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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Sep 30. 2022

방랑 전의 야생초 특훈

<길을 잃으면 질경이를 따라가>



노숙 대비가 전부가 아니다. 매일 먹고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탁발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는 야생초 벼락치기 공부에 나섰다. 다행히 4월의 풀은 웬만해선 다 먹어도 된다고 들었다. 산에 난 풀만 뜯어 먹어도 굶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길을 가다가 처음 보는 풀이 있으면 무조건 ‘모야모’라는 앱에 물어보았다. 대개 10분 안에 풀 박사들이 어떤 풀인지 댓글로 알려주었다. 이 앱은 요새도 계속 애용하는데, 대체 풀 박사님들이 어디 사는 누구신지는 몰라도 절이라도 드리고 싶다.


아는 풀보다 모르는 풀이 더 많던 지라, 풀 공부에 한창일 때는 도무지 길을 가질 못했다. 한 걸음 건너 모르는 풀이 자꾸 나오니 찍어서 앱에 물어보기 바빴다. 나와 차라는 그렇게 외운 풀들을 서로 퀴즈를 내면서 달달 외웠다. ‘끝이 하트모양으로 갈라지는 이파리에 노란 꽃이 피는 풀!’하는 식으로 퀴즈를 내면 맞추는 놀이였다.


이때 벼락치기는 효과가 최고였다. 풀을 백 개 가까이 외우고 방랑단을 시작했는데, 웬만한 풀들은 거의 낯이 익었다. 방랑단을 하는 사 개월 내내 우리는 모르는 풀이 나올 적마다 앱이나 동네 할머니께 여쭈어보았다. 방랑이 끝날 즈음엔 나도 꽤 풀에 대해 척척 말할 수 있었다.


하나 복병은, 풀이 봄과 여름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당연하게 들리지만 풀 공부를 처음 하는 초보에겐 이것이 꽤 당황스러웠다. 여름에 처음 보는 풀을 검색해보면 봄에 이미 외웠던 풀이었다. 쇠뜨기라는 풀은 봄에는 곤봉 같이 생겼다가 나중엔 바늘 같은 이파리로 변했다. 두 풀이 모두 쇠뜨기였다니! 이외에도 ‘아니 그 연둣빛이던 풀이 붉은색이 되다니!’ 나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이던 풀이 매끈해지다니!’ 등 풀의 변천사는 여러모로 날 즐겁게 했다.


ⓒ아영

나도 어릴 적 내 사진을 보면 분명 달라졌다. 지금의 나보다 더 볼살이 통통하고 코도 낮고 몸집도 작지 않나. 풀도 마찬가지다. 풀들도 어릴 적엔 동글동글하다가 클수록 뾰족하거나 길쭉해지는 게 너무 귀엽다. 꼭 사람과 같다. 그러나 어릴 적 내 모습은 분명 나와 닮았다. 큰 눈이나 토끼 이빨은 그대로다. 톱니가 난 풀은 아주 어릴 적부터 앙증맞은 톱니가 저도 톱니랍시고 뭉툭하게 나 있다. 


요 신비한 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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