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상담 관성의 법칙'에 대하여

by 한도톰

얼마 전 아는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지인과 동생과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거의 1-2년 만에 각자 연락도 없다가 만난 사이였지만 오래된 사이는 오래된 사이다.

전혀 어색하지 않은 기류와 반가운 마음에 모터 달듯 나오는 근황이야기.


서로 편견 없이 받아 줄 것이라는 기대로 각자 삶에 대해 고민되는 영역을 진지하게 논하고,

본인이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과 여전히 결혼이 맞는 길인가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결혼은 누누이 말하지만 선택..),

나이는 중간계열에 속해있지만 결혼 경력은 나름 선배 축에 속하기에 조언도 아낌없이 해 주는 시간까지.


하지만 꼭 이런 시간에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심리상담사라면 지나치지 않고 듣게 되는 질문이다.


많고 많은 질문이 있겠지만 그중 인상 깊었던 내용 하나를 꼽자면,

'유명한 심리상담사한테 상담을 받아도 어차피 다들 원래대로 돌아가던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이 질문을 하는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하나는 상담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

또는 상담 말고 다른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겠지.


이럴 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관성의 법칙'이다.


사람에겐 n 년 혹은 nn년동안 자신의 정체성처럼 부여되는 '습관'을 하나씩 꼭 지니고 있다.

도톰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여간 이걸 고치는 게 쉽지가 않다.


한 번은 고치고자 매니큐어칠을 잔뜩 칠하거나, 네일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잠깐 3-4주 정도 고쳐졌을 뿐, 그 이후로는 초조할 때마다 손톱을 입으로 자연스레 갖다 대며 못 살게 굴기도 했다.


잠시 손톱에 조치를 취하여 행동에 변화를 주었지만,

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또는 정신을 차리지 않는 이상 도톰은 '관성'을 따라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을 것이다(이미 글을 쓰며 갖다 대려고도 했다).


하지만 가끔 물어뜯는 손톱을 보며 고쳐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섯 손가락을 모두 뜯다가 두 번째 손가락만 뜯는 횟수 정도로 줄게 하고,

다시 엄지 손가락을 뜯다가도, 다시 두 번째 손가락만 뜯다가 어느 날은 아무 손도 뜯지 않았다가,

그리고 다시 엄지와 두 번째 손가락을 뜯다가,

아차 싶어 매니큐어칠을 하여 조치도 취해보며 한 번도 안 뜯은 깨끗한 손톱상태를 보며

'그래, 역시 뜯지 않는 게 최고지'라는 긍정 경험을 하는 것.


이것이 '변화의 과정'이며, '성공에 대한 긍정 경험'이다.


심리상담도 해당 과정과 유사하다.

우리가 흔히 우울증을 감기와 비유하며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오래전부터 습관화되어있던 몸의 기억을 버릇이라고 하며

그 행동이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고치고자 노력하는데, 마음의 버릇이라고 다를 리 없다.


다를 리 없다기보다는, 아마 행동보다는 많은 정서와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변화하기에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싶다.


마음의 버릇은 어떻게 다루어질까?


오랜 과거로부터 학습되어 있었던 대상관계 혹은 자동적 사고 등의 패턴양식, 약속되어 있는 정서적 반응 등.


우리가 가정 혹은 사회에서 배운 정서적 기억과 관계 내에서의 기억으로

전혀 상관없는 타인과 혹은 상황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생기는 오류가 있다.

이를 부적응적인 행동양상이라고 정의했을 때, 개인은 불편감을 느끼고 상담실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개인에게 상담자는 함께 불편감을 느끼지 않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응적인 행동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는데,


이 과정에서 도톰의 손톱 이야기처럼 매니큐어칠도 해 보고 스스로 안 뜯는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느껴보도록 하고, 혹은 중간에 다 손톱을 뜯더라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는 것.

한 발짝 한 발짝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지지해 주는 것.


그 과정을 같이 걷다가 혼자 걸을 수 있게 독립시켜 주는 과정까지 상담사는 함께 지켜본다.

그리고 내담자는 '저는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며 종결하고 상담실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가 n 년 혹은 nn년동안 쌓인 관성적인 마음의 버릇은,


1주일에 1번, 50분 동안 함께하는, 짧게는 6개월(길게는 n 년 이상)로 이루어지는 상담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습득하며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지기에는 '관성의 법칙'이 이를 가만두지 않는다.


n 년 혹은 nn 년을 그러한 정서와 그러한 행동과 그러한 생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며 견뎌왔고,

1주일에 6번, 많게는 8,640분을 본인을 어렵게 하는 가정과 사회와 지내는 그 순간을

매일매일 버티며 지내는 개인이

1주일에 1번, 50분의 시간이 얼마만큼 쌓여야 온전히 기능할 수 있을지는

상담에서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며, 관성의 법칙을 이겨내려는 그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지 않을까.


상담은

그들의 넘어짐을 일으켜 세워주고,

자책하지 않도록 마음을 북돋아주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격려하는 것.

그리고 건강하게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그리고 방법을 터득하여 스스로 독립할 때 아낌없이 칭찬을 주는 것.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넘어질 수 있음'을 안내하고 '그때는 혼자서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알려주기.

그리고 언제든지 혼자 걷기 힘들 때면 꼭, 다시 상담실에 찾아오도록 권유하기.


그러한 관성과 끊임없는 성찰로 인해 적응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고,

마음의 버릇을 하나하나 고쳐가며 불편감을 덜게 하는

그 긴 과정을 버티는 사람이야 말로 완벽한 사람이 아닐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상담으로 한 번에 변할 것이라면, 상담은 상담이 아니라 그냥 마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