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레네 공동체는 반년을 함께 하고 끝났다. 임시 거처 기한이 끝나고 새로운 집을 구해야 했는데,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덟 명이 같이 살 수 있는 규모의 집은 특히 어려웠다. 물론 여덟 명이 그대로 산내에 남는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각자의 사정으로 다시 도시로 올라갈 계획인 친구도 절반이 되었다. 비록 반년 정도의 동거였지만 들레네는 부쩍 가까워졌다. 이 경험 탓인지 나도 들레네 친구들은 유독 애틋하고 편하다. 거처가 뿔뿔이 흩어진 지금까지도 서로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보러 모인다.
내가 시골살이를 여덟 명이 정답게 했다고 이야기했더니 한 공동체 경험이 많던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 아무 문제가 없이 행복하다는 공동체는 믿지 않아요. 사계절 내내 얼굴 보고도 사이가 좋았다고요? 일 년은 안 봤죠? 그거 봐요.”라고. 이분이 유독 공동체 생활에 상처가 많으셨던 것도 같지만, 나 역시 살면서 문제가 없는 공동체는 그다지 본 적이 없었다. 문제가 없는 개인이 없을 텐데, 문제가 없는 공동체가 있을 리가.
이분의 말씀을 꼭 저주로 여긴 것은 아니지만, 나도 들레네가 지속되었다면 분명 다툼이 생겼으리라고 본다. 들레네도 반년 동안 마냥 하하 호호하진 않았던 터라,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름의 갈등 해결 노하우가 필요했다. 이 노하우는 내게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도리어 들레네가 일 년 넘게 함께 살았다면 얼마나 더 멋진 해결책들이 많이 나왔을까 기대가 된다.
당시 우리의 관용은 스님을 ‘스’로 부를 만큼 반토막이 났으나, 사실 이 노하우는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배웠다. 첫째로, 신입생끼리 ‘사람 책’을 했다. 인드라망 공동체 내에서는 종종 하는 모양이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책 읽어주듯이 동료들에게 말해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한 명의 이야기를 나머지 친구들이 들었다. 아직 낯선 신입생들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데 기가 막힌 도움을 주었다. 영화를 볼 때도 악당의 서사를 듣고 나면 괜히 짠해지거나 심지어 악당에게 반할 때마저 있지 않은가.
사람은 모두가 모난 점이 있는데, 그런 점이 보일 때마다 난 그 친구의 서사가 함께 떠올랐다. 그러면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내가 그 친구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했겠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내 사람 책을 해보니, 역시나 여러 번 읽은 지루한 소설책 같았지만, 내 사람 책도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 않았을까. 난 들레네와 함께 살 때 내 안의 미움이 자라면, 그 친구의 사람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건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용한다. 물론 다른 사람은 사람 책을 들은 적이 없으니 내가 그냥 상상으로 채워버린다.
둘째, 신입생들은 ‘모두가 편안한 대화 장치’에 퍽 진심이었다. 인드라망 공동체는 다 같이 원 모양으로 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게 일상이다. 신입생은 이 ‘마음 나누기’ 대화법에 이것저것 장치를 추가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말을 독점하지 않도록 모두가 공평히 말하도록 하는 동시에,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을 배려해서 침묵할 자유까지 챙기기로 했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면, "아직 말 안 한 사람은 할 말 있으면 하자!"라고 묻되, 부담 갖지 않도록 그 사람을 지목하지는 않았고 "대답하지 않아도 돼"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마음 나누기 자리에서는 평화로웠지만, 술자리 등의 비공식적인 자리가 되면 이런 장치들이 엉망이 되었다. 나중엔 술자리에서 서로 마음을 살펴주는 일일 짝꿍을 정해주자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장치가 많은 대화는 안전하긴 하지만 불편하다. 처음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뢰밭인 기분이었다.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으면 뒤늦게 후회와 동시에 짜증도 났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건 빠르게 적응되었다.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생 식으로 대화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가면 당황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두 사람이 말하다니?’, ‘지금 저 사람이 표정이 안 좋은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잖아!’, ‘대화 속도가 무지 빠르군’. 또 외부 친구들은 들레네 대화를 들으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꼭 교과서 속 대화처럼 착하게 말한다고도 했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 편안하다는 평도 있었다. 물론 외부 친구들이 우리 대화를 듣고 놀랄 때쯤엔, 난 이 대화법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우리 대화법이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감상 자체가 낯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