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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규 Sep 20. 2024

가난한 자들의 분노 : 시편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 대부분의 교회 목사님들은 인자하고 웃음이 넘치며 모든 것이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며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못살겠다. 보이는 것 마다 분노를 유발하는 것들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는 왜 이렇게 분노에 가득차 있나? 


내가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들이 치매 어르신들과 기초생활 수급자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가난하다. 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한분은 센터 오시면 몸수색 부터 한다. 왜냐면 몸에서 바퀴벌레가 몇마리씩 기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는 집이 온통 쓰레기에 벌레 투성이다. 


한분은 모시러 갔더니 머리에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혼자 집에서 넘어졌는데, 피흘리면서 하루종일 누워있었던 거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일어날 힘도 없고... 그렇게 다음날 발견되어서 우리가 응급실로 모시고 가서 머리를 꼬맸다. 


한분은 집에 밥이 없어서 저녁에 식사를 하시고 남은 반찬과 국을 싸달라고 요청하신다. 


물론 나라에서 지원을 받는 분들의 형편이 이정도다.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은 더 심할 것다. 


매번 이런 분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이 사회의 극빈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나에게는 일상이 된다. 그리고 이 삶은 국가 예산에서 엉뚱하게 쓰이는 몇%만 정직하게 복지예산으로 돌려도 훨씬 눈에 띄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암환자가 된 이후에 경험하는 이 사회의 모든 기준은 나같은 아픈사람이나 소수자들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기준들이 가득하다. 


즉, 평소에 하하호호 하면서 인자한 얼굴을 띄고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먹고 사는데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죄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며 그들은 생존을 위해 천원 이천원에 벌벌 떨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으면 뉴스에서 한줄로 처리하는 몇 억씩 낭비하고 사기치고 착복하는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연쇄살인범 보다 더 악독한 범죄가 나는 보인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목사들이 다 가난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그냥 기본만 지키고 살면서,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남은 것들은 성경의 정신을 따라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나눠주는 것에 힘쓰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내가 많은 것을 바라는게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목사라는 것들이 지금의 이 현실을 무시하고 배부른 소리를 할 때 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가?  대체 어떤 하나님이 축복을 했길래 한쪽은 과분할 정도로 배가 부르고, 한쪽은 살아가는 게 지옥일 만큼의 환경에서 버텨야 한다는 말인가? 


소외되고 가난하고 아프다는 건 자격지심이 된다. 열등감이 되고 화가 많아진다. 그래서 좋은 말로 할 수 있는 것도 한번 더 비꼬게 되고,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도 지저분한 감정 소모의 비난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난 이게 시편이라고 믿는다. 


시109:7 재판을 받을 때에, 유죄 판결을 받게 하십시오. 그가 하는 기도는 죄가 되게 하십시오. 109:8 그가 살 날을 짧게 하시고 그가 하던 일도 다른 사람이 하게 하십시오. 109:9 그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십시오. 109:10 그 자식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폐허가 된 집에서마저 쫓겨나서 밥을 빌어먹게 하십시오. 109:11 빚쟁이가 그 재산을 모두 가져 가고,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재산을 모두 약탈하게 하십시오. 109:12 그에게 사랑을 베풀 사람이 없게 하시고, 그 고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자도 없게 하십시오. 109:13 자손도 끊어지고, 후대에 이르러, 그들의 이름까지도 지워지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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