 향해 따지기는커녕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믿음 없는 이로 낙인찍는 죽은 듯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 있는 외침을 듣다니! 나의 타는 듯한 눈빛에 응원을 느낀 듯 청년은"구미 당기는 미끼로 교회의 재정을 튼튼히 하려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 아니에요?” 했다. 난 "맞아요" 하고서 청년과 손바닥을 "짝" 부딪치고 싶었다. 나와 하나가 되었음을 느낀 듯, 청년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화려하게 교회 빌딩을 짓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더 큰 사기를 치기 위한 쇼 같아요."라고 했다. 난 청년을 꼭 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청년들의 다양한 눈빛을 의식하고 차분하게 "수입의 십 분의 일을 10지파가 모아 1지파의 생존을 책임져주는 것이 십일조예요. 이렇게 십일조로 먹고 사는 한 지파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일에 전념할 수가 있고,  모두가 지혜로워져 하나가 되지요. 그래서 치열하게 생존 경쟁하는 세상에서 공동체는 힘 있게 되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십일조의 지혜를 모르고 문자 대로만 믿고 따르면 십일조가 거지와 도박 근성을 키우는 마약처럼 되지요. 비록 교회는 부자가 되지만.....”라고 설명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1주일이나 지났을까? 담임 목사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도들이 믿기지 않는 것을 믿도록 확신시켜야 한다"며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교육시켰다. "성도들은 신앙의 힘으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으며 건강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교회는 권력을 얻고 경제적으로 풍성해져 사랑을 마음껏 펼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청년들에게 "십일조가 마약처럼" 된다고 가르친 것은 "바보나 하는 얼빠진 짓"이라며 정신 차리라는 듯 꾸중을 했다. 난 다리에 힘이 쪽 빠졌다. 어떻게 청년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담임 목사가 알게 된 것일까? 진실이 왜곡된 채로....  

    신학교 시절에는 친형처럼 믿고 의지하는 소통 잘 되는 사이였는데, 삶 가운데 알 수 없는 수많은 두려운 일들로 불안해하며 생명 없는 것들에게 절하며 빌며, 얄팍한 꾀로 사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지혜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인도할 꿈을 나누었는데, 새장의 문을 활짝 열어 갇힌 새들이 푸른 창공을 훨훨 날게 하듯 목회를 하자고 다짐했는데, 그래서 청년부를 담당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함께 꿈을 이룰 부푼 가슴으로 승낙을 했는데, 돈과 권력이 변하게 했을까? 그땐 가면을 썼던 것일까?  나누었던 꿈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성도들의 감정을 뜨겁게 하여 충성하는 이들로, 돈 잘 내는 바보로 만들어 훨훨 나는 새들을 새장에 가두 듯 목회를 하고 있으니.... 

    담임 목사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불신만 쌓였다. 결국 서로 상처를 주고받다 난 교회에 '해로운 바보'가 된 억울함을 품고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안녕히 계세요." 체면치레로 인사하고 돌아서 걷는 발걸음이 가시덤불과 엉겅퀴 가득한 숲을 빠져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담임 목사에게 들었던 '바보' 소리가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으려 "바보는 내가 아니라 너야, 바보가 아니라 사기꾼이지!" 외쳤다. 그러나 이때 또 인간관계의 허망함이 마음을 아리게 찔렀다. 난 아픈 마음을 치료하려 “마약 파는 이들과 절연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라고 외쳤다. 하지만 깨진 인간관계와 잃어버린 신뢰가 온몸의 기운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난 추욱 쳐진 발로 애꿎은 길바닥의 돌들을 툭툭 차며 파킹낫을 걸었다. 자동차에 오른 난 배신감과 억울함으로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려 창문을 활짝 열고 달렸다. 뜨거워졌던 뇌와 가슴이 교회에서 멀어질수록 식었다. 그리고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할 자리는 많아. 체면, 자존심에 매여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지, 주어지는 환경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감사하며, 지혜를 가지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면,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 나 스스로에게 세뇌된 것인지 분별되지는 않지만 자신감이 온몸에서 이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난 이 신문 저 신문, 닥치는 대로 사다 광고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교회 말고는 이력서 보낼 곳이 없었다. 초조함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회사에 이력서 200통을 보냈다"라고 말하던 청년들이 부러웠다. 구인광고를 보고 있으려니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담임 목사를 이해할 듯했다. 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속에서 "미친놈"이라고 소리쳐 이는 마음을 오물처럼 버렸다. 그리고 큰 구인광고에서 작은 것으로 옮겨가며 신문을 샅샅이 훑고 또 훑었다. 그렇게 신문을 훑고 또 훑던 어느 날 신문 하단 가장 작은 광고 난에 ‘캐셔 구함. K 마켓’에 눈동자가 머물렀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낮아지게 하고선 작은 것에 끌리게 하는 방법으로 운명을 인도하시는 듯' 했다.   

