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막연히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도시에서 몇 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후보군 중에 하나가 속초다. 제주나 부산도 떠올려봤지만, 거리도 멀고 낯설다는 이유가 망설이게 만들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어머니와 아줌마들 간의 친목계가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매년 아이들 여름방학 때 대형 버스를 대절해서 동해안 해수욕장을 가곤 했다. 여러 가족이 각자 텐트를 치고 가족끼리 밥 해 먹고 아이들끼리 해수욕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있다.
그때는 강릉으로 가는 영동고속도로도 지금처럼 되어있지 않아서 대관령 옛길로 굽이굽이 돌아야 바닷가에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 갔던 곳이 경포대, 동해 망상해수욕장, 설악해수욕장, 옥계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등이었는데, 2016~17년 양양 속초 간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진 속초나 양양은 강릉을 거쳐 다시 북상해야 하는 난코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권에서 강릉보다 오히려 속초 양양이 동해안에 더 빨리 도착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동해안 해수욕장을 많이 가버릇해서인지 나는 서해보다는 동해가 더 애착이 갔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도 조금 시간이 더 걸리고 멀더라도 꼭 동해안을 고집하곤 했다. 그리고, 동해안 도착하기 전에 만날 수 있는 강원도의 도시들 또한 정겹게 느껴졌다. 춘천, 인제, 영월, 정선, 태백 등 강원도의 도시들에선 서울과는 뭔가 다른 기운이 마음을 들뜨게 하곤 했다.
그러던 중, 큰 아이가 강원도 고성에 있는 군부대로 배치를 받으면서 속초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입대한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외출도 외박도 휴가도 못 나오는 상황이어서 정해진 날에 예약을 하고 면회를 신청해야 했다. 그래서 면회 허가가 떨어지면 집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속초에 도착해서 여기저기서 음식들을 포장하고 장만해 부대 앞 시설에서 면회를 하곤 했다. 외출 외박이 안되기에 점심 저녁 두 끼만 같이하고 아이는 부대로 복귀하고 나는 귀갓길에 올라야 했는데, 부대 정문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 짠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TV에서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는데, 오고 가는 길에 그 드라마의 OST를 들으며 운전하곤 했다.
드디어 아이가 제대하는 날, 속초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자고 아침에 호텔 조식 뷔페를 먹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제는 전처럼 속초에 자주 올 날이 없겠구나 했지만, 그 후로도 가족여행이나 친구들, 지인들과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속초를 향했다. 물론 나보다 더 속초를 많이 다녀서 맛집이나 좋은 여행지를 많이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제는 생선조림, 장칼국수, 해장국, 막국수 등을 잘하는 집도 어느 정도 알고 해서 앞으로도 속초는 가끔씩 가게 되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막혔던 외출 외박이 해제되고, 아내와 작은 아이를 데리고 학수고대하던 큰아이의 첫 휴가를 마중 가기 위해 하루 먼저 들러 잤던 곳도 용대자연휴양림이다. 가려고 했던 만해마을과 백담사는 가지 못했지만,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를 먹고 큰아이의 첫 휴가에 가족들이 더 들떴던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 모임에서 속초로 여행을 떠났는데, 나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출발할 때는 승용차로 같이 출발했다가 올 때는 속초터미널에서 서울강남터미널행 막차를 타는 코스였는데, 서울에 새벽 1시 반에 도착해서 귀가했는데도 다음날 피곤함이 그리 크지 않았다.
속초는 한자로 풀이하면 풀을 묶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속초시에 속한 설악산에 유명한 울산바위가 있는데, 울산을 관리하던 관료가 울산바위는 원래 울산 소유라며 속초에 세금을 걷었다고 한다. 이에 속초는 그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고육지책을 생각했는데, 울산바위에 영랑호와 청초호 주변에 있는 풀을 묶어 불을 지르게 되었고, 어찌어찌하여 그 세금을 안 내게 되었는데, 그 연유로 풀을 묶었다 하여 속초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속초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지만 결초보은처럼 풀을 묶는다는 의미를 변하지 않는다.
겨울을 맞아 다소 한가한 속초지만, 훈풍이 불고 햇빛이 강렬해지면 또다시 타지의 방문객들로 붐빌 것이다. 거대한 바다와 듬직한 설악산을 품은 속초는 외지인들로 북적일 테지만, 그곳만의 낭만은 변치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