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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Sep 30. 2022

방랑 전의 추위 특훈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방랑단은 2~3월간 기획한 후, 본격 시작은 4월부터였다. 사 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방랑하는 일정이었다. 방랑에 앞서 도대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사실 빈손으로 떠나는 방랑이니만큼 준비물이 없는가 싶다가도, 마음 채비는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전 방랑은 난생처음이었다. 노숙도 처음, 탁발도 처음, 종일 무작정 걷기도 처음이었다. 그중 추위 견디기가 제일 자신없었다. 아무리 봄꽃이 만발한 때라지만 4월의 일교차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3월간 추위 특훈을 했다. 게다가 이때는 내가 귀촌하고 맞이하는 첫 겨울이었다. 난 더욱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귀촌했기에, 겨울에 기름보일러로 난방하고 온수를 데우는 방식이 영 마음에 걸렸었다. 평생 가스나 기름을 때고 살았으면서도, 뭔가 귀촌을 한 후에는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졌달까. 어떡하면 추운 곳에서 잘 자고, 차가운 물로 목욕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추위 안 타는 법’ 검색해보니, 다들 근육 패딩(?)을 입어야 한다고, 근육이 있어야 몸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추위를 안 타는 수준까지 근육을 만들려면 한두 달로는 턱도 없을 것 같으나 일단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꺼운 이불 두 겹을 덮고 전기장판과 방의 난방도 꺼버렸다. 공기가 얼음장 같아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야 코가 시리지 않았다.


이러고 며칠을 지낸 소감이라면… 이불이 너무 무거웠다. 두 겹 이불이 나를 밤새 봉인했다. 몸이 경직돼서 아침에는 뼈마디마다 살얼음이 낀 듯했다. 하지 않던 근력 운동을 해대니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이 생겼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단 소리다.


그러던 중 친구가 ‘빔 호프 호흡법’을 알려주었다. 빔 호프란 사람이 만든 호흡법인데, 자신의 면역체계를 조절해낼 수 있단다. 빔 호프는 실제로 얼음물에서 한 시간 이상인가를 버텨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현재까지도 사람들을 데리고 한겨울 숲속에 들어가 얼음 목욕하는 캠프 등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당장에 그 호흡법을 따라 했다. 신기하게도 그 호흡을 하고 나면 직후엔 몸이 좀 데워졌다. 그리고 몸이 식기 전에 당장에 찬물을 뒤집어썼다. 드디어 나도 에너지절약 찬물 샤워에 도전! 한겨울의 찬물 샤워는 숨이 그대로 멎는 것 같으나 1분쯤 지나면 몸에 감각이 사라지면서 찬물이 찬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기를 닦고 나면 신기하게도 몸이 화끈 열이 돌았다. 아! 이게 찬물 샤워의 맛인가! 며칠 간은 기적처럼 한겨울의 찬물 샤워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 노숙 연습을 할 겸, 집 옥상에서 얇은 침낭 하나와 박스를 덮고 잠을 잤다. 한 일본의 자발적 노숙자가 쓴 책이 있는데, 그곳에 박스로 끝내주게 따뜻한 일회용 집 만드는 법도 있다. 그 책을 보고 따라서 관 같은 박스 집을 만든 뒤 그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자 보았다. 이번엔 코가 시리기보단 등이 정말 추웠는데, 새벽에 체온이 떨어지는 때가 오면 빔 호프 호흡법을 하고 다시 잤다.


며칠간 추위 속에 잠을 자고 나니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콧물이 줄줄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깊이 잠들지 못해서 종일 멍하기도 했다. 역시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훈련이었다. 호흡법이나 노숙 박스 집보다 효과가 있던 방법은 고양이 송이의 품이었다. 송이는 내가 옥상에서 잠을 자자 나를 따라 옥상에서 잤다. 자기도 추운지 옆에서 자다가 내 침낭 안으로 들어와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대체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지날까? 새삼 지리산의 야생동물들이 존경스러웠다. 암, 아무나 못 하지. 강하고 실력 있는 동물들만이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겠지. 나 같이 매번 등 따스하게 자다가 별안간 추위 특훈하러 온 애송이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추위가 익숙해지면 좋겠다. 계속하다 보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나도 빔 호프 씨처럼 될지 누가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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