    ‘K 마켓’에 도착했다는 GPS의 안내를 듣고 설렘과 초라한 마음으로 상가 건물을 바라보았다. 옆 벽이 음탕한 그림들과 글들이 버려진 쓰레기장 같았다. 깊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벽을 지나 왼편으로 핸들을 돌려 파킹장에 들어섰다. 버드와이져, 쿨러, 밀러, 카멜 등등의 광고들이 더러는 빨간 네온사인에, 더러는 포스터로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K 마켓’이 보였다. 나는 마켓 오른편에 있는 출입구를 숨을 몰아 쉬고 한 동안 바라보았다. 파킹장 가장자리의 잔디밭엔 술에 찌든 듯, 헝클어진 머리에 찌든 때 냄새가 풍길 듯한 사람들이 착한 바보들을 찾는 듯 서성거리다 주차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심이 있었지만 곧 나의 직장이 될 수도 있는 곳이어서 그랬을까? 따뜻하게 대할 여유를 가지고 자동차에서 담담하게 내렸다.  

     나는 파킹장에 있는 사내들의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옷매무새를 만지며 마켓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손님 아님을 직감으로 알았는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어떻게 오셨어요?" 했다. 나는 더듬거리며 "광고 보고 왔습니다." 했다. "아! 광고요!" 이해가 된 듯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여기는 미니멈만 주거든요." 주인이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알고 왔어요." 대답하는 나를 주인이 다시 한번 아래위로 훑어보다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을 내밀며 "곽상훈입니다. 가게 주인이에요." 했다.  

나도 손을 내밀며 이름을 말했다.

인사를 건넨 주인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일 해 보셨어요?"

"아니요. 어려운가요?" 

"별로 어렵지는 않지만 여기는 도둑도 많고, 위험하기도 해요." 

"그래요? 그래 보았자 사람이 하는 일일 테지요 뭐. 사장님도 하고 있고...." 

나는 겸연쩍은 웃음을 웃으며 반응을 했다.

주인은 나의 차림새, 표정 그리고 하는 말을 들으며 순진한 사람이라는 확신은 들지만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갸우뚱하는 눈치였다. 진심을 알고 싶은 것인지, 다짐을 받으려는 속셈인지, 질문을 했다.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사장님이 원하신다면 해 보지요."

    주인이 결정한 듯, 한 단계 깊은 속내를 드러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요. 알고 보면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요. 좋은 사람도 나쁘게 대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도 좋게 대하면 좋아지는 것 아니에요? 물론 개중에는 좋게 대하는 것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환경이 좋지 못하여 망가졌구나 생각하고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만다' 여기면 어려울 것이 없어요."

나는 교회에서 나누던 대화보다 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 그래요? 그러한 자세로 열심히 해 볼게요." 했다.

    구두로 계약을 하고 난 뒤 주인이 보다 깊은 사생활의 질문을 했다.

"그런데 본래 무얼 하셨어요? 막일하실 분은 아니신 듯 보이는데." 

"전도사예요."

"그러면 교회에서 일을 하셔야지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해요?"

"글쎄요...." 망설이다, 난 "교회에서 일을 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인격이 아직 덜 성숙한 모양이에요. 믿음도 부족하고….." 했다. 

