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인간은 하늘을 높이 우러러보았다.
손 닿을 수 없는 드넓은 공간을 보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나도 날개가 있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러러보는 것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대 기술이 발전하여 비행기와 같은 기계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꿈꿔왔던 것에 꽤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돈을 조금만 모으면 누구나 비행기 표를 살 수 있다. 하늘 높이 떠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하늘 높이 날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자가 사라지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다.
아무것도 우리의 앞을 가로막지 않는, 심지어 뒤, 위, 옆, 아래까지 어떤 장애물에도 구속받지 않고 널리 볼 수 있고 갈 수 있는 무한대에 가까운 자유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자유를 꿈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막상 자유를 손에 쥐여 주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자유는 커다란 힘이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유를 꿈꾸는 것을 매도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을 꿈꾼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다. 다만 스스로를 위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꿈을 좇고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좋겠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지만, 행복은 목표 달성보다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과정에서 있는 법이며, 그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것이 뻔하며 이론적으로 달성이 가능한지도 명확하지 않다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포기를 너무 비난하지는 마라.
그러나 포기한다고 해서 행복을 더 이상 꿈꾸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발상을 조금만 전환해 보면 어쩌면 금방 새로운 행복을 찾아낼지 모른다.
우리는 자유를 느끼기 위해 하늘 높이 날고 싶어 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그러나 우리가 두 발로 땅 위를 걸어 다니면서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아채라. 단순히 땅 위에 엎드려 보라. 그리고 아주 낮은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당연히 길바닥 한가운데서 사람이 엎드려있으면 지나가던 행인이 걱정되어 괜찮으시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순간의 창피함이 두렵다면, 그것이 무엇에 비교하여 더 두려운가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베테랑 사냥꾼에게도 힘든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