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칠리 Jun 27. 2022

02 | 고객사가 너 싫대.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객사가 너랑 일하기 싫대.


'2억 로스'라는 사고를 친 후, 책임이 나를 불렀다. 정확히는 다른 신입 사원분과 남겨졌다. 당시 책임은 퇴근 직전에 일일 회의를 하고, 꼭 신입들을 남겼다. 그러고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말이 이야기지, 욕이 잔뜩 담긴 질책이 대부분이었다.



00 대리가 너랑 일하는 거 싫대. 어쩔 거야.


옆에 다른 직원도 있는 상태에서 책임이 내게 고객사의 말을 전달했다. 내가 실수가 잦아서 고객사 담당자가 나와 일하기 싫다고 했단다. 당연한 처사였다. 큰 사고를 일으켰으니 고객사의 신뢰가 떨어진 건 당연했다.


책임은 연신 비속어를 섞어가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게요, 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한 실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가 전한 말은 엎지른 물을 다 닦아내기도 전에 해고 통보를 받은 것과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고객사는 처음부터 경력자에게 업무를 맡기길 원했다. 킥오프 미팅을 갔을 때, 고객사 쪽 담당자들이 미심쩍은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신입들에게 어떻게 마음 편히 협업을 요청하겠는가.


단지 조금 억울했다. 나도 내가 갑자기 브랜드 하나를 떡 맡을 줄 전혀 몰랐다. 당연히 사수의 가르침 아래에 작은 업무부터 시작할 줄 알았다. 신입에게 훈련도 없이 브랜드를 통째로 맡긴 건 회사인데, 왜 내가 질책받아야 하는 걸까. 억울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나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X발. 내가 이 경력에 실무를 해야겠냐?


책임은 자신이 15년 차인데 실무를 해야겠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고객사 대리가 당장 담당자를 경력자로 교체하길 원한단다. 하지만 값싼 인력만 사들이는 우리 회사에는 대체할 만한 경력자가 없었고, 책임이 나를 대신해 고객사와 소통하게 된 것이었다.



나한테 일 뺏겼는데 넌 뭐 할래. 월급은 왜 받아. 이럴 거면 너희 둘 자르고 경력자 한 명 뽑는 게 더 낫지.


책임은  옆에 있던 동료 직원까지 엮어 화살을 날렸다. 나는 고개를  숙인   말을 주워 담았다. 지금이야 속으로 그럼 한번 잘라 보시던지! 하고 욕이나 했겠지만, 이미 자존감이 바닥났던 그때의 나는  말에 수긍했다. 그것이 스스로 상처 주는 일인지도 모르고.


책임은 계속 욕과 스트레스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끊임없이  자존감에 구멍을 뚫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 숨어서 울던 시절이었다. 가시 돋친 질타를 감내하기엔 나는 너무 마음이 약했고, 그와 함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어느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후... 내가 업무를 내려주는 게 편하겠니. 어? 그렇게 할까?


얼마나 지났을까. 책임이 감정을 삭이며 내게 물었다. 는 말없이 책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 요청이 들어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때였다. 당연히 상사가 내려주는 업무만 처리하는  편하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게 맞는 순서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담당 브랜드도 뺏기고, 나와 일하기 싫다던 고객사 대리에게는 채팅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피치 못한 일로 채팅을 보내야  때는 책임에게 채팅 내용을 검토 받고 보내야 했다. 아무리 사소한 인사치레라도 말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너 오늘은 뭐 했어. 그거밖에 안 했어? 그렇게 해서 월급 값은 하겠니.


 이후로, 나는 책임의 타깃이 되었다. 책임은 매일 내게 어떤 업무들을 했는지 물었다. 물론 양에 상관없이 돌아오는  욕과 질책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같은 대답을 하고, 더한 욕을 들었다.  알려주지 않은 것도  못하냐는 소리를 들었고, 알려준    빨리 못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회사에서,  업무에서 쓸모가 없음을 매일 매일 확인받았다.


그렇게 며칠이나 버텼을까.



아, 퇴사할까.


자연스럽게 퇴사를 고민했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01 | 입사 2개월 차. 2억을 날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