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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우 Chociety Jul 31. 2024

29살 택배기사의 출간 스토리

택배기사 필독서! : 택배에서 출간까지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김희우, 행성B

  

택배기사 일을 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담은 <29살 택배기사입니다>를 브런치에 연재하던 당시, 출판제안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0000 출판사입니다.

제안의 제목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제안의 내용은 빨라진 심장박동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출간하고 싶은데, 미팅할 수 있을까요?”     


출간제안을 한 출판사가 큰 출판사인지 작은 출판사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살 때는 책 자체를 보고 사지, 출판사 이름을 보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게 출간 제안을 했던 출판사는 내 서재에 꽂혀 있는 몇 권의 책들을 낸 회사였다.

안 그래도 ‘책으로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구독자들의 요청이 있었던 터라, 출간 제안을 받으니 욕심이라는 게 생겼다. 브런치와 딴지일보 연재를 하면서 이 글을 읽고 응원해 주셨던 독자님들께 ‘읽어주셨던 콘텐츠가 결국 책으로 나왔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전해드리고 싶어졌다.      


고민 끝에, 나는 출간 제안을 승낙했다. 그런데 출간 제안을 했던 출판사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전화를 했을 때 압박 면접하듯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보지 않은 티가 나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택배일을 하신지 얼마나 되신 거?”

“현직 택배 기사이신 거죠?”     


내가 연재했던 글에 분명히 택배일을 언제부터 언제부터 했다는 내용이 있고, 1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한 뒤 일을 그만두는 내용까지 있었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내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학비를 벌기 위해 다시 택배와 비슷한 집화 기사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일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들에 있는 그대로 답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을 했으며, 일을 쉬면서 택배기사 에세이를 썼다고.     


“아, 그래요? 현직이 아니구나...”     


돌아온 출판사의 대답은 역시나 찜찜했다.     


“아, 아무래도 현직 택배기사가 쓴 에세이하셨던 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출판사와 약속한 미팅날이 다가왔다. 출판사로 찾아오라고 하기에 나는 시간을 내어 양복을 차려입고 출판사에 방문했다. 출판사가 내가 사는 곳과 먼 곳에 있어 찾아가는데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약속 정시에 도착했지만 출판사에는 아무도 없고 입구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린 후 내게 출간제안 메일을 보냈던 편집 담당자가 다가와 나를 회의실로 데려갔다. 약속된 미팅에 참석하는 것인데도, 마치 아무도 반기지 않는 방문 판매 영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두 시간 넘게 걸려 간 것에 비해 미팅은 허무하고 짧게 끝났다.

“왜 양복을 입고 오셨어요?”

마치 취조하는 듯, 옷차림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 미팅은 진행될수록 힘들어졌다.

내 미래에 대한 우려 부터 “정치 성향이 있으신 건지?”, 결혼여부나 가족관계 등에 대한, 정작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사적인 질문들만 이어졌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책 내용이나 앞으로의 출간 계획과는 너무 동떨어진 질문들이라 의아했다. 단순히 시간 떼우기 용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하기에 ‘출간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후 마케팅할 때 저희가 하라는 대로  따라주셔야 하는데 그 부분 괜찮으시죠?”라는 질문이었다.

미팅은 30분 만에 끝났고, 나는 다시 두 시간의 여정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당혹스러운 건 미팅 이후다. 마치 출간제안을 한 적도 없었다는 듯, 출판사로부터의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혹시 먼저 출간 제안을 하고, 미팅까지 해놓고 말도 없이 출간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나?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지만, 설마설마했다. 결국 2주가 지난 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만약 출간을 하게 된다면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도 있었기에 앞으로의 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출간 일정을 알고 싶었다.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내 질문에, 편집 담당자의 대답은 내 최악의 가정과 맞아떨어졌다.     


“아~ 저희 내부에서 회의한 결과, 출간은 어려울 것 같네요.”  

   

사과 한 마디 없이 그게 끝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백 번 양보해 먼저 출간 제안을 하고 두 시간 거리를 오라 가라 해놓고서도 출간을 취소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럴 거라면, 상대를 2주나 기다리게 하고, 먼저 전화하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별 말없이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해리 포터도 12개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한 번의 거절에 풀 죽어 있겠나? 책 출판? 꼭 해내고야 만다!

먼저 나와 잘 맞는 출판사에 먼저 제안해 출판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가만히 앉아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내 적성과 맞지 않았다. 생수기사에서 택배기사로 이직할 때도 길가는 택배기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일자리를 청하지 않았던가? 인터넷상으로 출간 제안을 하는 것은 그것에 비해서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출판사들에게 출간 제안을 먼저 보내기 시작했다. 본사 사이트로 투고를 받는 곳에는 사이트를 통해 출간 제안 하고, 메일을 통해 투고를 받는 곳은 메일로 출간 제안을 했다.

그렇게 서른 군데의 출판사에 제안을 넣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해서까지 출간이 안되면 안 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원고가 너무 재미있다’ ‘출간을 꼭 하고 싶다’는 답이 온 것이다. 출간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출판사의 규모라든가 인지도 같은 것에 대해서 약간은 알게 되었는데, 긍정적인 답이 온 회사들 중에서는 처음 브런치로 내게 제안했다 취소한 출판사보다 훨씬 큰 곳들도 있었다.     


거절 메일 조차 감사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절 메일은 대형 출판사 한 곳에서 온 메일이었는데, 메크로로 같은 내용을 붙여넣기한 내용이 아니라, 원고가 이런저런 부분이 정말 좋다. 출간하고 싶었는데 내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너무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출간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내부 검토를 끝내고 그 확실한 결과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처음 브런치로 제안한 그 회사와는 달랐다. 거절당하고도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맙게도 출간을 하고자 하는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나는 바로 답을 보냈다. 사실은 여러 군데에 출판 제안을 했고, 긍정적인 답을 주신 곳이 많아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기분이 나쁘시진 않을까 걱정하며 답을 보냈는데, 출판사들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기다릴 테니 결정되면 알려달라는 답을 주셨다.     


여러 출판사들을 두고 어디에서 낼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출판사의 규모보다는 책에 대한 애정을 중점으로 고려했다. 또 지금까지 책을 몇 권 냈고, 한 달에 책을 몇 권 내는지도 살펴보았다. 또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으로 생각하고 10%의 인세를 온전히 지급하는 곳만을 고려했다.

그 결과 나는 ‘행성비’ 출판사와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7편의 에피소드를 더해 이번에 책 출간을 했다.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가 그것이다. 책을 만들면서 너무 고생하신 프로 중의 프로 이윤희 편집장님과 응원해 주시고 믿어주신 임태주 사장님, 다재다능하신 배새나 마케터님, 이 글을 발굴해 많은 독자님들과 만나게 해 주신 딴지일보 편집팀, 가장 먼저 서평을 써주시고, 책의 가치를 높여주신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에 연재할 때부터 택배기사 에세이를 봐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이 과거의 나처럼 세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희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또 그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훌륭한 어른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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