"그럴 리 있나요.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인간관계가 힘들 테지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룩하고 착한 사람들이니까."

"저도 그럴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함께 해 보니 인간 사는 세상은 어디든 같더라고요. 하나님을 믿어도 서로 믿음의 모양과 생각이 다르고, 자기 욕심과 주장이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사랑으로, 은혜롭게 처리를 하려니 질서가 없어져 오히려 혼돈스러워지기도 하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은혜 많은 곳에 죄가 넘치게 되는 거군요. 아니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은 건가요? 그러고 보니 죄와 은혜는 천생연분인가 봐요.”

“교회가 어려운 것은 돈 내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일 거예요. 회사는 사람들이 돈을 받으며 다니니 돈 주는 사람의 말에 잘 따르고, 또 계급이 있으니 질서도 잡히지만, 교회는 돈 내고 다니며, 돈 받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순종하며 봉사해야 하고, 모두 평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좋을 때는 좋지만 불평불만이 생기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요. 순종하고 봉사라도 해서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거룩한 명예도 얻고, 축복받고 천당 갈 기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다, 성직자를 불신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면 불평하며 몰아내려고 하지요. 회사에서는 일한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기가 그만두고 다른 곳을 찾는데....."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사실 나도 경건한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고, 죽어서 천당 갈 욕심으로 교회를 다녀 볼까 생각을 했어요." 주인이 땅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고는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 할 기회가 많으니 그만하고,  전도사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 하실 수 있으세요?" 했다. 

"시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괜찮을까요?"

"네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그럼 내일 오전 6시에 뵙겠습니다."

"아... 잊었네요. 가족은 있으세요?"

"네, 아내와 아들, 딸이 있어요."

마켓을 나오며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안을 느꼈다. '먹고 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곳에서 평안을 누리는 이유가 무얼까?' 경건의 교만이 없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인 듯 해 왠지 씁쓸했다.  

    "일찍 나오셨네요."  마켓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했다.  "네, 어서 오세요." 상품을 진열하다 곽사장이 나를 돌아보며 "하실 일을 알려 줄게요." 하고 캐셔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려운 것은 없어요. 상품에 가격이 모두 찍혀 있거든요. 손님이 상품을 가지고 오면 가격대로 돈 받고 여기 캐셔에 찍으면 거스름 액수가 나와요. 그러면 적힌 대로 잔돈을 거슬러 주면 돼요." 그리고 "권총은 이쪽 오른쪽 서랍에 있고, 몽둥이는 저쪽 기둥 옆에 있어요." 곽 사장이 태연하게 설명을 했다.

    나는 권총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권총도 필요해요?" 두려운 놀란 눈으로 곽 사장 눈동자를 보며 질문을 했다.  겁먹은 듯한 내 눈치를 살피며 곽 사장이 안심시키려는 듯 "호신용으로 두는 거예요. 가끔 강도와 도둑들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나 강도에게는 원하는 대로 다 해 주어요.  어설프게 총 싸움하다 목숨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급한 상황에는 사용을 해야겠지요. 난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하고 한숨을 쉬고는, "그러나 몽둥이는 가끔 사용을 해요. 그렇다고 사람을 친 적은 없어요.  도둑질하는 놈에게 몽둥이를 들고 설치면 도망을 가거든요.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따라가는 척하다 말아요. 그러면 몇 시간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스럽게 다시 돌아와요.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해 주죠."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이 연극을 자연스럽게 잘하면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힘들게 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이 지역의 홈리스들이거든요. 파킹장에서 서성거리며 손님들에게 구걸하다 심심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들어오곤 해요.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어서 구걸을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 그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또 막아 보았자 효과도 없고…  사이만 나빠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상대하기가 꺼려질 테지만 친해지면 괜찮아요. 사귀어 보면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에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어쩌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 게으른 사람, 너무 착해 망한 사람, 다양해요. 경계해야 할 난폭한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느 사회나 그런 것 아니에요? 이들과의 관계가 이곳에서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을 해요. 사실은 이 사람들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인간들이 있어요. 동네 사는 사람들인데 자녀들까지 데리고 와 물건을 훔쳐 가곤 해요. 그러다 들키면 거칠게 덤벼들기도, 인종차별 했다고 고발을 하기도 해요. 그러나 대부분의 가난하고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후해요.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들에 의해 먹고 살아요"

    곽 사장이 웃으며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꼭 맞더라고요.  그래서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 쥐 죽은 듯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당하거든요." 

