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로 불렸던 그 시절에 나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유형의 아이였다. 특별히 여학생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놀리고, 때리고, 고무줄 끊고, 책상에 선 긋고 넘어오면 물건 빼앗기 등… 수많은 방법으로 괴롭혔다. 그러다 가끔 나보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여학생들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가 지금도 내 몸에 남아있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대게 그러하듯, 어른들에게도 미움 받기 마련이다. 학교, 교회 할 것 없이 나를 담임했던 선생님들은 죄다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 생각에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왜 그때는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이 없었는지, 오은영 박사님 같은 분이 내 주위에 없었는지 아쉬울 뿐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못 배웠기 때문에 못 배운 티를 냈고, 그것은 고스란히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말들로 돌아왔다.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담임선생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왜 좋아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좋았다.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싫어하는 짓만 하던 내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 리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한 짝만 숨겼다. 선생님이 남은 한 짝을 보고 없어진 줄 알아챈 후 관심을 갖길 바랬던 것 같다. 딱 거기 까지만 생각했다. 그럼 선생님의 관심을 갖게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당연히 관심을 가졌다. 화를 내면서 구두를 찾았고 나는 모가 그리 좋았는지 웃으면서 내가 숨긴 구두의 위치를 알려줬다. 선생님은 나에게 화를 냈고 학생평가에 ‘건방진 학생’이라고 기록해놨다. 그런데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그 건방진이라는 표현 이후로 내 국민학교에서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 별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 것을 보면 말이다.
교회에서도 이런 비슷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좋아했던 교회 선생님이 있었다. 국민학교 담임선생님 구두를 숨긴 방법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못 배운 나는 못 배운 놈처럼 계속 그랬다. 당시 선생님은 임신한 상태였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드셨을 거다. 그러다 하루는 반 아이들끼리 모아서 선생님이 롤링페이퍼를 했었다. 서로 돌아가면서 소원을 적는 중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종이를 받아보니 그곳에 선생님 소원이 적혀 있었다. “희규 같은 아이 안 낳게 해주세요” 겉으로는 엄청 웃었지만 속으로는 슬펐다. 티 내지 않고 덤덤한 척 웃어 넘기면서 안 낳게 해주세요 글자에서 ‘안’자를 아주 새카맣게 칠했던 기억이 난다.
새카맣게 칠하면서 내 마음속에 선생님을 향했던 마음도 같이 칠했다. 지우면서 그 어린 시절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잊을 수 없는 말로 남아있는 것을 보니 나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자업자득이다. 다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 시가 생각난다. 서로 좋은 추억으로 만들 수 있었을 법한 기억들인데, 내가 다 망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