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균 시청률 14% 이상을 웃돌며 성황리에 마친 <윤식당>은 나영석 PD의 전작인 <꽃할배>와 <삼시 세 끼>를 적절하게 버무린 예능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출연한 이서진은 물론 함께 출연한 바 있는 윤여정과 신구가 외국의 여행지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는 콘셉트가 앞선 맥락을 충분히 활용한다. 이국적 공간으로 데려가 낯선 빛과 소리에 마음을 수놓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나 그것을 기쁘게 먹는 모습에서 대리 충족한다는 프로그램 콘셉트가 절묘하게 더해진 셈이다. 여기에 정유미의 신선함이나 우여곡절 끝에 만든 요리를 다양한 손님들에게 판매한다는 긴장감이 신의 한 수로 작용하였다.
<윤식당>은 이미 매력적인 가게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윤식당>이 예능 프로그램의 비일상의 판타지라는 내 생각과 다른 이들이 많았다. 메뉴, 요리 방식, 위생상태 등 실제 가게를 운영하는 AtoZ에 걸친 태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명 셰프가 개발한 레시피에 미술팀이 단 하루 만에 허름한 식당을 빈티지한 매력적 공간으로 바꾸고, 공간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식기와 운영장비, 조리도구, 식자재 등이 기본 세팅된 위에 출연자들이 그야말로 요리만, 서빙만, 계산만 하면 되었던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예능을 다큐로 보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들은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면 이런 기본 세팅된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임을 아는 이들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가게를 만드는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식당>은 좋은 가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었기에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윤식당>은 애초부터 거창하게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노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또 식당의 수지타산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도 않았다. 단지 <윤식당>이라는 무대에 출연자들이 요리사나 보조, 바텐더와 웨이터라는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는가를 지켜보는 게 핵심일 수 있다. 그래서 각자의 업무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나름의 전략,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의 반응 등을 보는 재미가 프로그램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재미를 만나보기 위해서는 <윤식당>이 기본의 꼴은 갖추고 있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가게의 시각적 아이덴티티, 메뉴, 역할 등이 미리 정교하게 세팅되었다. 불고기는 원가 고민 없이 좋은 재료와 특제 소스로 맛이 있었고 추가되는 메뉴에 필요한 조리도구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차지했다. 미술팀은 하루 만에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식당의 인테리어를 마무리지었다.
그렇다면,
이미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작은 가게로서 <윤식당>의 매력 포인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서로 관련되어 맞물려 있기도 하지만 몇 가지 포인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목각 토끼 인형으로 대표되는 가게의 시각적 상징, 빈티지한 파스텔 가구들과 소품, 간판과 린넨에 들어간 로고와 패턴 등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있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처럼 윤여정 배우를 표현한 <윤식당>의 로고는 간판, 메뉴판, 유니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토끼 목각인형은 네 명의 출연자들을 표현한 것이면서 손님을 기다리거나 여유로운 휴양지의 모습을 담는 중간중간 모습을 드러내며 상징처럼 작용했다. 일부러 칠을 벗겨낸 것 같은 테이블과 가구들은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면서 파스텔톤으로 따뜻한 휴양지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었으며 테이블보와 식기들도 간편한 라면조차 요리로 보이게 만들어서 대접받는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도록 좋아 보였다. 사족이지만 이런 이미지는 정블리라고 불린 정유미의 상큼한 옷차림과 매치가 잘되어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두 번째, 가게의 시공간이 요구하는 목적에 맞춤하는 것이다. 축제 주점에서 학교 앞 단골가게의 손맛을 기대하지 않는다. 축제의 들뜬 마음을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나누면 그만이다. 휴양지의 음식점도 맛이나 영양은 물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겠지만 관광객의 휴식이나 이국적인 것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가게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네 단골을 주대상으로 하는 가게가 아니므로 푸짐하고 값싼 음식보다는 색다르고 개성 강한 음식이 필요했다. 일단 번듯하게 무난한 양념한 소고기 메뉴로 시작해서 현지 사정에 맞춰 추가한 라면, 튀김만두, 굳이 한국스타일이라 이름 붙인 치킨 그리고 파전은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면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들 음식을 서툴러도 젓가락을 이용해 먹는 경험은 그들에게 <윤식당>을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하게 했을 것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잘 갖추어진 가게의 모습이나 바다를 바라보는 선베드를 놓고 물놀이 도구를 대여한 것도 관광객들이 그 공간에 머물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세 번째, 음식의 레시피에 충실한 조리와 제공하는 순서와 같은 서비스 방식이다. 다양한 음식점을 경험한 출연자들의 경험이 묻어났다. 능숙한 실력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현지의 전기공급 문제나 기기의 오작동 등의 상황에서도 여러 주문에서 조리 순서를 정하고 음료와 애피타이저 등을 고려하여 순서를 정하여 조리하는 과정은 작은 부분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또 아무리 바빠도 대량으로 한꺼번에 조리하지 않고 소량으로 조리해서 레시피를 지켜 맛을 일정하게 유지한 원칙을 고수한 점도 좋았다.
네 번째, 소위 뜨내기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지의 가게라고 할지라도 손님과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가게 수익이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물놀이 도구를 먼저 이용하고 나중에 가게를 이용하도록 하거나 영업이 끝난 뒤늦게 찾은 손님에게 가능한 재료로 식사를 마련하는 부분에서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 열흘의 기간 동안, 게다가 점심 직전에 문을 열고 저녁 장사는 거의 하지도 않은 <윤 식당>이지만 시식행사를 통해 재방문한 손님, 시시때때로 알러뷰를 속삭이던 사랑꾼 손님, 시원한 물을 공짜로 주었더니 친구들까지 대동하고 방문한 손님 등 조금씩 공간을 둘러싼 발걸음이 늘어감을 볼 수 있었다. 가게를 도왔던 주변 상인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주변 가게들과의 관계와 공생을 읽었다면 오버였을까.
좋은 식당 꽤 다녔을 성공한 배우들이 가게를 직접 운영한다는 발상도 신선했지만 그들이 자라 세팅된 가게에서 멋지게 좋은 가게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지언정 계속해서 응원에 응원을 더하도록 만들었다. 진심으로 음식을 만들고 <윤식당>에 머물렀던 손님들의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솔직한 평가들을 지켜보던 몇 주간의 행복한 시간이 끝났다. 아마 그런 가게 하나 만들려면 얼마의 금액이 필요할 것이고 운영을 유지하려면 얼마만큼의 매출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셈법이 남았겠지만, <윤식당>에서 기본적으로 손님들에게 향한 매력적인 요소들에서 초심이나 진심과 같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