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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Nov 05. 2020

중국에서 겨울을 나는 방법

목이 칼칼하다. 겨울이다.

중국 선양의 겨울.


  선양에 오기 전까지는 그저 사계절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겨울’이 이 곳에서는 ‘진짜 겨울’로 다가온다. 한국이 아닌 다른 추운 도시들에서, (아마도 한국보다 더 추웠던 건 캐나다뿐이었겠지만) 처음 맞이하는 것 같은 극한 추위와 함께 겨울을 난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단기간 머무르는 곳이 아닌 삶의 터전이 이토록 춥다는 것은 뭔지 모르지만 뇌에 미묘하게 다른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아직 가을 햇살은 쨍쨍하고 해도 적당히 길며, 나뭇잎은 여전히 군데군데 푸르고 일부 떨어진 낙엽들이 바스락대며 발에 차인다. 창문 밖을 바라보면 따뜻한 온기까지도 느껴지는 것 같지만 막상 밖에 나가보면 살을 에이는 추위에 정신이 번쩍 든다. 벌써? 아! 이제 11월이지, 마음속으로 끄덕끄덕. 너는 벌써 칼바람을 휘두르는 그 날을 위해 조금씩 날을 갈고닦는 중이구나. 나는 따뜻한 햇살에 취해 마냥 가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중국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8년째, 선양으로 온지는 3년째, 나는 별로 변한 것이 없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아가에서 어린이가 되었다. 첫째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이 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둘째는 이 곳의 풀과 흙을 만지작거리며 컸다. 아파트 단지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야 슈퍼가 있는지 놀이터가 있는지 이제 눈 감고도 훤히 안다. 나 역시도 이 곳 한인사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정보를 받기보다는 전수해주어야 하는 연차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 발 늦곤 한다. 밖이 이렇게 추워졌는지 모르고 얇은 옷을 입고 나갔다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추위에 된통 당하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실수를 한 사람은 나뿐인 듯 싶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있기 마련이지만 왠지 이 곳에서는 실수가 아니라 '무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등원시키느라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운동화 속 짧은 양말 위로 찬 바람이 불었다. 다른 곳은 꽁꽁 싸맸으니 발목 하나쯤 추우면 어떠랴, 별 의식 없이 서두르며 길을 걷는데 지나가던 아줌마가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얗게 드러난 내 발목을..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가 이렇게 조언을 해준 적도 있다. "한국 엄마들 왜 겨울에도 발목양말 신고 다녀요? 그러면 안돼요. 몸 망가져요."

그것뿐인가, 아이 옷이라도 조금 춥게 입힌 날이면 여지없이 지나가던 어른들에게 한 소리 듣고 만다. 

 

   핸드폰 앱, 뉴스, 라디오 등에서 오늘의 날씨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곳 사람들은 마치 바람의 향기를 맡는 인디언들처럼, 온몸에 기억된 감각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듯 보인다. 찬바람이 돌면 알이 꽉 찬 하얀 배추와 꼿꼿하고 곧은 대파를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그것들은 곧 풀밭을 침대 삼아, 계단을 침대 삼아 고르게 눕혀진다. 그리고 공기가 더 차가워지기 전에, 꼼짝없이 얼어버리기 전에,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남아있는 수분을 바짝 날려버린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겨울 내내 먹을 쏸차이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햇볕에 배추와 파를 말린다. 이렇게 말리면 단 맛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곳 겨울엔 김장김치 대신 쏸차이가 있는 것처럼 익숙한 것들 대신 새로운 것들이 나의 일상을 채워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어릴 적부터 살았던 익숙한 동네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먹었던 엄마의 김장김치도, 여기에는 없다. 뿐만 아니라 내가 거쳐왔던 이력이라는 것도 이 곳에서는 단지 한국사람,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서울 사람 정도로만 축약될 뿐이다. 그보다 더 들어가면 '투머치 인포'다. 언제 어떻게 날씨가 변할지도, 이맘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물론 전혀 감이 없다. 들여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으로써 맛보게 되는 '좌절감'인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무지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좌절감만을 맛보고는 하마터면 뒷면은 뒤집어보지 않을 뻔했다. 풀밭에 널린 배추와 대파를 보며, 나의 '무지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내가 알고 싶은 것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더 기대오지 않았나 싶. 읽은 책의 권수가 늘어날수록, 직장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심지어는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에서조차도 내가 아는 것들에 보다 더 의지했었다. 물론  지식과 경험에서 오는 기쁨도 크다. 그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이전과 다른 나, 좀 더 발전하는 나를 만들어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고, 경험과 지혜라는 이름은 불안한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니' 라는 깨달음이 더 많은 지식욕으로 향하기는 쉽지만, 지금까지 알던 것들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일부러 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선양 한인 사회를 조용히 뒤집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 곳 한인 사회 최고참으로 교민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셨던 분이 계셨다. 코로나로 중국 입국이 어려워지자 몇몇 한국 분들의 비자 발급에도 힘써 주셨는데 아마도 소위 말하는 꽌시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유례없이 500만 위엔의 벌금과 함께 2년간 철창신세를 지게 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뒤로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다. 오랜 중국 생활, 그로 인해 얻은 경험과 지식 너무 기대었던 건 아닐까?



   

  이제 다 안다고 다 이해한다고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번민의 감정은 또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하나도 모른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겁먹었다가도 또 잘 헤쳐나갈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마음이 더 차가워지고 더 굳어버리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기를, 필요 없는 물기는 다 날려버릴 수 있기를, 이 겨울이 오기 전에 바라본다.


   그리고 이 겨울이 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몰랐었던 나 자신에게 '잘 버텨왔어, 대견해, 넌 이제 봄을 누릴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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