"자녀와 함께 도둑질을 해요?" 

그가 태연하게 웃으며  "네."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도 처음엔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러나 자식들과 함께 합작해서 세금 도둑질하는 부자들도 많지 않아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먹고 떼어먹는 족속들도 있고, 사실 사회를 들여다보면 요지경 속 아니에요?  세금 안 내고 재산을 상속하려 부모와 자식이 모의해서 별의별 짓 다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며 불법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카드 빚도, 남의 돈도 작정하고 떼어먹고…. 생각을 좀 다르게 하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도둑들에게 너무 손해를 많이 본다 싶으면 경찰을 부르는 척도 하고, 옛날에 무서운 깡패였다는 듯 쇼를 하기도 해요. 무섭고 잔인하고 독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면 상대의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연극에서 실패하면 더 비참해질 수도 있어요.  연극도 상황을 보며 잘해야 해요.  인생살이라는 것이 본래 연극 아니에요?"

"연극하며 산다는 생각은 못 해 보았어요."

 곽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겉과 속이 똑같게 살 수가 없더라고요. 연극하며 살지 않을 수 없는 세상 아니에요? 어느 선까지 연극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지만…. 연극의 실력이 우리의 인격과 능력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은 언제 어떻게 연극을 해야 하는지가 인생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연극을 하나님에게 코치를 받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닐까요?"

"신앙인과의 차이가 여기서 생기는군요. 저는 제 속에 있는 양심에게 코치를 받거든요. 물론 무시할 때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해관계를 빠르게 계산하며 연극을 하다 보면 양심이 '쇼 그만해. 너 정말이야?' 외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해요."

"사장님은 양심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철학자는 '순수이성'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어요. 신앙인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양심이나 순수 이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신앙생활이 쉬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본래 신앙은 쉬운 것인데,  인간들이 어렵게 만들어 버린 거지요." 했다.

"그래요?  그 말을 들으니 질문하고 싶은 것이 생기는데 다음에 할게요." 

    아직은 어리비리하지만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 자리를 잃었다 찾은 즐거움과 봉사하는 데서 오는 기쁨에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손님이 많아졌다. '나의 친절 때문일까? 손님을 몰고 오는 복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주인에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다 웃으며 그 생각을 버렸다. 하지만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이들이 들어올 때면 차별한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대했다. 손님들이 만족스럽게 쇼핑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직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인간관계는 역시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확인하면서....  열심히 일해도 진실을 이야기해도 소통되지 않고, 열매도 없던 교회에서의 인간관계가 떠올랐다. 거룩한 목소리로 순수하고 사랑이 담긴 진리를 말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지만, 속내는 철저한 계산이 담겨 있는 가면을 느껴 힘겨웠던 교회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니 천국에 있는 듯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손님이 요구하는 담배를 찾기 위해 돌아서 진열대를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소름 돋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한 사내가 똥 싼 듯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상품을 몰래 점퍼 속에 숨기다 흘리는 것을 본 동료에게서 터져 나온 비명의 안타까운 웃음 소리인 것을 알았다. 몸과 머리의 세포들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엉거주춤 서 있던 사내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분노와 황당함이 동시에 일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담배를 찾아 달라는 요구가 물건을 점퍼 속에 넣기 위한 도둑질 작전이었음을 알았다. '어떻게 할까? 주인이 코치해 준 대로 욕하며 몽둥이를 휘두를까? 시범 케이스로 경찰에 신고를 할까? 여기서 밀리면 계속 일하기가 힘들어질 텐데….'  뇌가 과열되었는지, 온몸이 땀으로 촉촉해졌다. 결론이 아직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나는 엉거주춤 서있는 사내에게 걸어가 기죽은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게 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도둑에게 위엄스럽기도 바보스럽기도 한 한마디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이런 일 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 나빠요.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부드러운 한마디가 긴장했던 모두의 다리 힘을 풀리게 했다.  모두가 싱거워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몽둥이를 들고 설치다 경찰에 신고할 것을 예상했던 도둑도 뜻하지 않은 너그러움에 엉겁결에 "OK" 하곤,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 펴고 팔자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사내는 도둑질하다 걸려 본 일이 많은데 이렇게 점잖은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어 오히려 어리둥절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오히려 거만 해진 듯, 양 어깨에 힘을 주고 파킹장에 모여 있는 동료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가슴이 벌렁거려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였다. 

