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골드·루비·에메랄드·다이아몬드가 난무했던 그날의 기억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으로 온 세계가 시끄럽다. 30번 확진자가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내가 걸리면 어쩌나, 내 아이가 걸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확진자의 동선을 체크해가며 이 난리가 곧 끝날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지냈다. 그런데 31번째 확진자가 나오더니 상황이 변했다. 그 이후 3월 23일 기준 8,961명으로 확진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사망자도 늘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두렵지는 않다. 무뎌졌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며 더이상 동선체크가 무의미하기도 하거니와 그냥 마스크하고, 자주 손씻고, 수시로 손소독하는 수밖에 없구나 싶어서다.
31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한동안 뉴스며, 커뮤니티 게시판들에 신천지 관련 글들이 넘쳐났다. 그러다 이단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한다는 그리고 예전에 신천지에 빠졌다가 간신히 벗어났다는 젊으신분의 간증 영상을 보게됐다. 큰 관심도 없었는데 신천지의 포교활동이 너무나 흥미로워 1시간짜리 영상을 빨리감기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봤다. 심지어 복습까지 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두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나'와 한 때는 친구였던 'C양'이었다.
2000년의 가을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서서 일하는 일에 지쳐있던 무렵이었다.(서비스직이 천직이라며?)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받고 정리하는 파트타임잡을 구하고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꿀알바를 구하는 중이었다.
마침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우연히도 고등학교 때는 같은 반 친구였고, 한동네 살던, 그리고 내가 소개해 패스트푸드점에서도 함께 일한적도 있는 친구 C양한테서 전화가 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부터 시작해 햄버거집 그만두고 다른 파트타임 구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C양은 마침 자기가 하던 일이 있인데 자기가 이번에 그만두려고 하니 나보고 해보라는 거였다. 올레!!를 외쳤다.(그 시절에는 따봉이었나? 생각해보니 그 정도 옛날은 아니다.) 구하는 자에게 열린다더니, 역시 '일'복에 있어서 나를 따라갈 자는 없지!라고 생각했다.
면접 겸 인사를 가자고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전날 C양은 전화로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받는 일은 그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리하겠노라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하늘색의 하늘하늘 치마정장에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갔다. 그리고 약속한 건물의 입구에 도착. '아! 뭔가 이상하다' 라는 느낌이 딱 왔다.
SSang!! 이건 전해 전해 들어보던 피라미드인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C양에게 "가겠다"라는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간 짜증이 팍! 났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용기는 없었던가 보다. 단지 기억이 나는 사실은 내가 열심히 교육 들으며, 상냥하게 웃어도 주고, 박수도 열심히 쳤다는 것이다. 박수를 얼마나 강요하던지...... 보석회사도 아닌데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라는 직급을 가지신 관리자 분들의 상품 교육이 쭉 이어졌다. 교육 받은 제품 중 한국콜마의 화장품 상품이 있었는데, 덕분에 아무 상관도 없는 한국콜마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도 좋지 않다.
3시간의 오전 교육이 끝나고 C양에게 나는 가겠노라고 했다. C양은 미안하다며 오늘 교육만 받아 달란다. 본인 입장이 그렇다고... 정말 미안하다며... 어이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갔으면 될텐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왜 뭐때문에? 나는 항상 거절을 못해서 문제였다. 그때도 그랬다. 화라도 내야하나 생각했는데 당췌 C양과 나 둘이서만 이야기할 시간을 주어지지 않았다. 쉬는시간 화장실갈 때도 따라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얼마전 유튜브에서 본 신천지의 포교마냥 2인 1조로 사람옆에 붙어서는 생각할 시간을, 말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그날 점심은 나, 다른 영입대상자(지금 생각해보니 이 역시 연기자 였던가? 싶어 섬뜩하다. 무슨말인지 모르겠으면 신천지 포교방법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찾아보시라), 그리고 C양을 포함한 유인책 2명 그리고 이미 돈 꽤나 부었을 것 같은 관리자 1명까지 모두 5명이서 KFC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꾸역꾸역.
드디어 4시간의 오후 교육까지 모두 끝났다. 오전보다 1시간 더 앉아 있으려니 너무나 곤욕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박수를 너무 쳐서 손바닥도 아팠다. '아 이제 해방이다'라고 생각하며 얼른 도망가려고 가방을 들었는데 회식을 한단다. '회식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 진짜 이것들이 진짜 사람을 물로 보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 제가 일이 있어서^^ 지금 바로 학교에 들어가봐야 해요~~~ 교수님과 약속이 되어 있어서요^^"라고 친절과 상냥을 최대한 장착하고 말했다. 2인1조가 나에게 붙어서 아주 친절하게 "수고했는데 맛있는거 드시고 가세요. 밥만먹고 먼저 일어나시면 되요" 등등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붙잡히면 진짜 험한꼴 볼 것 같아서 수차례 안된다는 메세지를 보낸 뒤 루비, 에메랄드님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 곳에서 나왔다.
