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한 출생
나는 엄마가 가진 병의 씨앗은 아주 오래전 심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 씨앗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엄마의 원가족 혹은 그보다도 앞선 역사로부터 차곡차곡 쌓인 원인이 결합해, 흡사 겹겹이 지층 무늬를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에야 정신과 진료나 <우울증> 따위의 병명은 어느 정도 흔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엄마가 처음으로 환청과 망상 증세를 겪고 정식으로 정신과에 방문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현병 증세가 진작 나타났음에도 가족의 삶이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될 때까지 방치했다는 말이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하물며 엄마가 젊을 때나 그 이전에는 웬만한 문제는 문제인지도 모른 채 안고 살지 않았을까? 나는 엄마가 조현병을 앓기 전까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수없이 많은 신호를 놓쳤으리라고 생각한다.
조현병 발병이나 방화 따위의 사건은 현대 사회에 규격화된 인간의 기준에서 봤을 때는 평면 위의 점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당사자인 엄마조차 자신의 정신에서 벌어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균열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 그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은 그 사람의 삶과 억압된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자 일부인지도 모른다.
해를 거듭할수록 희미해지는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를 떠올려 본다. 그때 엄마의 표정과 몸짓, 말짓을 되짚으며, 그 안에 응축되어 맺혀 있었을 엄마의 삶을 늘리고 펼쳐 다시 쓰는 상상을 해본다. 더불어 내 병의 기원을 더듬어본다. 처음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가 언제였을까. 그때 내가 원망하기 알맞은 대상은 누구였을까. 엄마에게 병의 씨앗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을지도 모르는 내가, 엄마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 태어나고 일이 년간은 너무 좋았지, 라는 말을 엄마는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뒤에 생략된 말을 상상했다. 내가 태어나고 일이 년간 좋았다는 말은 그 후로는 안 좋았다는 말이다. 당신의 행불행을 가르는 시기를 묘사할 때면 매번 엄마는 나의 출생을 끌어왔다. 나의 출생은 엄마에게 어떤 의미일까. 엄마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두 살 무렵 나는 생사가 오갈 정도로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고 한다. 열이 40도까지 펄펄 끓더니 내리지를 않아서, 엄마가 차가운 물수건으로 계속 내 몸을 닦아줬다고 했다. 그때 엄마 뱃속에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내 동생이 있었다.
“그때는 네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얼마나 놀랐는지…. 아휴,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그렇더라고.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써줘서 그랬던 거 아닌가…. 그래서 그냥, 뱃속에 있던 애는…그렇게 됐지.”
결국 열은 떨어졌고 나는 살았지만 동생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유산이 된 건지 임신 중절 수술을 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되묻자 엄마가 말을 흐리던 게 기억난다.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공연히 자책하는 버릇이 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내가 아팠던 일로 당신을 크게 책망했다. 당신이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건 엄마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엄마 주변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 엄마는 한쪽 가슴을 제거하는 수술과 재건하는 수술을 거의 동시에 받은 뒤, 며칠간 피통을 차고 집에서 요양했다. 피통을 차고 있었지만 혼자서도 어느 정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옆에 붙어 챙기는 걸 불편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엄마의 잠든 모습을 확인한 뒤, 집을 나서 근처 카페에서 남자친구와 공부했다. 바람을 쐴 겸 한강 주변을 산책하던 때였다.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피통이 빠져서 이불이며 옷이며 피범벅이 됐잖아! 이럴 때 넌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아빠가 일본어로 호통쳤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하는 동안 아빠는 뭐라고 몇 마디 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쪼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내가 두 살 무렵 아팠던 일과 그때 엄마의 심정을 짐작하는데 아빠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쩌면 내가 아팠던 그날, 엄마도 아빠의 질책을 듣지는 않았을까? 아빠는 엄마가 일본에서 이지메를 당했던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한 아빠와, 폐쇄적인 집단의식을 공유하는 주변 이웃이 엄마를 손가락질하진 않았을까. 빈손으로 일본 남자에게 시집온 한국 여자가 육아도 제대로 못 한다고.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그렇게 수군대는 목소리가 엄마를 줄곧 따라다닌 게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엄마는 혼자 있을 때도 그 소리를 듣게 된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그 얘기 들었어요? 왜, 나이 차이 좀 있는 학원 선생한테 시집온 한국 여자.
그 집 둘째가 얼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죠?
세상에나! 집에서 애만 돌보면서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그 사달이 난 거예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이들은 무슨 죄람.
엄마를 잘못 만난 거죠, 뭐. 아유 쯧, 불쌍해라….
그런데 그거 알아요? 글쎄, 그 여자가 셋째를 뱄대요.
어머나! 두 명도 감당 못 하는 마당에 무슨 자신감으로?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나면 집안 돌아가는 꼴이 더 엉망이 되지 않겠어요?
이번에 운 좋게 애가 살아서 망정이지, 또 그런 일이 있다가는 애를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에요.
암요. 아이라고 어디 그런 엄마 밑에서 태어나고 싶겠어요?