    마켓 안은 평상시 느껴보지 못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파킹장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며 사내들이 너도 나도 주문을 외우듯 주절거리며 다녔다. "이런 일 하면 당신에게 나빠요.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하는 소리가 얼핏-얼핏 들렸다. 바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을 경험한 사내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유행가처럼 읊조리며 즐겼다. 난 바보가 된 듯 멍했다.  

    유행가가 옆 동네까지 날아가 퍼졌는가 보다.  가게에 손님들이 점점 늘어났다. 마켓에 손님 몇이 들어와 낯선 이름의 담배를 찾았다. 나는 돌아서서 진열장을 훑고 또 훑었다. 생소한 담배였던 터라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돌아서서 손님들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을 했다. 역시 사내는 점퍼 속에 상품을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이 없이 사내에게 다가가 물건을 빼앗아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이런 일 하면 당신에게 나빠요.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했다.  

    바보가 마켓을 지키는 상황을 사내들은 신기하여 즐기고 또 즐기는 듯했다. 하룻밤이 지난 후 마켓은 더욱 붐볐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얼굴들도 보였다. 옆 동네에서 원정을 온 것이 분명했다. 여기저기에서 기분 나쁜 웃음들이 들렸다. 훔친 물건들을 점퍼 속에 넣다 떨어뜨리는 소리도 들렸다. '공포를 한 방 쏠까? 몽둥이를 들고 설쳐 댈까?' 고민을 해 보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인의 실망한 얼굴이 떠올랐다. 바보 취급 당하는 분노도 일었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손님이 없을 때에도 귓전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듯했다. '알량한 신앙심 때문일까? 뒤처리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연극에 소질이 없어서일까?'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까? 혼돈스러웠다.   

그날 오후, 가게로 돌아온 주인이 물었다.

"할 만 하세요?"  

"네. 일은 할 만한데 도둑놈들이 많네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 상황을 다루는 실력이 여기서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문제를 해결하려 소리 지르고 욕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이 효과가 있어요?"

주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효과가 있지요. 그래서 쇼를 하다 보면 '인생은 역시 연극이야' 하며 웃음이 나와요. 미친놈처럼 화내며 쇼하는 내 모습이 나를 웃게 만들고 화도 풀어주어요. 그리고 이러는 나를 바라보는 도둑놈들도 같이 웃어요. 이때 묘한 마음의 변화가 일어요. 내가 웃을 때까지 적당히 호응해 주며 기다려 주는 도둑놈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니까요. 착하게 보이면 깔보고 함부로 대하니까 연극을 하고 얼마간  무서운 독종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는 것을 그들도 다 알아요. 그러면서도 기꺼이 관객이 되어 주는 거예요. 도둑질 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연극을 감상하는가 봐요. 재미도 있지 않아요?  결국 배우와 관객이 함께 웃음으로 연극을 마쳐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지요.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서로 상황을 모면해야 하니까 웃음으로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는 거지요. 이렇게 하고 나면 당분간 평화를 유지해요. 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고 표현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했으니 휴식이 필요해진 거지요.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필요를 채우려 그들은 도둑질하고 난 연극하고 그리고 또다시 웃음으로 사건을 종결하곤 해요."  

