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부시시한 머리를 긁적이며 TV 앞에 앉는 한 어린 녀석. 하얗고 작은 고사리 손은 늘 거실 소파 팔걸이에 놓여 있던 리모컨으로 향했다. 전원을 켜면 ESPN 스포츠 채널에서 늘 틀어주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하이라이트 모음. 침대에서 꾸역꾸역 두르고 나온 이불은 아이의 머릿속에선 맨체스터 훌리건 팬이 휘두르는 깃발과 같았다. 그때부터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 언젠가부터 그 아이의 삶 한쪽에는 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24년 2월, 필자는 영국 맨체스터에 다녀왔다. 어릴 적부터 보았던 스포츠 채널 덕분일까. 필자의 형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 되었다. 형을 잘 따랐던 나 또한 자연스레 그 클럽을 사랑했다. 영국에 다녀온 이유도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를 둘러보고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맨체스터와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형제는 이 구단에 광적으로 미쳐있는 신도와 다름없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 보았지만 필자는 맨체스터가 있는 영국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먹구름으로 뒤덮여 햇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흐리멍텅한 날씨와 내렸다 말았다 하는 부슬비도 왜인지 모르게 좋았다. (같이 여행했던 형은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포르투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넘어온 우리 형제는 프리미어 리그의 땅 영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런던 노던 라인의 유스턴 역에서 리버풀 스태포드 역을 지나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에 도착했다. 그곳은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
.
올드 트래포드에 가기 위해서는 메트로링크(트램)를 탑승해야 한다. 왕복 3.5 파운드 가격의 티켓을 결제하면 자동 발매기에서 노란색 티켓 2장이 나온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역무원이 없기 때문에 티켓을 끊는 것은 양심의 영역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표 검사원만 없다면 이론상 공짜로 트램을 탈 수 있다. 하지만 단돈 3.2 파운드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으리라… 필자가 트램을 탄 날에는 야광 노란색의 조끼를 걸친 덥수룩한 수염이 도드라지는 표 검사원이 나타났다. 우리는 표를 끊고 탑승했기에 문제없이 올드 트래포드로 갈 수 있었지만, 다른 칸에 탔던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청년들은 다음 역에 내려 표를 끊고 다음 트램을 탔어야 했을 것이다.
.
.
15분 정도 지났을까. 트램 창문을 통해 부슬비가 내리는 풍경들 사이에 올드 트래포드의 하얀 철제 구조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TV 화면으로만 보던 경기장이 점점 가까워져만 간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