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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규 Sep 12. 2024

행복한 기억

입지 않는 옷

우리 집 옷장 한구석에는 아내가 입지도 않으면서 20년 동안 버리지 않은 코트가 한 벌 있다. 그 옷을 볼 때마다 나와 아내는 우리가 사귀기로 하고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이야기다.

나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라고 했고 아내는 내가 무슨 돈이 있냐고 거절하는 척하면서 내 손을 강하게 잡은 후, 날 잡아끌었다. 그 순간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아내는 “정말 괜찮은데”라는 영혼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의 몸과 영혼이 분리될 만큼의 힘으로 나를 끌고 간 곳은 백화점 앞이었다. 난 이미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여성 전문 의류만 모아 놓은 그 F층보다 더 무섭다는 2층에 도착했다.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잠바 안주머니에 있는 봉투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봉투의 감촉. 마치 손끝이 봉투에게 “오갱끼데쓰까?” 라고 지문을 남기며 물었고, 봉투는 마치 러브레터 처럼 “와따시와 겡끼데스”라고 답을 하며 자신의 두툼한 몸매를 확인시켜줬다. 30만원은 잘 있다는 의미였다. 과외를 해서 받은 돈 30만원이었다. 나는 자신 있었다. 이 돈이면 당시 블루클럽에서 머리를 60번이나 깎을 수 있는 거금이었다. 지금은 머리숱이 부재하듯 임재해있지만, 그 당시에는 머리숱이 나름 존재했다.

아내는 내 손을 (아까 잡은 손은 아직 놓지 않았다) 강하게 붙잡고 생전 처음 보는 이름도 이상한 옷가게 앞에 섰다. Anna Sui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보는 가게 이름이었다. 생소한 그 이름을 난 아마도“아나 쉣”으로 읽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도 이 발음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곳에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안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이키도 아니고, 아디다스도 아니다. 여자친구가 날 생각해서 메이커도 아닌 싼 옷집으로 왔구나!’라고 (생각한 나를 저주한다.)
그렇게 아내는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핑크색 코트를 하나 골랐고, 그제야 나의 손을 놓으며 코트를 내 손에 살포시 쥐여줬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가격표를 들추는 행위는 나의 멋짐을 포기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아내의 손에서 박력 있게 코트를 낚아채는 듯한(실은 아내가 쥐여줬지만) 연출을 보였으니 더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나는 코트를 카운터에 내려놓으면서 동양인의 아름다움인 그 찢어진 눈을 사용해 최대한 곁눈질로 카운터 위에 올려진 코트 옆으로 앙증맞게 삐져나온 가격표를 확인했다.


 “320,00”이 보였다.
승리의 함성을 속으로 외쳤다. ‘오케이! 3만2천원 쯤이야.’ 하지만 셈이 밝으신 분이라면 무언가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그렇다. 쉼표의 중요성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직원이 “32만원입니다.”라고 하는 순간 가격표 보느라 가늘고 얇아진 내 눈은 순정만화 주인공 눈처럼 돼버렸다. (앞트임은 백화점에서)
앙증맞게 삐져나온 가격표는 본인의 일부만을 보여준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는 외침을 한낱 종이 쪼가리에서 들을 줄이야.


잠바 안주머니에 있던 내 러브레터는 그렇게 단 한 번에 먼 길을 떠나갔다. 참고로 한 달 생활비였다.
이 충격 때문에 그날의 무얼 먹었는지, 어딜 갔는지 등.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다만 그 “아나 쉣”의 분홍색 코트를 들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아내의 행복한 기운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난 아내의 그 기분 좋음이 그렇게 좋았다.


가끔 아내가 그 옷을 보면서 본인도 무슨 생각으로 그 비싼 옷을 골랐는지 진짜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한다. “그저 이 옷 한 벌이 갖고 싶었습니다.”라고 중얼거린다.
더 웃지 못할 사건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가 그 옷을 정말 애지중지 하느라 한 번 입고 세탁소에 맡겼는데, 세탁소 실수로 옷이 줄어들어서 그 뒤로는 못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 옷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며 20년이 지난 지금도 옷장 한쪽 구석에 그대로 걸어놓고 있다.


아내가 가장 기억이 남고 행복했던 선물이라고 나에게 말했을 때, 이 사건은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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