    새벽 일터로 나가며 싸늘하게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불렀다. "낮아진 자세로 섬기며 진실하게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더 잘 되어야 할 텐데 거꾸로 바보가 됩니다. '온유 한 자는 복 있다' 하시는 말씀이 진정으로 맞는 건가요?" 질문에 답은 들리지 않고 눈물만 흘렀다. 

    가게 문을 연 뒤 청소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곧 전쟁이 시작되겠지…..' 차가운 권총을 만지며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낯선 손님들이 들어왔다. 며칠 동안의 일을 통해 유익을 줄 손님이 아님을 직감으로 알았다. 이웃 동네에서 온 원정 팀이 분명했다. 생존을 위해 몸과 머리가 반응하는가 보다. 손님이 필요한 상품 찾아주기를 요구하면 고개를 끄떡여 대답을 하고 뒤에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만 있었다. 차갑고 예리한 눈으로.... 손님들이 작전을 포기하였다고 판단이 될 때 비로소 그들이 요구한 것을 찾아 주었다. 하나님께 불평이 절로 나왔다. '뒤통수에도 눈 하나 더 만들어 놓으시지 왜 한쪽에만 있게 했어요?'      

     잽싸게 돌아서 손님들을 감시하고 다시 돌아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일을 되풀이했다. 도둑질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묘안이었다. 하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래를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서럽고 외로웠다. 몇 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반복했을까? 드디어 점퍼 주머니에 상품을 재빠르게 집어넣는 사내를 보았다. 나는 사내에게 걸어가 멈춰선 뒤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를 했다.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호기심 가득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손바닥을 펴 내밀며 차분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고요를 깼다.

"내놔요."

 낮고 엄숙한 말에 사내는 점퍼 속에 숨긴 상품을 똥 싸 뭉갠 웃음을 웃으며 돌려주었다. 이를 받아 든 난 "이것은 당신에게 나쁜 일이에요.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했다. 모두가 이상한 세계에 온 것처럼 신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기대보다 사건이 싱겁게 끝났다는 아쉬움으로 작은 소음들을 내며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소란함이 벌어지고 엄숙해진 가운데 "이것은 당신에게 나쁜 일이에요. 다시는 하지 말아요" 소리가 차분하게 가게 안에 흘렀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고 평상으로 돌아감이 반복되고 또 반복이 되었다. 파킹장의 사람들은 "이것은 당신을 위해 나쁜 일이에요.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를 흥얼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긴장과 엄숙함과 평화가 교차되는 하루하루가 지나 가게에서 일한 지 1주일이 되었다. 주인에게 너무 많은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계속 일하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주인이 "별일 없었지요?"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무거운 마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장님 저는 더 이상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도둑을 끄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가 봐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곽 사장이 답답한 듯 "이 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된다니까요. 몽둥이를 들고 욕하고 경찰을 부르는 척 연극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야 되는 줄은 아는데…..   그것도 성격이 어느 정도는 받쳐 주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연극할 마음을 먹어도 무대가 펼쳐지면 내 방식대로 하게 돼요. 차라리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게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배우가 오래 머무르면 모두가 괴로워지는 것 아니에요?” 곽 사장은 '이런 품성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체념한 듯, 그러나 속이 상한 듯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를 많이 보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붉은 저녁노을이 나를 더욱 서럽고 외롭게 했다. 파킹장에서는 "이것은 당신에게 나쁜 일이에요. 앞으로는 하지 말아요"를 중얼거리다 킥킥거리며 즐거워했다.

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담담하게 "잘 있어요.  내일부터는 못 보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왕초 노릇을 하는 털보가 의아한 눈초리로 "내일부터 못 봐요?" 했다.

나는 이 질문에 한숨을 크게 쉬고 불평에서 튀어나오는 큰 소리로 "네. 내일부터는 못 봐요."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일을 그만두었어요. 주인에게 더 이상 손해를 보게 할 수 없어서요."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려고?"

