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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고 May 10. 2022

레아는 가끔 나의 왼쪽에 찾아온다

몇 없는 나의 자랑거리

침대에 누울 때면 항상 왼쪽 공간이 오른쪽 공간보다 조금 부족하게 눕는 편이다. 별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저 왼손 손끝이 침대가 아닌 허공에 떠 있는 감촉으로부터 어떠한 안정감을 얻는 듯 하다. 몸의 극히 일부이지만 그것만이라도 어딘가 부유해 있는 느낌이 숙면에 도움을 준다. 아주 어릴 적부터 형성된 무의식적인, 아니 이제는 의식적으로도 알게 된 나의 습관이다.


레아(만 3세)


우리집으로 레아가 입양을 온 건 이런 습관이 형성된 지 한참은 나중의 일이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좁은 원룸에 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레아는 침대 위에서 나와 함께 뒹굴다가 잠에 들곤 했다. 처음에는 발끝 쪽에 똬리를 틀고 잠들던 애가, 조금씩 무릎 사이로, 골반 옆으로, 팔과 갈비뼈 사이로 올라오더니, 어느샌가 오른쪽 어깨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도 레아는 매일 이곳에서 잠에 든다. 나의 오른쪽 어깨와 얼굴 사이에서. 다른 곳은 동생 레니에게 전부 양보해줌에도 유일하게 침범하면 하악질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 번은 왜 레아가 내 몸의 왼편이 아닌 오른편에서만 잠들까 의문을 가져본 적 있었는데,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집냥이들이 그러하듯 몸집이 통통해지면서 왼쪽 공간에 들어와 잠들기에는 그녀 역시도 불편했을 것이다. 레아가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잠들 때까지도 계속 손타는 걸 좋아하진 않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자세를 바꾸고 뒤척이기에는 오른쪽 공간이 훨씬 나았으리라.


레아(만 3세)


그런데 가끔 레아가 나의 왼쪽에 들어올 때가 있다. 오늘처럼 내가 아프거나 우울하거나 혹은 어딘가 이상해보일 때면 레아는 어김없이 왼쪽에 비집고 들어와 가만히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그녀의 의식적인 행동임은 숨소리에서 알 수 있다. 평소에는 쓰다듬어주면 그르릉 거리는데, 이때 만큼은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으니까. 쓰다듬어주길 바라고 품 안으로 파고든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참을 레아의 수염을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내 호흡이 잔잔해지면 그제서야 그녀는 조용히 오른편으로 건너가곤 한다. 종종 악몽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정작 악몽은 잘 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내 망상일지도 모른다. 레아는 별 생각없이 오른쪽에서 잠들다 가끔 왼쪽에 놀러오는 평범한 고양이일지도 모르고, 나는 그것에 '우리 고양이는 신이에요'라며 의미부여를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에는 그런 사소한 의미들이 필요로 하다. 아니, 사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데 그것이 사소하다 여겨질 만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것들이 어제처럼 오늘을, 오늘처럼 내일을 살게 한다.


초고 소속 직업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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