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산 훼손 원상복구 촉구 기자회견문
봉성산 원상복구 촉구 기자회견
2022.09.23 칩코
우리는 말을 하러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바람과 만나면 우리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없다면 말을 할 수 없지만, 지금도 바람이 몸속을 통과해 끊임없이 불기에 우리가 숨 쉬고 있습니다. 그 바람이 우리의 입 속 구조와 마찰이 생기면 말의 형태로 소리가 발생합니다. 동물만 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나무와 돌과 강과 산이 모두 말을 합니다. 우리가 바람으로 말하듯이 그들도 바람과 만나면 비로소 목소리를 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왜 우리 귀에 들리는지 생각해보세요. 숲속을 걸으면 고요한 소란스러움이 귀를 채웁니다. 꼭 노래처럼도 들리는 소리가요. 숲에서 노래하는 존재가 새들만이 아니란 것이죠.
부모가 아이에게 하나하나 말과 표정을 알려주듯이, 지구도 우리에게 순간마다 말과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아이가 점차 부모를 깊이 이해하듯이, 우리도 조금씩 지구의 표현을 익히게 됩니다. 봉성산은 야트막한 산인데도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몸이 후끈 더워집니다. 그때 저 멀리서 솔향을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미소가 절로 납니다. 그 순간 우리만 미소 지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솔바람이 먼저 우리를 향해 웃었고 우리가 그 표현을 이해했다고 여깁니다.
봉성산 수호탐사대 봉성즈와 함께 산에 오를 때, 우린 많은 지구의 표현을 만났습니다. 꽃이 새끼손톱의 반만큼도 되지 않게 조그마한 쥐꼬리망초도 보고, 도토리거위벌레가 떨어뜨린 나뭇잎 낙하산도 보고요. 괭이밥을 뜯어서 새콤한 맛도 보았습니다. 우린 그것들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이라는 형태의 기쁨은 지구가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였고, 우리가 그것을 보고 아름다워하며 기쁨을 느끼니까요. 부모와 깊이 소통한 아이가 느낄 법한 황홀한 기분입니다.
‘아름다움’은 아주 특별한 감정입니다. 이건 동의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를 보고 찬탄할 거예요. ‘네가 눈만 성형한다면 정말 아름다울 텐데’라고 느끼지 않겠죠. 지금 그대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동의의 표현입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 대상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봉성산에 올랐을 때 참 기뻤습니다. 봉성산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어느 한 군데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고요.
여러분들 눈에도 봉성산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봉성산은 오랜 세월에 걸쳐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물해왔습니다.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방식으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우린 동의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래, 지금 그대로 있어 줘’ 라고요. 봉성산이 오랜 역사 동안 구례의 진산으로 여겨졌고, 옛 지리지에도 기록된 까닭은, 자연녹지지역이자 근린공원이자 보전산지로서 법으로 보호받는 까닭 역시, 봉성산의 선물에 보답하려는 구례 군민들의 지극한 마음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봉성산에는 지금도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람과 빛과 소리와 향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봉성산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 놓아주세요. 주민들의 동의를 일절 구하지 않고, 적합한 행정절차도 없이 공사는 시작됐었습니다. 이에 긴급히 마련된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원회에게 김순호 군수님과 유시문 군의회의장님은, 봉성산을 되돌려놓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사는 여전히 강행되고 있습니다. 공사를 당장 멈추고 위태롭게 드러난 흙의 경사면을 다시 회복해주세요. 봉성산과 군민들과의 약속을 지켜주세요. 봉성산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