먹고 살 걱정과 일자리 찾을 걱정에 막막하지만 태연한 척 "다른 일 자리를 찾아 봐야지요. 사람 구하는 곳은 많더라고요."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깡 마른 사내가 심각함을 느꼈는지 "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당신은 여기서 더 일해야 해요. 먹고는 살아야지요." 했다.

"끝났어요. 다 정리하고 인사하고 나오는 길이에요. 주인이 너무 손해를 많이 보는 것, 당신들이 더 잘 알잖아요."

순간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해졌다. 

이때 고요를 깨고 털보가 "안 돼요. 우리가 주인에게 가서 이야기할게요." 의를 위해 일할 때 나타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팔을 잡고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다 끝난 일이에요."

이때 웃통을 홀딱 벗고 다니는 사내가 "아니에요. 우리와 같이 주인에게 가요." 하며 털보를 거들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털보가 나의 팔을 잡아 끌고, 더러는 나의 등을 밀고, 더러는 뒤를 따라오는 사내들과 함께 나는 가에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뒤로 젖혀진 채 밀리고 끌려 오는 나를 보며 주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털보가 주인에게 의로운 일을 하면 나오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 사람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했다.

"안 돼요. 내가 있으면 사장님의 손해가 너무 커져요."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반응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주인에게 털보가 "앞으로는 우리가 도둑질하지 않고 이분을 지켜 줄게요." 했다.

눈치 빠른 주인이 이들을 화난 얼굴로 째려본 후 질문을 했다.

"정말 이 사람을 지켜 줄 거야?"

"우리가 빈말하는 것 봤어요?  사실 사장님이 이 분이 ‘전도사’라고 이야기했을 때 우리도 모르게 시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사랑하라, 사랑하라 외치는 성직자들이 정말 사랑을 할까?  입으로만 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먹고 사는 것을 초연해서 사는 사람들일까? 시험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어요. 그런데 바보인 거 있지요. 바보가 가게를 지키니 얼마나 재미나요. 그래서 물건을 훔치고 또 훔치고 했어요."

웃통 벗은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우리가 도둑질을 하는데도 무례한 언어를 하나도 사용을 하지 않는 거예요. 신기했어요. 그래서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했어요." 

깡 마른 사내가 이어서 "바보일까?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바보라고 생각을 했어요. 바보를 점원으로 고용한 사장님도 바보라고 생각을 했고." 

웃통을 벗고 다니는 사내가 "난 전도사를 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그런 바보 전도사를 골려 주는 것이 즐거웠어요. 진심이 무얼까? 궁금하기도 했고."  

깡마른 사내가 "난 바보와 '무궁화 꽃'놀이를 하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작전을 짜고 도둑질을 하고 또 했어요.  그런데 바보는 술래를 잡고서 벌칙을 주지않는 거예요.  그러나 그때 어머니 품을 경험하는 따뜻함을 느끼곤 했어요"

털보가 "난 살아오면서 이러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가족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한.... 따뜻함, 신뢰하고 기다려 주는 사랑을 느꼈어요. 이제는 우리가 이분을 지킬 거예요. 가족으로 여기고....."

주인이 나에게 "일을 계속해 보시겠어요?" 했다.

털보가 끼어들어 "우리 가족처럼 살아요. 서로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서 모두의 필요를 채우며.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가운데 서로 다름을 소통하며 조화롭게 하면서. 그래서 우리 가족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에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곽 사장님에게도 당신들에게도."

    하늘을 날듯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서며

“연극할 용기가 없어 못한 것이지 인격적으로 대우해서 한 일은 아닌데…..”  나는 중얼거렸다.

깡마른 사내가 따라오며 요구를 한다. "내친김에 매주 예배도 드려요. 우리가 다 참석할게요. 건물이 없으면 어때요. 여기 잔디밭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웃통을 벗은 사내가 외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지식이 없는 자도 오라, 죄지은 자도 오라, 실패한 자도 오라, 와서 같이 진실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며 한가족된 즐거움을 누리자."       


    바보들이 잃었던 가족을 찾은 듯 행복해하는 광경을 둥근 달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듯했다.

 


작가의 이전글 이번 감사절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