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규 Sep 11. 2024

암환자의 기묘한 모험 3



[암환자의 기묘한 모험 3]




마약을 빼는(?) 주사를 맞고 나는 왜 사람들이 마약을 못 끊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맞지않고 허리 통증을 느끼는게 더 나았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중에 아내 말로는, 간호사 3명 + 아내 1명(?) 이 달라 붙어서 난리를 치지 못하도록 붙잡았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너무 심해서 격리실에 따로 가둬야만 했다.  6인실이었던 병실에서 내가 너무 난동을 부려서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따로 격리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 몸에서 느끼는 고통과 아픔의 정보를 내 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때문에 오죽하면 현실 판단이 안되고 또 다시 이상한 망상이 시작되었다. 내 망상은 내가 독립투사고 지금 내 고통은 일제 감옥에서 고문당하는 중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오죽 아팠으면 내가 학습한 내용중에 가장 지독하게 고통받았을 독립투사 분들의 고문에 대한 상상을 뇌가 현실로 가져왔던 것 같다. 지금 내 현실은 지하 감옥 한 구석에서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 버티는 독립투사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끝까지 고문을 버티고 타협하지 않았던 그런 멋진 독립투사는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자백할테니 제발 약을 달라는 변절자였다. 약 좀 달라고 엄청 울면서 빌었다고 한다. (아내가 일본 고문기술자로 착각이 되었다는 것은.....흠흠..더이상 불필요한 말은 생략한다.) 




고문을 진행하던 아내(?)는 그 순간에 나에게 해줄 것이 없어서 그저 내 온몸을 주물러주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같이 울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악한(?) 일본 고문 기술자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고문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울면서 외쳤다.  




저녁 부터 시작된 고문은 새벽즈음 되서 끝나갔다. 새벽에 동이 트면서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마치 영화에서 보는 듯한 한 장면이었고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젠 살았다. 라는 안도감이 들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고통이 이제 서서히 줄어 들었고, 나는 그 새벽에 잠에 들 수 있었다. (그 전까지 한숨도 못잤다.)




여튼 그렇게 마약을 제거하고 원래의 정신이 돌아왔고 더 이상의 망상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가 막아주던 허리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때마침 내가 걸린 암에 처방되는 항암제 레날리도마이드 라는 약이 제공되었고 그렇게 항암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항암약이 내 몸에 잘 들었다. 그렇게 10일정도 투약했을 때에 어느정도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리 통증이 많이 완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맞지 않아도 허리의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약이 잘 들어서 완치가 되면 좋을 텐데.... (4부에 계속)




(하려다 아내가 찔끔찔끔 쓰지 마라고 해서 더 쓴다.)




다발골수종 같은 경우에는 발병 후 2년 안에 사망하는 병이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약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서 생존율이 올랐지만, 약이 없던 시절에는 불치병으로 분류될 정도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사망했던 병이다. 그리고 지금도 개발된 많은 약들이 있지만 자기 몸에 맞지 않는 환자들은 여전히 고생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약이 잘 들었고, 이제 좋은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나는 암환자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료되는 식의 기적같은 것은 바란적도 없다. 다만 남들 처럼 열심히 치료받고 회복되길 기도했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잘 되고 있었다. 그렇게 욕심 안부리고, 나만 이기적으로 기적같은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항암 부작용이 생겼다. 그것도 몇만명 중에 한명에게 일어날 정도의 확률 희박한 부작용이었다.  이런 확률이면 로또나 될 것이지... 




나는 항암 부작용은 심장이었다. 항암 한지 10여일 정도 지났을 때 아내는 내 맥박수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발견하고 간호사한테 몇번 이야기를 했다. 그때 마다 간호사는 대부분 항암을 시작하는 환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설명은 사실이었다. 항암 하는 환자들 대부분은 심장에 무리가기 때문에 맥박이 빨리 뛴다. 그런데 아내는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내 상태가 분명히 이상하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2일을 더 지켜보 던 중에, 내 심장 맥박이 너무 빠르고 동시에 혈관도 튀어나오고 내 호흡도 불안해 지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한 상태가 됐다. 아내는 급하게 담당 의사를 불렀다. 의사도 내 상태를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심장전문 의사를 불렀다. 원래는 심장 검사실을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자, 심장초음파 기계를 아에 병동에 가져와서 검사를 했다. 그렇게 심장 의사가 검사를 한 후 아내는 심장 전문의와 대화를 했다. 




