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만 쳐도 괜찮다

by 우성


난 꽤 오랫동안 도망을 쳐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항상 안정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다.


빚이 있어도, 당장 월세가 몇 달치나 밀렸어도, 핸드폰이 요금을 못내 끊겼어도, 그래도 난 일단은 도망 쳐야겠다. 어딘가는 살길이 또 있겠지. 누가 했던 말처럼 그깟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어디서 또 못 구할까.


봄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니 또 천장에는 비가 샌다. 벌써 3년째다. 집주인에게 네 번인가 말을 했지만 들어먹지를 않는다. 월세 밀렸다가 그러는 건가. 나갈 테면 나가라는 소린가?

한 달 밀린 핸드폰 요금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입금해버렸다. 통장 잔액은 십만 원. 조금 무리하며 이것저것 빚 정리를 하다 보니 요번 달도 빠듯하다. 월급 받은 지 아직 보름도 안 지났는데. 이번 달에 동생이랑 고향에 갈일도 있을 것 같은데.

전기세 청구 금액이 조금 이상하다. 이중 청구가 된 것 같다. 알아봐야하는데.. 뭐 내가 맞더라도 돈을 또 몇 만 원 내야한다.

빨리 모아서 빚부터 갚는다던 계획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본격적인 빚 갚기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갚을 것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한 두어 달은 더 해야 아직 독촉장 날아오고 있는 건강보험을 다 낼 수 있고, 타 통신사 연체금 정리를 할 수가 있다. 버틸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런 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난 또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악조건을 해결하고 안정을 찾아야하지만, 그 안정이 찾아오기 전에 죽을 것 같으니까.


또 도망쳐도 괜찮다. 할 수 없잖아.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죽을 것 같아도 버티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버티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바보 같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