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이상한 중동의 앨리스 2

비스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18

by chill십구년생guy


아니 그럼 남조선에선 식초도 없이
랭면을 먹는단 말입니까?



단순히 신기해서 던진 한마디였다가 종업원에게 호된 면박을 당하고 말았다. 아랍에미리트에서의 둘째 날 저녁, 나는 두바이 시내에 위치한 ‘옥류관’ 지점에서 북한 직원이 면발 위에 직접 식초를 휘둘러 만들어주는 ‘진짜 평양냉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기묘하면서도 짜릿한 경험이었다. 마침 두 달 전 남북정상회담에서 옥류관 냉면이 만찬 메뉴로 오르며 대한민국 전역에 평양냉면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서울에서도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다던 그 화제의 음식을, 뜨거운 중동의 사막에서 맛보게 될 줄이야. 고국에서 가장 ‘핫한’ 미식 경험을 오히려 만 리 타국에서 하게 된 셈이었다.



도약하는 말



둘째 날의 일정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막을 올렸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호텔 로비에 모인 글로벌 개척단은 단체 버스에 몸을 싣고 ‘페라리 월드(Ferrari World Abu Dhabi)’로 향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로 악명 높은 ‘포뮬러 로싸(Formula Rossa)’가 버티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속도를 온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우리가 출동한 것이다.



하여간 어딜 가든 ‘세계 최고’, 이번엔 World’s Fastest



직접 경험해 본 소감은 한마디로 “대박” 그 자체였다. ‘페라리’라는 이름값이 결코 허명이 아니라는 듯, 슈퍼카가 풀 액셀을 밟고 튀어나가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가속력이 이 롤러코스터의 정수였다. 가속이 시작되는 순간, 머리는 제자리에 남겨진 채 몸만 앞으로 튕겨 나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흔한 수식어 같지만, 정말로 ‘혼이 쏙 빠진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었다.


아쉽게도 내가 기획하는 서비스에 참고할 만한 VR 콘텐츠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뮬레이터 사업을 하시는 다른 대표님들의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이 코스가 일정에 포함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현업 종사자들에게 세계 최고 레벨의 속도와 기술력을 직접 체감하게 하려는 취지였는데, 덕분에 나는 기분 좋게 곁다리로 끼어 ‘인생급’ 경험을 맛본 셈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오후에는 아부다비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인프라를 총괄하는 거점 기지를 방문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본 시설은 광활한 대지 위에 자로 재듯 정돈되어 있었고, 그들이 제공하는 비즈니스 솔루션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했다.


최첨단 장비와 스튜디오, 쾌적한 사무 공간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행정 지원은 물론 세무 컨설팅까지, 해외 기업이 안착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패키지로 준비해두고 있었다. 외국 기업들을 향해 “모든 판은 우리가 깔아줄 테니, 당신들은 몸만 오면 된다”라고 외치는 듯한 전폭적인 러브콜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부유한 국가가 보여주는 지원의 스케일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얀 옷을 입은 현지인과 첫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을 때, 현실적인 고민이 나를 덮쳤다. 그곳의 풍경이야말로 내가 아랍에미리트에 오기 전 상상했던, 지평선 끝까지 모래뿐인 ‘진짜 사막’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에 둥지를 튼다면 우리 멤버들이 이 고립된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회사는 둘째치고 나 자신부터가 한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설득해 이 모래바람 부는 불모지로 데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자 옥류관



저녁에는 글로벌 개척단의 공식 간담회가 진행됐다. 장소는 놀랍게도 북한 식당인 ‘옥류관’ 두바이 지점이었다. 보통 이런 기관 주최 해외 행사의 회식 메뉴는 호불호 없는 한식으로 정해지기 마련이지만(10화 참고), 맨체스터에서 두바이 정보를 검색하다 우연히 옥류관의 존재를 알게 된 내가 주최 측에 강력히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그 의견이 수용되어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평양냉면 마니아였던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공식 일정으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반드시 방문하겠다고 다짐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동료들과 함께 가다니 기대가 더욱 커졌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섭렵하겠다는 기세로 대망의 옥류관에 입성했다.



자, 우리 웰빙 음료 마시고 건강합시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들 ‘옥류 건강음료’를 주문했다. 사실 여기엔 꽤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슬람 문화권이라 주류 판매가 엄격히 제한되는데, 외국인 전용 호텔이나 허가받은 상점이 아니면 술을 취급하기 어렵다. 그래서 ‘건강음료’라는 이름으로 은근한 눈속임을 한 것인데,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북한식 막걸리였다.


시간에 맞춰 홀 중앙 무대에서는 종업원들이 북한 전통 공연을 펼쳤고, 우리는 그 풍경을 배경 삼아 갈비찜, 송이버섯, 더덕구이, 만두 같은 요리들을 맛보았다. 익숙한 이름들이었지만 조리법은 낯설어 묘한 매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북한에서 직접 공수해온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막걸리 안주로 시킨 해물파전에 ‘맛살’이 들어있는 걸 보고 북한에도 맛살이 있느냐고 묻자, “그건 이 동네 마트에서 산 것”이라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인간적인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평양식 ‘랭면’이 나왔다. 거칠면서도 담백한, 익숙한 듯 낯선 맛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업원들이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손님의 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직접 넣고 비벼주는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고 육수 본연의 맛을 즐겨야 한다는 이른바 ‘남쪽식 정석’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서비스가 과분하다



나는 그 방식대로의 맛을 꽤나 즐겁게 만끽했다. 이 귀한 경험 덕분인지, 한국에 돌아온 뒤 평양냉면 먹는 법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면스플레인(면+Explain)’을 만나도 굳이 반박하지 않는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됐다. 진짜 본토의 맛을 섭렵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랄까. 역시 인심은 곳간에서, 여유는 경험에서 나오는 법이다.


(참고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아쉽게도 두바이 옥류관은 2019년 3월에 문을 닫았다)


회식을 겸한 간담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있을 전시회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페라리 월드처럼 혼자였다면 굳이 찾지 않았을 곳부터, 두바이가 아니었다면 상상만 했을 정통 북한 음식까지. 참으로 신비롭고 이색적인 하루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묘한 기분을 만끽하며 두바이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마무리했다.




다음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이상한 중동의 앨리스 3' 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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