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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성 Sep 30. 2016

인생이라는 건 결국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어깨너머의 연인   



“그럼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요?”



루리코와 모에는 소꿉친구 때부터 알아온 사이다. 둘 중 하나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지금까지도.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사람은 루리코이고 결혼의 상대자는 모에가 사귀던 남자였다. 소꿉친구의 남자를 빼앗은 셈이다. 모에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안면몰수, 등을 돌리고 살 법도 하지만 그녀는 루리코의 세 번째 결혼식까지 참석을 한다.


얼핏 보면 루리코는 자신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요즘 한국말로 치면 ‘김치녀’나 ‘된장녀’, 그쯤 된다. (혹시 이 두 단어에 불쾌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소설 속 초반 루리코는 그런 단어 말고는 딱히 표현할 말을 찾기가 힘드네요)


루리코는 계속 투정만 부리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줄로 알며,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모습만 보이니까. 상대적으로 모에는 착한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각자의 상처가 있다. 상처라기보다는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강박관념 정도? 음.. 그냥 각자의 비밀과 입장의 차이 정도라고 해둘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양쪽 다 환상이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녀들 사이로 스쳐가는 혹은 붙어 있는 사람들도 그냥은 지나치지 않는다. 모에와 어쩌다 친해지고 그러다 한동안은 한집에 살기까지 하는 남자 고딩과 모에가 루리코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루리코의 전 애인, 그로 인해 알게 된 게이바의 사장인 후미와 그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게이인 료(이 남자의 이름만 유독 기억이 나는 이유는 뭘까?)까지. 남자 고딩이 했던 거짓말이 탄로가 나고, 그 꼬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리가 설명되는 부분에서는 조금 놀랐다. 내가 똑같이 경험한 부분은 아니지만 그 꼬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사실은 이렇다”며 드러나는 모에의 깊은 속마음, 그리고 루리코의 모에를 향한 질투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결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 잘생기긴 했지만 절대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한동안 바라보기를 각오하는 루리코.





후미가 한숨을 쉰다.

“참 내 낙천적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런 환상만 품어서 어쩌겠다고. 현실을 직시해야지.”

루리코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요?”

“보통은 그렇지.”

“후미씨,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머리 엄청나게 좋고, 일도 열심히 잘하던 애가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신장애를 일으킨 경우도 있어요. 아직도 회사에 복귀하지 못했어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평생 편안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더니 회사가 망하지를 않나, 정리 해고를 당하지 않나, 시집 잘 갔다고 좋아하던 애는 사고로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겨우겨우 애 키우고 있다고요. 앞날은 아무도 몰라요. 그거 양쪽 다 환상 아닌가요? 그렇다면 행복한 쪽을 생각하는 게 좋잖아요. 그편이 훨씬 더 즐겁게 살 수 있죠.”

후미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이죠, 나는 행복해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난 항상 행복해.. 중략..”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명료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참 마음에 드는 단락이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양쪽 다 환상이다. 그렇다면 행복한쪽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냐. 




이 대목에서 조금 아이러니함을 느꼈던 건 지극히 고리타분하고 틀어박힌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은 루리코의 생각이 평범의 틀을 벗어났다는 것이고, 반대되는 쪽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사회가 말하는 평범에서는 벗어난 게이였다는 점이다. 




참 예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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