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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졸업식

나와 술 이야기

by 글사랑이 조동표

술 졸업식 - 나와 술 이야기


- 아버지가 처음 가르쳐준 ‘주도’


술은 나에게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일종의 문화이자 예법이었고, 나름의 철학이었다.

그 시작은 아버지였다.

중3 시절, 집안에 모과주가 익어가며 퍼트리던 향에 홀려 술에 대한 유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고3, 예비고사를 마치던 저녁, 아버지는 친구와 내게 첫 맥주잔을 따라주시며 주도(酒道)를 가르쳐주셨다. 라벨을 손으로 감싸 쥐고, 잔을 낮게 들어 두 손으로 정중하게 따르는 법.

그 모든 행동은 단지 ‘마시는 법’을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였고 겸손의 태도였다.


- 막걸리와 젊음의 숙취


대학생이 되자, 세상은 막걸리 냄새로 가득했다. 가난한 자취생들에게 맥주는 사치였고, 소주와 막걸리는 현실이었다. 카바이드가 섞인 싸구려 막걸리에 취해 며칠씩 고생도 했지만, 그 시절의 젊음은 술을 통해 웃고 울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치며 가까워졌다.


특히 친구가 많았던 K대에 놀러 가면, 정문 앞 시장통에서 ‘전통’이란 이름으로 막걸리 건배가 이어졌다. 거기서 열린 가을 체육대회, 아침부터 부어댄 막걸리에 사흘을 앓아누웠다. 나는 종종 막걸리에 취하고 쉽게 토했다.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었다.


- 폭탄주와 접대의 시대


회사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생맥주와 소주가 주류였지만, 이내 양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로 빨리 마시다 기억을 잃은 적도 많았다. 한일(韓日) 교류회에서 양주로 혼을 내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물에 희석시켜 마시는 미즈와리(水割り) 주법을 비웃다, 왜 그렇게 마시는지 깨우치기까지 10년은 걸렸다.


예전엔 쉽게 마셨는데 이제는 비싸서 못 사는 일본 위스키. 일본을 대표하는 산토리의 야마자키와 히비키는 고급 위스키의 반열에 올랐다.

양주에 입문을 하니 폭탄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주잔을 맥주잔에 빠뜨려 마시는 ‘잠수함’ 폭탄주가 접대의 전통이 되었다. 폭탄주는 빠르게 취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빠르게 어색함을 무너뜨렸다. 40대의 나는 가끔 와인도 마셨지만, 거의 매일 폭탄주에 절어 살았다.


고객들이 선호하던 폭탄주는 제조법이 여러가지.

중국 주재원 시절엔, 백주(白酒)의 세계가 펼쳐졌다. 50도가 넘는 중국 백주를 맥주잔 가득 따라주는 그들의 접대는 ‘의례’이자 ‘시험’이었다. 점심 자리부터 백주를 원샷으로 마신 후 정신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여름 북경에서 거래처에 제품을 넣으려고 대낮부터 술대결을 벌이다 열이 올라 밖으로 나왔더니 섭씨 40도였다. 땡볕 더위에 휘청거리며 찬물로 세수하고 다시 술자리에 복귀하던 날도 있었다. 그 무모함은 지금 돌아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중국에서 늘 마시던 오량액(五糧液)은 가짜가 많다.

귀국 후에는 내가 평생을 모시던 회장님의 폭탄주 사랑 덕에 술자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주는 '월화수목금' 연일 술자리가 이어졌다. 아내는 “아직도 20대처럼 마시느냐”며 잔소리를 했고, 나는 그 말에 코웃음 치며 “그게 내 낙이고 일인데 뭘~하며 무시했다. 그 시절의 나는 술상무였다.


회장님은 골프 폭탄주를 좋아했다.

- 은퇴 후, 술은 점점 멀어지고...


그런데 은퇴와 함께 술도 내 인생에서 조금씩 퇴장하기 시작했다. 만남이 줄어들자 자주 마시지 않게 되었고, 모임이 있어도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술 냄새조차 거슬리기 시작했다. 마시고 나면 숙취가 오래 남았고, 떠드는 소리조차 공허하게 느껴졌다. 체력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인생에서 마실 만큼 마신 총량의 법칙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잔을 내려놓게 되었다.


- 졸업해야 할 시간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봄날은 술과 함께 흘러갔다. 택시도 잡지 못해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던 밤들, 숱하게 잃어버린 소지품, 걱정 어린 잔소리, 억지로 마시다 탈 난 기억들...

그러면서도 술 한잔에 계약이 성사되던 순간의 짜릿함, 친구와의 러브샷 속 진심 어린 우정, 그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하지만 이제는 졸업해야 할 때다. 이태백처럼 달빛을 음미하며 시를 읊는 낭만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술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시는 술자리를 사랑하지만, 지금은 그 어울림조차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술이 필요하지 않다. 아니, 술이 나를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 술이여, 이제 안녕!


이제는 술에게 작별을 고하려 한다. 함께했던 수십 년의 세월에 감사하며, 더 이상 그립지 않은 이별을 준비하고자 한다.

가끔 한두 잔 정도야 하겠지만, 그건 향수(鄕愁)를 위한 것이지 습관은 아닐 것이다.


술이 없다고 내가 덜 즐거운 사람도 아니고, 술이 있다고 더 유쾌한 사람도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자~ 위하여!!! 건배!!!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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