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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May 28. 2024

주차장 안에서의 30분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어느 날 그러는 거다. 자기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집으로 올라가기 전 한 30분쯤 주차장 차 안에서 그냥 앉은 채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고. 아이와의 재회가 기쁘기도 하지만 이제 올라가면 또 한바탕 전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쉬어주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려운 거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中-


미혼일 때 홀로 지리산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초심자라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하기 위해,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를 해두었다.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듯한 전문 등산장비와 보온과 건조가 최적화된다는 고어텍스 등산복까지 갖춰 입은 등산객들의 비장함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복을 입고 밑창이 다 닳은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그런지 내 모습은 멸치 똥을 따다가 발견한 건새우처럼 생뚱맞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건새우가 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태우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먼 산을 바라보던 젊은 엄마. 저 아기를 데리고 어찌 등산을 하려나 했는데 한참을 지나도 등산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정신을 차린 젊은 엄마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보이기도, 어색한 듯 보이기도 했다. 갓난아이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엄마를 마음속으로 욕했다. 모성이 부족한 엄마구나. 저 어린것 앞에서 어떻게 담배를 피울 생각을 하지? 하지만 1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엄마의 초점 없는 눈빛과, 세상과 작별할 듯한 무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우울증은 자살로 인한 치사율이 매우 높은 병이다. 어쩌면 그 담배가 젊은 엄마를 살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부디 지금은 아이도 엄마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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