급하게 학교로 갔다. 혹시 따라올까 두렵기까지 했다. 학교 동기들 사이에 몸을 숨기니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이 됐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였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C양이었다. 지금 학교로 갈테니 차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다음에 연락하자고 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친절하게 대했다. 얘도 피해자인데 어쩌겠나 싶어서......
밤 늦게 집으로 복귀했다. 세상에! 맙소사였다. 집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C양. 간담이 서늘, 온몸에 소름이, 머리에 땀이 삐질..... 그와중에 다행인 것은 C양은 혼자였다. 잠시만 이야기를 하잔다. 추적추적 초가을 비까지 와서 쌀쌀한 밤이었다.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으로 걸어가는 길, 머리속에는 얘를 어떻게 그냥 보내지? 였다. 고작 내가 생각한 방법은 '내가 엄청 무섭게 보여야겠다' 였다. 세상 센언니로 보이기 위해 나는 자리에 앉으며 카운터를 향해 "담배하나 주세요" 했다. "뭐드려요?"라고 하는 커피숍 직원. 엥? 뭐? 아... 디스? 말보로? 뭐 그런거 물어보는구나 싶었다. 담배도 나름의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것이다. 순간(약 1.5초 정도) 당황을 했으나 최대한 시크하게 "아무거나 주세요" 했다. 항상 그러했던 것 처럼.
자리에 앉아 연속 두개피를 태웠다. 담배가 스스로 타들어간건지 내가 핀건지 나도 모르겠다. 나름 최선을 다해 담배 태우는 연기를 했다. C양이 나를 두려워했을까? 그것 역시 전혀 모르겠다. 어쩌면 속으로 웃었을지도...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거기 피라미드지?". C양은 "합법 다단계야"라고 답했다. 나는 "그럼 왜 거짓말로 나를 불렀어?"라고 물었다. C양은 "사람들이 다단계에 대해 오해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을 할 수 없었어. 너무 좋은 시스템이라 그렇게라도 소개시켜 주고 싶었어"라고 답했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대화가 계속 돌고 돌았다. C양은 교육받은 듯한 내용으로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래! 합법 다단계고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난 관심없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 그만하자!"라고 했다. 하지만 C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아 먼저 간다며 일어났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C양은 아파트 입구까지 계속 따라오더니 비로 인해 바닥에 물이 많이 고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무릎을 꿇었다. 맙소사! 너무나 놀랐지만 그냥 뒀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될 것 같았다. C양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부탁한 것은 3일교육만 들어달라는 거였다. 교육생이 탈퇴하면 본인이 입장해 곤란해진다며 한번만 도와달라고 했다. 딱 3일만, 정말 딱 3일 교육만 들어달라고 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늘 하루 교육을 끝까지 들어준 거였어. 더 이상은 곤란해"라고 잘라 말했다. 담배까지 태웠는데 착한척 하느라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C양은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날 밤에 또 전화가 와서 어떤 말들을 하긴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나는 것은 옆에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는 것 같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예상치않게 C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C양을 빨리 집으로 보내라는 거였다. 대체 무슨말이야!!! 무슨 말인지도 전혀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본인 말만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 이어서 걸려온 C양 어머니의 전화 "우리 C양이랑 같이 있니?". 무슨 상황인지 판단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C양이 나랑 있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집에다가 돈을 부탁한 것 같았다. 나는 C양 어머니에게 있었던 일을 말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며, 혹시 또 C양에게 연락이 오면 집으로 들어가라고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그러나 그 후로 C양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약 1, 2년 정도 지났을까? 하차를 한 두정거장 앞두고 버스에서 C양과 마주쳤다. 한동네서 살았기 때문에 만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만나졌다. 여전히 거기 다니냐고 물어봤다.(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질문을 했나 싶다. 아마도 C양이 자기가 이 일로 부자가되면 너 어쩔거냐고 물어봐서 부러워 해주겠다고 대답했던 일이 떠올라서 였던가 싶다) C양은 전공을 살려서 입시학원 강사로 나가고 있다고 답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느라 요즘도 이런 수법의 피라미드가 있나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여전하더라. 심지어 보석이름의 직급까지. 취업미끼로 20대 젊은이들을 덩쳐먹은 불법 다단계회사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더라. 합숙하면서 얼차례까지 줬다고 하니... 어떻게 이런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나 싶다. 참 나쁜 사람들.
나는 기본 성향이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정도가 아니다 싶으면 가지를 않는 편이라 별일 없이 그 때의 위기를 지나왔지만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런 곳에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을까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자고 있는 내 아이를 들여다보면 더더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더 살만하고 아름다워져야 할텐데 제발.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돈을 벌지 않고 사람 등쳐먹어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니 먹고사는 것을 넘어서 호화롭게, 무위도식 하는 사람들.... 특히 사이비종교의 교주, 불법 다단계의 보석님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뭐라 제대로 욕을 해주고 싶은데 딱히 욕하는 재주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C양은 잘 살고 있을까? 똑똑한 애였으니 그럴거라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