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디 오케스트라’를 보고 와 쓰는 짧은 감상문
나는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없다. 늘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끊었다. 불필요한 감정낭비는 일절 하지 않는 재미없는 인간, 그게 바로 나다.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입신양명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학생 땐 공부를 잘했고, 커서는 원하는 직장에 어렵지 않게 취직할 수 있었다.
후회는 없으나 마음 한 켠으로 종종 덕후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푸르스름한 인간이라면, 그들은 빨갛게 빛나보였다. 온 마음을 다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하며 남몰래 동경해 왔다.
어느 날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포털에서 ‘포켓몬 디 오케스트라’ 공연 배너를 본 날이었다. 포켓몬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1석에 11만 원이라는 가격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그 티켓을 홀린듯 결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2023년 1월 29일 해오름 국립극장에서 수많은 포켓몬스터 게임 덕후들과 조우했다.
지휘자가 아주 카리스마 있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입부터 전개, 절정, 마무리까지 그 구성도 완벽했다.
그보다 게임에도, 클래식 음악에도 ‘진심’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인생 신나게 살 수 있다고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폭풍처럼 흘러가는 웅장한 게임음악 연주 클라이맥스에 우린 흥분해 서로를 마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두 눈이 너무 반짝거려 눈물이 났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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