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요?”
루리코와 모에는 소꿉친구 때부터 알아온 사이다. 둘 중 하나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지금까지도.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사람은 루리코이고 결혼의 상대자는 모에가 사귀던 남자였다. 소꿉친구의 남자를 빼앗은 셈이다. 모에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안면몰수, 등을 돌리고 살 법도 하지만 그녀는 루리코의 세 번째 결혼식까지 참석을 한다.
얼핏 보면 루리코는 자신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요즘 한국말로 치면 ‘김치녀’나 ‘된장녀’, 그쯤 된다. (혹시 이 두 단어에 불쾌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소설 속 초반 루리코는 그런 단어 말고는 딱히 표현할 말을 찾기가 힘드네요)
루리코는 계속 투정만 부리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줄로 알며,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모습만 보이니까. 상대적으로 모에는 착한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각자의 상처가 있다. 상처라기보다는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강박관념 정도? 음.. 그냥 각자의 비밀과 입장의 차이 정도라고 해둘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양쪽 다 환상이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녀들 사이로 스쳐가는 혹은 붙어 있는 사람들도 그냥은 지나치지 않는다. 모에와 어쩌다 친해지고 그러다 한동안은 한집에 살기까지 하는 남자 고딩과 모에가 루리코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루리코의 전 애인, 그로 인해 알게 된 게이바의 사장인 후미와 그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게이인 료(이 남자의 이름만 유독 기억이 나는 이유는 뭘까?)까지. 남자 고딩이 했던 거짓말이 탄로가 나고, 그 꼬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리가 설명되는 부분에서는 조금 놀랐다. 내가 똑같이 경험한 부분은 아니지만 그 꼬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사실은 이렇다”며 드러나는 모에의 깊은 속마음, 그리고 루리코의 모에를 향한 질투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결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 잘생기긴 했지만 절대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한동안 바라보기를 각오하는 루리코.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명료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참 마음에 드는 단락이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양쪽 다 환상이다. 그렇다면 행복한쪽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냐.
참 예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