아내는 그 때의 대화를 기억하면서 한치의 거짓도 없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아내 : 상태가 어떤가요? 


의사 : 흠.. 암환자들이 가장 많이 죽는 질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내 : 네? (원피스 펜인가?) 몬데요?


의사 : 다들 암으로 많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내 : 네..


의사 : 틀렸습니다. OOO를 아십니까? (대한민국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람)


아내 : 네? (갑자기?) 네.... 알아요.


의사 : 그 사람의 가까운 친척이 여기서 죽었습니다. 


아내 : 네..... (이것봐라?)


의사 : 그때 말기 암이었지만, 무엇 때문에 죽은 줄 아십니까?


아내 : 네? (이게 미쳤나, 결론만...빨리...) 


의사 : 심장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아내 : 네....(이 색히도 죽일까?)




그리고 대화가 끝났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의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려고 했다. 놀란 아내는 다시 의사를 붙잡고 물어봤다. 




아내 : 그래서 지금 제 남편 상태가 어떤건가요? 


의사 : (야레 야레 아직도 못알아 들은건가? 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암환자는 심장 때문에 많이 죽습니다. 


아내 : 네.. 그래서요?


의사 : 지금 환자분 상태가 그렇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이 의심됩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들어가는 혈관인 폐동맥이 좁아지고 압력이 증가하는 상태를 말하며, 국내에 약 5,000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표적 희귀난치성 질환입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은 2-3차례의 오진을 경험하며, 증상이 생긴 후 진단까지 2-3년 이상 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 아예 증상을 느끼지 못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도 상당수입니다. 그러나 폐동맥고혈압은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 발병 후 수개월 내에 사망하기도 하는 중증 질환이므로, 조기 진단과 적극적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 연세 세브란스 병원)




그렇다. 내 이름이 희규라 희귀병과 좀 친하다. 애들 이름 지을때는 잘좀 짓자. 로또한번 당첨 안되는 인생이었던 나의 행운은 병에 특화된듯 그 걸리기 어려운 희귀병을 두개나 연속 당첨되었다. 




담당의사도 심장 검사 결과를 듣고는 심각해져서 아내에게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이야기 했다. 왜냐면 내 심장에 생긴 부작용이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폐동맥고혈압이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사는 돌아갔고, 아내는 의사의 어이없는 화법보다도 내가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말에 다리가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고 한다. 그때 부터 정신 나간 여자 처럼 행동하는데 본인은 순간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주시는 힘으로 움직였다고 고백한다. (성령 충만이란 이런것이다.)




군포의 암병원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이 병원에는 내가 걸린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기계나 의사가 없다고 말하며 살기 위해서 다른 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크다는 병원은 다시 다 알아봤지만 역시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그렇게 서울 쪽은 다 거절당하고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는 맨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의사선생님이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고 한다. 




처음에 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담당의사가 서울의 큰 병원 중에 하나인 s병원의 의사였다가 여기로 스카우트 되어서 온 의사였다. 그리고 본인이 여기서 항암치료1차를 마치고 호전되어서 걸을 수 있게 되면 외래는 서울의 자신이 있던 그 s병원으로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었다. 거기 친구도 있어서 잘 봐줄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갑자기 아내는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다른 병원 말고 그냥 이 s병원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한통화만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고 한다. 깜짝 놀란 의사선생님은 당황했고 아내 역시 자기도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살려야 한다." 라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고 하며 이때일을 회상하면서 성령님이 주신 힘이라고 했다. (나는 박OO 대통령의 정신이 빙의된 건 아닐까 라는 의심...읍..읍..) 




사실 아내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이미 경험한 상태였다. 서울의 a병원에서 거절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던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고, 그런 불가능한 확률을 믿고 도박을 하기에는 내 상태가 일분일초가 위험한 상태였다. 그런데 마음 가운데 이번에는 가면 받아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확신이 들었다고 본인은 간증한다. 그 순간 성령님이 도와주시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노파심에 이야기 하는 거지만, 함부로 성령충만 운운하면서 도박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 아내는 평소에도 하나님하고 많이 친하니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지... 나처럼 평소에 안친하다가 갑자기 친한척 하면 돌아오는건 로또 대신에 희귀병 연속 당첨 뿐이다.)




