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3> 지난 편 요약
마침내 지리산으로! '명상 뽕'에 취한 칩코, 불교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청년귀촌학교에 입학한다. 반 년도 안 돼서 유서 깊은 청년귀촌학교를 없애고 장렬히 퇴학당하는데... 그러나 "진즉에 나올걸"을 외치는 쫓겨난 자들의 무지개빛 공동체살이가 펼쳐진다.
지리산에서 일 년이 다 되어가던 시기. 집도 안 구해지고, 꼬리는 무려 4년 만에 대학에 복학해야 하는 때였다. 지리산 살이 일 년의 소감을 말하라면, 이곳을 떠날 마음은 콧구멍만큼도 없었다. ‘난 정말 산에 사는 게 제격이야!’라고 생각했다. 다만 산내에서 하도 복작거리며 놀아서였는지,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웠다. 꼬리도 서울로 올라가는 마당에 올해엔 굴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진짜 굴은 아니어도 비슷한 어디든. 진지하게 수행해보고 싶었다.
그 해는 하동을 알프스로 만들겠다는 산악열차 계획이 지리산을 날카롭게 스쳐 간 해이기도 했다. 어깨너머 소식은 들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 운영위원들이 하동 주민들과 함께 많은 애를 쓴 한 해였다고. 사업이 연기된 후 발등의 불은 끈 시점, 운영위원 두 분이 내가 사는 남원을 방문했다. 불씨가 남원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전하며, 같이 불을 끌 친구를 만들러 왔다고 했다.
나는 홀린 듯이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바로 후회했다. 지리산에서 오래 살지도, 산에 대해 해박하지도 않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이 도인들만큼이나 멋져서 따라 해버린 어이없는 심정이었다. 내가 지리산에 받기만 했다면, 그들은 뭐라도 돌려준 것 같았다. 부채감을 뒤로하고 숨을 굴도 없었다. “선 중의 선은 요중선이에요.” 굴 밖에서 그들이 말했다.
겨울 방학 숙제라도 떠안고 온 양 내내 골머리를 싸맸다. 그러니까, 지리산을 위한 뭔가를 하면서 동시에 요중선은 어떻게 닦는지 별 수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현재 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의 문화를 종교로 삼는데, 아마 이때쯤부터 나의 지독한 ‘인디언 사랑’이 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지리산과 인디언 책만을 뒤적거리며 읽다가 문득 한 문장이 딱 눈에 들어왔다.
‘독수리를 진정 이해하고 싶다면, 독수리가 당신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독수리의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알아야 한다.’
인디언의 말씀이었다. 무릎을 ‘탁’ 쳤다. 지리산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면 나보다 먼저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사는 선배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아야 했다. 지리산의 야생동물들은 돈 없이, 차 없이, 집 없이 살았다. 식당에서 먹지 않고 매번 솜씨 좋게 사냥했고, 차 없이 걷거나 기거나 날아서 이동했다. 집이 있는 종도 있었으나 인간종처럼 문서 형태로 영원불멸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무전 방랑! 역시 살 집은 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리산을 떠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