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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Feb 22. 2021

졸업식엔 자장면이지

면발이 가방끈처럼

결혼과 출산, 중간 이런저런 일들로 지지부진 미루다가 이제는 박사논문을 써야하는데... 라는 넋두리 뿐인 연구실 창밖으로 '하나 둘~'이라는 목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무슨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졸업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간간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코로나때문에 대면 졸업식이 없지만 기념촬영을 위해 졸업가운을 대여하는 기간이라 모교에서 기념촬영하는 졸업생과 가족의 들뜬 목소리였다. 


졸업식날 줄지어 선 차량안내에 하얀 머플러에 가운입은 졸업생들과 한껏 차려입은 엄마아빠들의 모습, 최신 디자인을 선보이는 꽃장사들, 먹거리장사,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진 사진사들이 북적이던 그 졸업식의 모습은 아니라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 시절 왁자지껄했던, 나의 졸업식이 바로 어제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유치원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졸업식에는 무조건 자장면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기엔 먹을거리가 많은 시절이지만 적어도 아빠에게는 특별한 날에는 자장면에 탕수육이 함께 있어야 확고함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때만하더라도 자장면은 외식메뉴로 손색없었고 그 맛도 어린 나에게 딱이었으므로 졸업식날 자장면은 최고의 외식이었다. 

돌이켜보면 배움이 길지 않은 부모님은 자식의 졸업식이 마냥 자식을 축하하는 자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신들이 키워낸 아이가 상급학교를 하나씩 졸업할 때마다 아이의 대견함만큼 당신들 스스로의 성취감도 있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아빠는 바쁜와중에도 대부분 졸업식에는 참석을 해주셨었다.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큼지막한 꽃다발을 안기며 동생과 엄마와 번갈아가며 배경을 재가면서 사진을 찍어주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골 집에 내려가면 대학졸업식때 엄마 엄마가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이 나와 동생의 사진과 함께 액자속에 남아있다. 


아빠는 석사학위를 받은 날은 교수님에게 허리를 90도 굽혀서 인사를 하셨다. 큰 강당에서 수많은 석박사 졸업생들이 모여 진행된 졸업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석에서 보시고는 박사가운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우리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셔서는 교수님에게 다가와 넙죽 인사를 하신것이다. 선생님과는 동년이었고 언뜻보기에 아빠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데도 우리학생들보다 더 깍듯하게 인사하는 아빠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했다. 선생님은 함께 인사를 하시고는 간단한 덕담을 해주셨다. 부끄럽기만한 논문을 들고 졸업하는 딸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된것 마냥 연신 감사해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코끝이 시큰하다가도 이제라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섯번의 졸업을 하면서 먹었던 자장면의 맛은 다 달라도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졸업을 축하하고 졸업 이후의 일에 대해 기대와 격려를 나누던 시간이 떠오른다. 거무죽죽한 양념에 버무려진 수타면을 후루루 마시면서 어쨌거나 졸업장을 받았으니 한고비 넘은셈이라고 세상 해맑게 웃었던 때가 떠오른다. 


유치원을 졸업하면 며칠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 다음에는 중학교 고등학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끝이지만 시작이 확정된 졸업은 아쉬움보다는 개운함이 컸었다. 대학과 대학원부터는 그 시작과 끝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서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존재했다. 취업이나 진학으로 함께하던 친구들과의 길이 서로 갈라지던 때의 외로움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끝은 반드시 끝이기만 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한번의 끝을 본 사람은 그 다음의 끝을 맞이 할 때 좀 더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할런지 모른다. 누구나 지나온 시절을 끝내고 점차 서로 다른 시절을 만들면서 졸업이라는 의식에서 똑같은 음식을 접하는 것은 귀한 경험일 수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색으로 만들어진, 얼기설기 엉킨 면발을 주욱 당겨 입안으로 곧게 슈르륵 빨아들이는 자장면은 불분명하기는 해도 이제 앞으로 나가야하는 나를 격려하는 듯 더 시원스럽게 먹어주어야 한다.    


이번 여름에는 또 잘 차려입은 엄마아빠와 자장면을 먹어야 할텐데 걱정하다가도 생각난김에 쓸데없이 요즘 자장면 맛집이나 알아둘까싶어졌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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