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백년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도 똑같다.
조조 모예스.
난 그녀가 과대평가 받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마켓팅의 힘으로 ‘미 비포 유’ 를 읽었고, 딱히 읽을게 없어서 또 ‘원 플러스 원’ 을 읽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내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일까?
초반에는 조금 지루하다. 1910년대가 아니라 현대로 넘어온 부분의 진행이 그렇게 느껴졌다. 시대를 교차하며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이름들 때문에 조금은 헷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게 몰입을 방해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소설의 초반부 지루함이 마지막의 화려한 결말을 위한 포석이라면 참고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은 후 처음으로 들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 시대를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대하소설을 비롯해서 전쟁이 일어나던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여럿 읽었다. 읽을 때마다 몰입되었다.
전시라고는 하지만 말도 안 될 정도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그 시절, 전시라는 이유로 군인이 최고의 권력자나 다름없고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용인되던 시절은, 작가들이 수년에 걸쳐 해낸 취재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묘사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누군가는 개처럼 맞고, 누군가는 강간을 당하고, 생이별을 당하고 처참하고 죽어가야만 했던 그때 그 사람들.. 단순히 재미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만, 그런 글들은 독자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난 이 소설의 약점이 폴과 리브의 우연한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났다. 중반부까지도 그랬다. 그냥 저냥.. 그렇게 적당히 사건이 마무리 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막판 십 퍼센트에서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작위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했던 둘의 인연도 소설적인 장치로 눈감아줄 만큼 더없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글을 쓰기 때문에 그걸 너무 잘 안다. 조조 모예스는 그걸 해냈다. 그럴 수 있는 작가의 필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쯤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내가 조조에게 이런 부분을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작들 때문이었다. 큰 사건 없이 등장인물들의 감정교류가 중심이 됐던 전작들. 물론 영미권 사람들이나, 혹은 우리나라 독자들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임팩트가 약했다. 그래서 그저 그런 가족 간의,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쓰는 평범한 작가였다. 나에게 조조 모예스는 그랬다.
내가 최근 소설을 읽고 이런 정도의 재미와 감동을 받은 게 기욤 뮈소의 ‘지금 이 순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 사이 재미있는 소설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만큼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감흥이 가시지를 않는다. 몇 달 안에 한번 정도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는다는 건 그 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것이다.
소피가 죽지 않고 남편을 만나 여생을 보내서 다행이고 그의 동생 엘렌이 언니의 생존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폴이 리브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유일한 생존자를 찾아내 증언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래서 유작 찾기에 나선 돈밖에 모르는 족속들에게 회심의 한방을 날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리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놓지 않고 다 읽은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조조 모예스.. 그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