그래서 의사선생님한테 울면서 매달린 것이었다. 아내는 지금 s병원 응급실로 출발할 테니 그냥 친구 의사분에게 전화 한통화만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만약 그 병원에서 안받아 주면 남편이 죽더라도 이 병원으로 다시 와서 치료를 받겠다고 이야기 했다. ('응?, 여보?, 이대로 죽는건가?') 




의사는 당황하는 듯 하다가 아내의 요구대로 s병원 친구 의사에게 전화를 해줬다. 내가 생각해봐도, 의사라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건 자존심 뿐일 텐데, 자기가 못고치는 환자를 받아달라고 아무리 친구지만 전화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사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전화를 해줬고, 그 전화를 받은 친구 의사선생님도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거절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내 환자로 등록은 해 놓을테니 한번 와봐라." 




그렇게 아내는 혼자 울면서 짐을 싸고 사설 응급차를 부르고 나를 이송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체구로 홀로 큰 가방2-3개나 되는 짐을 싸면서 서럽게 우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근처에 간호사들이 다 와서 가방싸고 옮기는것을 도와줬다고 한다. 




이렇게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날 때에 내 상태는 심장이 약을 견디지 못해서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다가 혼수상태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특히 그동안 응급차로 이동을 할 때마다 허리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고함을 치던 내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죽은 사람처럼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진짜 내가 서울 s병원 오는 동안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서울의 s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담대하게 일단 왔지만 아내의 마음 가운데 안 받아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걱정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나에 대한 응급실 의사의 판단과 s병원의 암 전문의사 환자 명단에 들어 있는 것과 이미 운명하신(?) 것 처럼 보이는 내 상태 등.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그렇게 나는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응급실의 상황은 역시나 처음에 갔던 a병원과 비슷했다. 내 앞에 대기하는 환자들이 수십명이었고, 전광판에는 '응급실 대기시간 13시간'이라고 써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응급실에 들어가는 내 침상을 보면서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때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고. 




그렇게 도착 한 s병원의 응급실에서는 내 상태를 확인하고는 폐동맥고혈압 약을 먹이고 응급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 다음날 정신을 차리게 되고, 눈을 떠보니 s병원 응급실이었다. 지금 이 일은 아내가 나중에 의식을 되찾은 나에게 이야기 해줘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날의 기억이 전혀 없다. 쉽게 말해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s병원의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응급실에 들어와서 입원까지 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나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아내였기에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인지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 일들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너무 착착 진행되어서 놀랐다고 한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그 상황에서 응급실에 갈 결정을 하고 출발했지만, 계속 두려움 반, 확신 반이었다고 한다. 그때 계속 불안해서 기도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히브리서 11장1-2절의 말씀이었다고 한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한편으로는 말씀까지 주시고 위로해주시며 담대한 마음을 주셨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불안하고, 내가 죽을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이 마음이라는 것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 지나쳐 자신을 집어 삼키려고 할 때에 항상 믿음과 위로의 말씀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처럼 아내는 믿음과 의심의 뒤섞인 상태로 내가 응급치료 받는 것을 지켜봤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응급처치가 끝나면 돌려보낼까봐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 상태는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여서 병원에서 받아들여졌고, 담당의사도 배정된 상태라 곧바로 입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없어서 2일정도는 응급실 간이 침대에서 대기했다. 




그렇게 나는 s병원 담당 의사선생님께 첫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상태는 암보다 심장이 더 위급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s병원 심장과와 협업 진료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당분간 항암치료는 멈추고 심장을 먼저 치료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그렇게 폐동맥고혈압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멈추는 바람에 그나마 좀 좋아지던 허리통증은 다시 심해지게 된다. 그렇게 나는 암보다 더 무서운(?),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희귀병인 폐동맥고혈압과의 사투를 시작하게 된다....(4부에서 계속)






인사이트 및 광고 보기



                  게시물 홍보하기                


"data:image/svg+xml,%3Csvg



"data:image/svg+xml,%3Csvg



"data:image/svg+xml,%3Csvg





모든 공감:

11

김인욱, SangGuen Lee 및 외 9명

작가의 이전글 암환자의 기묘한 모험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