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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May 23. 2023

아름답게 첫 일자리와 이별하자

[신중년 생존전략 1장-현실을 읽자]

대학 졸업 후 대형 생명보험사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얼마전 퇴직을 했다. 30년 남짓한 직장생활을 한 곳이다. 강남에 아파트도 마련했고, 퇴직할 때는 위로금도 받았을테니, 자산으로는 큼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단 친구는 일할 때 맡았던 교육 쪽의 역량도 다시 점검하고, 일단은 여유를 즐기는 것 같다.      


다른 친구는 10년전쯤 첫 직장에서 팀장을 마지막으로 나왔고, 관련 업계에서 두곳 정도를 이직했다가 4년전쯤부터는 인사쪽 경력을 활용해 헤드헌팅 업무를 하고 있다. 당연히 안정적인 첫 직장에 비해서 수익은 줄어든 것 같지만, 아직도 부인이 현직에 있어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한 친구는 정년이 보장된 공기업에 있다. 다만 이런저런 지병이 생기면서 걱정이 쌓이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퇴직까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몸이 아픈 상태서 계속 일을 하는게 바람직한 가를 고민한다.      

다른 한 친구는 회계법인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상당히 높은 수익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무든 이유에선지 숙면을 취하고 있지 못한다. 결국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먹고, 어지간한 술에는 잠에 들지 못해서 계속 비몽사몽한 느낌이다. 운전을 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걱정을 말한다. 친구 모임에서 내가 좀 쉬거나, 정신상담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여자 동창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난 남자가 집에 있는 꼴은 못봐야. 집에 아무리 돈은 많으면 뭣한다냐, 남자는 일을 해야 남자답게 보인다. 너도 일 그만두면 아무 볼짝 없어진다.”     

속으로 골이 난다. 옛날에 술 먹고 행패부리는 시절의 남자의 위상이 그립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이다. 1990년대 전체이혼의 5% 였던 황혼 이혼의 비중이 지금은 37%까지 늘어났다는 통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곧바로 황혼 이혼을 당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      

현실은 어떨까. 미래에셋투자와 연금센터가 최근 10년간 국내 근로자들의 퇴직 동향을 분석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55∼64살 연령층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살이었다. 1차 베이비부머가 이 정도라면 신중년도 그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많지 않다.      


결국 대부분은 50살을 전후로 직장 생활을 그만 둔다. 앞의 고향 친구 사례가 아니더라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처럼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라 해도 50살이 넘어가면 마음이 허해지는 것은 차이가 없다. 필자는 공직할 때 만났던 동갑들과도 여전히 친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볼 일이 많다. 얼마전 현직인 친구들을 만나서 한 말이다.      

“너희들 퇴직한 선배들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냐? 니네도 이제 5년후면 퇴직이야. 퇴직 이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연금 받아서 여행하는 것도 얼마 못가.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을 마친 후에 새로운 일을 찾는 거다. 돈 보다 일이 소중할 수 있어.”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은 첫 직장에 비해서 휠씬 힘든 일이다. 다만 몇가지 원칙만 갖는다면 자존감 있게 새로운 일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첫째, 기존에 하던 일을 기초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첫직장에서 자신이 했던 일은 30년 인생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일이다. 일이 없다면 모르지만 연결할 수 있다면 연결하는 게 일자리를 찾기도 쉽고, 안정적이다. 공무원 가운데 정년 이후에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기술적 공무원이다. 필자가 아는 이들도 퇴직 후 엔지니어링 회사나 설계사 등에서 간부나 고문으로 재취업해 10년 넘게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공직과 연결된 부정적인 일자리라면 문제지만, 공무원이 가진 전문성을 살려서 일하다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두 번째는 공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 오십은 공부에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다. 필자가 성공적인 이모작 사례로 소개하는 정고문님은 오십대 초반에 화재보험사의 대표로 정년퇴임했다. 이후 방송대 중문과로 편입해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 배낭여행을 다니다가 필자와 인연이 됐다. 중국 여행 코스를 설계할 때 자문을 했고, 그러다가 내가 책쓰기를 권했다. 그리고 책이 나온 후 얼마후에 대학 총장 공모에 응모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이후 두 번 총장을 연임하고, 8년만에 퇴임하니, 60대 후반이 됐다. 여전히 여행을 하고, 책도 쓰고 계신다. 또 <신중년이 온다>에서 소개한 안사람 친구의 남편도 백화점 VIP팀장으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주변의 사업제안을 뿌리치고, 전기기사를 공부해, 작은 전파사를 하다가 지금은 서울 종로의 한 시장 도시 재생담당으로 다시 일하고 있다. 


세 번째는 남의 눈치를 볼 나이는 지났다는 것이다. 사실 오십이 넘으면 남을 볼 겨를이 있는 사람도 드물다. 스스로가 남을 의식할 뿐이다. 또 돈이나 지위, 명예로 남들을 깔보는 사람은 대부분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따라서 스스로도 남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남은 시간이 30년이나 됨에도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지 않다. 우선 남들을 대하는 태도다. 스스로 학벌이나 스펙이 있다고 자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노년의 일자리는 그런 능력이 필요한 곳이 많지 않다. 또 그런 능력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다 대체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다. 따라서 직장에서 평판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2008년 귀국해 새만금청에서 투자유치 담당 전문 공무원으로 5년을 보냈다. 공직을 나온 후 전문 매체 편집장으로 일하다고, 보성그룹에 투자유치와 마케팅 담당 상무로 전직했다. 이후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을 거쳐서 대선 시기에 캠프에 공보팀장을 맡았다. 이후 신문 편집국장을 거쳐서, 지금 일하는 곳에 기획이사로 전직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은 당연히 내 평편조회를 했을 것이다. 또 부정이나 음주운전 등 개인적인 문제도 점검했을 것이다.      

물론 성격을 이기지 못해서 갈등을 빚은 적은 있지만, 그런 일들은 내가 그 자리에서 해야될 선을 넘지 않는 것이었고, 다시 옮길 수 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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