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세상을 그럴듯한 이유들로 설명해 내려는 안간힘이다. 인간은 본래 불확실한 것 앞에서 불안을 느끼고, 확실한 것 안에서 안도한다. 실제 세상에 완벽히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나, 우리는 세상이 명료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확실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부지런히 발명해 낸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정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이며, 한 각은 60도이다.
기온이 0도 이하로 내려가면 물은 얼기 시작한다.
태양은 늘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하지만 논리라는 견고한 성벽에는 대개 예외라는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구체 위에 정삼각형을 그린다고 가정해 보자. 한 점을 북극점에, 나머지 두 점을 적도 위에 둔다면 한 각의 크기는 90도가 된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도 끓고, 북극권의 어떤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로 채워진다.
언뜻 반박 불가능한 진리처럼 들리던 말들도 한 꺼풀 파고들면 예외의 습격을 받는다. 결국 논리가 곧 현실은 아니다. 그저 혼돈 속에서 어떤 규칙을 발견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논리'라 이름 붙여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인간은 명확한 진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해 보이는 상태를 사랑한다.
만약 논리의 가치가 '진실 여부'가 아니라 '맞는 것처럼 보이는 설득력'에 있다면, 인간의 사유는 곧 그 권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언어를 먹고 자란 AI는 그럴듯한 논리 구조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탁월하기 때문이다. AI는 어떤 황당한 주장도 설득력 있게 포장하며, 서로 상반되는 가치 사이를 교묘하게 가로지른다.
사형제도의 존치 이유를 물으면 인과응보와 범죄 예방을 근거로 찬성론을 펼치다가도, 곧바로 오판의 가능성과 인권의 존엄을 들어 반대론의 논거를 완벽히 쌓아 올린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해달라는 요구조차 막힘없이 수행한다. 논리가 무한히 복제되고 생성되는 시대에, 논리적 달변이나 설득의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의 무기가 될 수 없다.
논리를 잃어버린 인간은 무엇을 무기로 삼을 것인가? 창과 칼이 총과 핵폭탄으로 대체되었을 때, 인간은 스스로의 육체적 무력을 되찾기 위해 사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공포의 균형'에 이르러서야 역설적인 평화를 맛보기도 했다. AI가 극한으로 발전해 누구나 완벽한 논리를 소유하게 된다면, 우리도 그런 기묘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이 논리를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중장비가 보급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 근력은 생존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자아를 지탱하는 뿌리이기도 하니까. 논리 또한 타인을 설득시키는 무기에서, 나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사고의 뼈대'로 그 역할이 변모할 것이다.
그렇게 논리라는 딱딱한 껍데기가 AI의 영역으로 넘어간 자리에는, 아마도 비논리적인 것들이 남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묵묵한 유대감, 찰나의 직관, 그리고 계산되지 않은 타협 같은 것들 말이다. 논리가 다 설명하지 못하는 그 축축하고 모호한 영토만이, 당분간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