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눈에 보이는 질병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안심이라도 되지만 폐동맥고혈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를 죽일 지 모른다는 암살자와 같은 놈이었다. 암살자가 내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산다는 것은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염두하면서 아내와 함께 지난 삶을 반성했었다. 나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만약 치유가 된다면 어떻게 살겠다는 식의 각오도 다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들이 지금 내 모습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전에만 해도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죽음 앞에서 이 가치가 얼마나 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는 다른 가치로 눈을 돌렸다.
단 하루를 살아도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특히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이 의료적 행위를 넘어선 치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침대에 누워서 깨달은 진리였다.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의 걱정과 눈물,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등.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런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참된 가치를 느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모인 사회가 결국은 천국이라는 것. 이 간단한 진리를 자본주의 속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경쟁자로 여기면서 잊어버리게 되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살기 좋아지는게 아니라. 사랑이 충만할 때에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을 왜 이제 알았을까.
이런 깨달음을 통해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고, 곧 우화등선 하는 듯이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않겠다. '이젠 안녕...' 이라는 혼잣말을 뱉으며 순정만화의 소년 처럼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떳을 때에는 나를 환한 미소로 맞이할 예수님을 기대했다. 그런데 누가 자꾸 나의 몸을 흔든다. 알고보니 폐동맥고혈압으로 인해 산소 공급이 안되서 숨을 헐떡이던 나를 간호사 선생님이 흔들어 깨운 것이다. 그리고는 화를 냈다.
"아니 환자분! 호흡기 자꾸 떼시면 안된다니까요!"
그렇다. 나도 모르게 자면서 숨쉬기 불편하다고 산소 호흡기를 무의식중으로 벗기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잠 좀 편하게 자겠다고 숨을 쉬도록 만들어주는 호흡기를 떼버리고 자는 이 얼마나 어리석인 인간의 모습인가!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벗어던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저만의 행동 퍼포먼스 였습니다. 라고 설명하기에는 간호사 선생님이 무서웠다.
손가락에는 혈중 산소를 체크하는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내 혈중 산소가 85%임을 알리면서 삐삐삐삐 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혈중산소는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95-99% 이며 95% 이하는 저산소증 주의단계, 90%이하는 저산소증 이다. (호흡위험단계다.)
나는 그렇게 간호사에게 욕을 먹고, 아내에게 욕을 먹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쪽으로는 폐동맥고혈압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쪽으로는 다발성골수종과의 싸움이 치열했다. 여전히 허리의 고통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지만, 이젠 어떤 자세를 취할 때 허리가 짜증을 내는지 대충 파악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고통은 예측범위에 있었다. 다만 날 정말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배변활동이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였지만, 나에게는 고통과 수치의 시간이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다 필요없고 내 원대로 하소서. 라고. 나는 그렇게 똥이 물이 되도록 기도했지만 기도는 거절당했다.
배변시 허리가 끊어질듯 고통스러운건 둘째치고, 뒷수습을 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나의 배변은 그냥 얌전하게 가만히 기저귀에 똥을 싸는 형태가 아니다. 이걸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 끝에 하나의 예화를 들어보겠다.
스트리트우먼파이터 라는 프로그램을 아는 분들은 이해할지 모르겠다. 춤을 추는 장면들을 보면 여러 댄서들이 바닥에 누워서 꽃잎을 만들어 내는 모션을 취할 때가 있다. 바닥에 옆으로 누워서 몸을 s자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 등을 굽히고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s자모양으로 하나의 꽃잎이 되어 여러명이 동그랗게 뭉쳐서 아름다운 꽃 모양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바닥에서 서로 뭉친 머리를 중심으로 회전할 때에 아름다운 꽃잎이 회전하는 모양이 만들어 진다. 이 아름다운 군무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ptsd가 온다. 왜냐면 내가 배변할 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웅크리면서 똥을 싸면서 침대를 빙글빙글 돈다. 고통때문에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개처럼 질질 똥을 흘리면서 똥을 추진력으로 원을 그리며 몸을 빙빙 돌린다. 그렇게 똥은 여기저기 흩뿌려지며 이제는 고인이 된 피카소 형을 추모하듯 그렇게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댄서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나는 똥싸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아내는 침대에 기저귀 여러장을 새심하게 깔아놓는다. 마치 사랑하는 아이가 그 어떤 그림을 그려도 벽지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수 많은 전지를 벽지에 꼼꼼하게 붙이는 월세집 사는 사람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내가 펼쳐놓은 기저귀판에 마음껏 나의 상상력을 펼친후에 곧 자괴감에 빠진다. 사운드를 들려주지 못해서 글로 표현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ai시대에 3d글쓰기가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최선을 다해 표현해 보겠다. "아악!~ 뿡~! 아악!~뿡~! 아악!~ 뿡!~"
그렇게 뿡 소리와 함께 허리 고통으로 인해 한번에 배변하지 못하고 끊어서 찔끔찔끔 나오는 똥이 왜 그렇게 야속하던지, 사람들은 배변활동을 할 때 한번에 힘줘서 시원하게 똥을 싸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하면서 싸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명 한번에 끊어진 똥 한조각은 뱉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일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인간인가? 짐승인가? 를 헷갈려 하는 비참한 인생을 그래도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건 이 모든 더러움을온몸으로 받아내는 사랑 뿐이었다. 바로 아내였다. 킹스맨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알려준다면, 내 아내는 사랑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기약이 없었지만, 아내는 반드시 치유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주의 시간이 흐르면서 내 심장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호흡기를 떼고 생활 할 정도가 되었고 산소포화도는 여전히 90%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이정도면 많이 좋아졌다는 의사선생님 말에 따라서 간단한 항암 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항암이 다시 시작되었고, 의사선생님은 3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나는2주만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이젠 꿈틀거릴 수 있게 되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 때문에 거의 마비환자 처럼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젠 몸을 비틀어도 아프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물론 3-4개월동안 누워만 있어서 다리의 근육이 다 빠진 상태라 당장 걷지는 못했지만, 침대에서 뒹굴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일단은 기저귀를 차고 배변활동이 가능했고, 더 이상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가 꼼짝못하는 나를 혼자 힘으로 이리저리 옮기면서 몸을 씻기고 다 했었는데, 이젠 내가 협조할 수 있게 된것이다.
이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었다. 꿈틀거림에 소망이 깃들었다. 계속 꿈틀거렸다. 마치 번데기를 탈피하고 나가려는 애벌래처럼.
그렇게 3개월 걸린다는 의사선생님도 나의 호전되는 증상에 매우 기뻐해주시며 1개월만에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다시 살아난 것 같아서 기뻣다. 입원할 때는 나름 겨울과 봄 사이의 날씨여서 두꺼운 옷들을 입고 왔었는데, 퇴원해보니 완연한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온통 반팔차림에 에너지를 뿜뿜하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시간은 잘만 흐르고 사회는 잘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삶의 의지를 다졌다.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기로. 과부의 마음은 홀애비가 알듯, 그렇게 아픔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반기는 사람이 여기 한명 더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는 중이다.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병이 다른 암처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는 병은 아니다. 그저 평생 당뇨환자들 처럼 약으로 관리하면서 재발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병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시작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종종 사로잡지만, 그 어둡던 터널을 함께 손잡고 이끌어 준 아내의 존재가 각인되어서 그런가 두렵지 않다.
대학교 시절 교회에서 만난 교회 오빠가 "오빠 믿지?" 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갔던 아내가 이젠 나에게 말한다. "누나 믿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