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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Sep 02. 2022

운명의 방랑단원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아영

‘지리산 방랑단’은 나와 차라와 상글, 셋이었다. 내가 덥석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에게 뭐라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후, 방랑단이라는 이 막연한 프로젝트까지 기획하는 내내 함께해준 친구들이었다.  둘 다 들레네에서 함께 살았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중간에라도 마음이 바뀌어서 방랑단을 안 하겠다고 할까 봐 살짝 마음을 졸였는데, 웬걸 방랑단은 한두 명씩 더 인원이 늘었다.


방랑단을 기획하던 겨울, 상글이 ‘봄’이라는 친구를 새로 데려왔다. 상글의 친척분이 공장에서 기르던 개인데, 상글이 너무 좁은 공간에서 사는 봄이를 안타깝게 여겨 지난 삼 년간 종종 들러 산책해주었단다. 상글은 이제 귀촌했으니 본격 함께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봄이를 들레네에 데려왔다.


그러나 들레네에는 이미 송이가 살고 있다. 고양이 송이와 상극인 봄이는 창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송이는 그대로 집 안과 마당을 오가며 지내도록 했고, 봄이는 창고에만 지내다가 산책할 때만 나올 수 있었다. 송이와 떨어뜨려 두려면 집을 하나 더 구했어야 하는데, 우리가 임시거처를 떠난 후 겨우 구한 집은 달랑 한 군데뿐이었다. 송이와 봄이는 불편한 동거를 겨울 동안 며칠은 버텨주어야 했다. 상글은 봄이가 창고에 지내는 기간은 봄이와 함께 창고를 방으로 사용했다.


ⓒ아영_봄

봄이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덩치가 무지 큰 진도 믹스견이었는데 꼭 늑대를 닮았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봄이도 나를 무서워했다. 내가 창고에 들어서자 봄이가 나를 향해 우렁차게 소리쳤는데, 상글은 봄이는 사납거나 공격적인 개가 아니라고 나를 달랬다. 믿을 수 없었으나, 정말로 봄이는 내가 창고에 들어와 앉자마자 순해졌다. 몇 분 뒤에는 내 턱을 핥아주기까지 했다. 봄이는 태어날 적부터 계속 1미터쯤 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지고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봄이는 방랑단이 되었다. 봄이 동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봄이가 그것을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갇혀만 지냈는데 사 개월간 지리산을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한다면 당연히 기뻐하지 않을까!(이 추측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사실 상글이 봄이를 입양하기로 한 마당에, 봄이와 지낼 마땅한 집도 없던 터여서 방랑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방랑단은 그렇게 네 명이 됐다. 그 덕에 봄이는 내 인생 최초의 비인간 친구가 되었다. 후에 더 글을 쓰겠지만, 방랑단은 봄이 덕에 새로운 시각을 열렬히 배웠다. 지금 생각해도 봄이의 합류는 꼭 운명처럼 느껴진다.


운명의 방랑단원은 두 명 더 있다. 방랑이 시작되자마자 합류한 '아영'이다. 아영은 칠 년간 세계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성다양성축제에서 멋진 작품을 찍어준 적이 있어서 얼굴을 알고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방랑 첫날부터 며칠간 함께 걷겠다고 하더니, 방랑 이틀 차에는 사 개월 내내 걸으며 기록을 담당하고 싶다는 게 아닌가! 사개월 동안 방랑단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무서운 속도로 늘은 까닭도 사진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오늘'이다. 나의 오래된 친구인데 당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나는 방랑을 시작한 지 닷새 만에 오늘이 있는 인천으로 가서 방랑을 같이하자고 꼬드겼다. 내가 아는 용한 치료사는 지리산뿐이었으므로. 놀랍게도 오늘이는 내 제안에 응했고 해야 하는 일을 닷새만에 모두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에 오고는 허리께까지 오는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다.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딱 '오늘만큼만' 살자는 의미의 이름도 이때 정했다.


ⓒ아영_평소의 방랑단

이렇게 총 여섯 명의 방랑단원이 사 개월간 얻어자고, 얻어먹으며 지리산을 떠돌았다. SNS로 매일 사진과 방랑 일기를 번갈아 가며 써서 올렸다. 누군가 함께 방랑하고 싶다면 원하는 만큼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참여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기획한 6명이 매일 걷는 고정 방랑 단원이라면, 일일 방랑 단원으로 오고 가는 방랑 단원들도 있는 것이다.





ⓒ아영_기억산책 때 방랑단

 한 번씩은 1박 2일로 ‘기억 산책’을 했다. 우리가 이 주간 모은 숲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이다. SNS로 기억 산책 날짜와 걸을 코스를 공지하면 원하는 사람은 참여할 수 있었다. 기억 산책때는 사라진 숲을 같이 걷고 숲 놀이를 했다. 평소 방랑단은 일일 방랑 단원을 합해도 예닐곱쯤이었는데, 기억 산책 날은 스무 명이 훌쩍 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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