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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규 Oct 12. 2024

채식주의자를 읽고

짧은 단상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 후에 전쟁으로 인해 죽음이 만연한 이 때에 축하파티 같은 것을 할 수 없다면 모든 기자회견이나 축하 모임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작가님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그동안 읽었던 책들은 죄다 신학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소설이라고는 대학교 시절 필독도서에 포함된 책들을 읽은 게 전부였다. 짧은 독서 편력을 가진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에 느낀 단상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당연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후의 글은 안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물론 읽으신 분들도 얼치기 같은 단상으로 인해 눈과 뇌가 버릴 수 있으니 뒤로가기를 누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럼 안쓰면 되지 왜 굳이 적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간만에 읽은 소설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여기에 적어놓고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몇 년 뒤에 다시 읽게 되면 변했을지도 모르는 내 생각과 비교해 보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요. 타임캡슐 묻는 행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채식주의자


1. 영혜는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자(소수자,사회적약자 등.)가 된다. 


2.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는 꿈 때문이다. 영혜에게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며 절대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행위다. (잠을 자는 것)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꿈 때문에?? 왜죠?? 


3. 물론 전조증상은 있었다. 브레지어를 하지 않는 행위. 하지만 이정도는 사회적 으로 어느정도 허용이 가능한 범위였다. 물론 공식적이거나, 좀더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존재 혹은 불편한 존재라는 점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4. 이런 채식주의자가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거나 상식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가장 원초적인 폭력으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폭력, 주변의 방관, 억지로 집어넣는 고기 한점. 그리고 합리화. (다 너를 위해서야…)


5. 여기에 채식주의자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살 뿐이다. 


6. 실패한 자살은 결국 죽음과 같은 삶으로 그녀를 몰아낸다.


몽고반점 


1.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나지만 대부분 곧 사라진다. 하지만 몽고반점이 사라지지 않는 소수자들이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어쩌면 사라지지 않은 몽고반점 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화가 되면서 사라져버린 무엇. 대다수가 사라지니까 그게 정상이라고 단정지어 버린 무엇. 하지만 누군가에겐 없어지지 않는 무엇. 그냥 몽고반점일 뿐인데.


2. 이 몽고반점에 집작하고 채식주의자인 영혜에게 관심을 갖은 사람은 형부였다. 그가 사회를 보는 시각은 비디오 아트, 예술(문학, 미술, 음악 등.)이었다.   


3. 형부는 처음 접근 의도는 개인적인 욕망과 예술적 목적의 혼재된 방식이었다. 마치 빈곤 포르노 같은.  


4. 비디오 아트의 영역에서 온 몸에 꽃을 그려넣어 몽고반점과 채식주의자의 육신이 꽃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영혜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된다. 예술 세계 안에서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영혜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5. 영혜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형부의 진술을 받아들였을 때에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영혜 언니의 눈에는 정신병있는 상태를 이용한 준강간에 비슷한 행위였지만, 나는 영혜가 정상이라는 판단 하에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다. 


6. 자신을 나무(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는 영혜의 입장에서는 수술과 암술의 접합일 뿐이었다. 그녀가 그 순간 나무가 되었다는게 더 중요한 의미였을 것 같다. 그녀의 붉은 꽃은 열렸다 닫혔을 뿐이며, 형부의 그것은 꽃술처럼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었을 뿐이다.


7. 하지만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는 '형부와 처제'다. 불륜영화의 소재일뿐이다.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정답이 될 순 없었다. 절대 이해될 수도, 납득시킬 수도 없다. 어쩌면 영혜에게 구원의 실마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혜의 언니에게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나무불꽃


1. 형부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불륜이고 포르노일 뿐이다. 인혜는 남편의 비디오 아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었다. 


2. 형부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잠깐이나마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받았던 영예는 다시 정신병원에 갇힌다.  


3. 채식주의자가 개인적인 일탈을 넘어 사회적 질서에 위기를 가하게 되는 순간. 국가적 차원의 제재가 가해진다. 


4. 아버지의 폭력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채지만, 국가적 폭력은 ‘합법적’이며, ‘과학적’이다. 


5. 억지로 입을 벌려 고기 한점을 쑤셔 박았던 아버지는 사라졌지만, 이젠 라이센스가 있는 의사가 억지로 그녀의 코에 비위관을 삽입한다. 


6. 그렇게 결국 영혜는 합법적으로 살해당하게 되고 인혜에게 애증의 관계였던 동생이자, 채식주의자며, 가정파탄의 주범인 영혜는 언니의 삶에서 사라져 준다. 


7. 가장 책임감 있고, 가장 성실했고,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인혜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채식주의자를 가장 합리적으로 처리한다. 


8. 마지막 면회를 갔을 때 영혜는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때 깨닫는다. 세상이 뒤집어져 있다는 것을. 채식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영예는 물을 요구한다. 그런 그녀에게 물을 줄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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