…(후략)…
조현병 증세가 극심할 때를 제외하면 엄마는 당신 삶에 일어난 웬만한 것을 그저 조용히 참아내곤 했다. 다 내 탓이오-해야지 어쩌겠니, 라고 엄마는 자주 말했다. 정말? 그런 식으로 엄마 탓으로 돌리면 그냥 그런대로 살아지는 거야? 엄마가 겪은 아프거나 슬픈 일은 엄마가 선택하지 않은 것투성이인데도? 어쩌면 그래서 엄마가 병에 걸린 것 아냐? 물론 그러지 않았어도 병에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밖으로 뱉지 못한 화를 속에서 삭이느라 마음이 더 많이 망가진 것 아냐?
라는 것은 물론 모두 내 상상에 불과하다. 동생 대신 나를 택한 건 당신 선택이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러나 만약 내 상상이 사실과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그걸 온전한 선택이라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한 선택 뒤에 엄마가 느낀 감정은 어땠을지, 그것들이 한 사람 가슴안에 가두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엄마의 말 너머에 있는 감정을 짐작해 볼 뿐이다. 아마도, 엄마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뒤에 많이 슬펐을 거라고. 죄책감도 느꼈을 거라고. 분명 엄마 안에는 낳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겪게 될지 모를 비난과 질책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웠을 거라고. 그래서 그들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며 스스로 타일렀을 거라고. 당신은 부족한 엄마이며, 욕심을 부려 셋째를 낳기보다 두 딸을 더 극진히 돌봐야 마땅하다고. 그편이 아이들에게도, 당신에게도 옳은 일이라고. 그렇게 판단하고 선택했지만, 종종 억울했을 거라고. 화나고, 속상하고, 서러웠을 거라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미워진 게 아닐까? 당신에게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불행을, 더 이상 당신 탓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없게 된 일을, 내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엄마에게 있지 않았을까?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가 부족한 엄마라는 평가를 듣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랬다면 엄마가 아이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엄마는 당신의 행불행을 가르는 분기점과 함께 기어코 나를 떠올리고 마는 게 아닐까? 너 태어나고 일이 년간은 너무 좋았는데……. 그때까진 행복했는데……. 네가 그날 갑자기 아픈 바람에……. 그 뒤로는……. 그러니까……. 너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네가 태어나는 바람에……. 너 때문에 나는…….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아무래도 내가 엄마에게 병의 씨앗을 물려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홉 살 때쯤이었나. 식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무슨 물건을 잡으려고 했는지 의자 위에서 네발 기기 자세를 한 채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솟아오른 천진한 엉덩이를 누군가 뒤에서 찰싹 때렸다. 맞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장난기나 사랑이 담긴 손길이 아니라는 것을. 손바닥이 닿는 순간의 감촉, 손의 주인이 내뿜는 기척에서부터 명백한 적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두려움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울화가 잔뜩 치민, 처음 보는 얼굴의 엄마가 서 있었다.
“그럴 거면 둘째 이모네 가서 살아!”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럴 거면”이라니? 내가 뭘 했는데? 왜 내가 둘째 이모네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 한창 엄마와 갈등이 있던 둘째 이모는 당시 엄마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둘째 이모네 가서 살라는 말은 나를 증오한다는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엄마의 분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경험적으로 알뿐이다. 엄마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세상 속에서, 내가 엄마에게 무언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엄마의 세상 속 나는 엄마를 괴롭히는 이들의 앞잡이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주로 첫째 이모를 주축으로 하고 있었다. 첫째 이모는 당시 괴산에서 요양원을 운영했는데, 요양원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에 내가 태어난 연월인 1999년 8월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게 내가 그들의 앞잡이인 근거였다. 보편적인 맥락이나 개연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단어나 행위에서 파생된 특정하고 미세한 자극이 엄마에게는 중대한 단서가 되었다. 엄마는 그 단서를 조합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들의 목적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당신이 새롭게 알아낸 바를 귀띔할 때면, 엄마는 무슨 기밀 사항이라도 유출하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내 귓가에 그 내용을 속삭였다. 그러다 곧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어때, 아주 앞뒤가 딱딱 들어맞지? 마침내 알아냈어. 놈들에 대한 실마리를 내가 쥐고 있다고. 라고, 엄마는 말하고 싶은 듯했다. 과도한 자기 확신에 찬 우쭐한 표정, 격앙된 음정과 템포의 날카로운 웃음. 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경쾌하고 산뜻하기까지 했다.
나의 주 양육자, 내 세상의 창조주이자 사랑과 보호와 지지를 받고 싶은 대상이었던 엄마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펼칠 때. 그리고 그 논리를 앞세워 나를 매도할 때. 나의 세상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소통이 아닌 배설에 가까운 의사 전달에 나의 동의 여부는 관계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도, 개선할 수도 없는 현상을 빌미로 나를 미워하는 엄마를 볼 때면, 높이도 두께도 가늠할 수 없는 견고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암담한 심연으로 빨려드는 추락의 감각과 엄마의 달뜬 웃음소리 간의 엽기적 대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울어야 하나? 그렇지만 엄마는 웃고 있다. 이게 웃긴 일인가? 엄마에게 좋거나 즐거운 일인가? 엄마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의 말이 사실인가? 엄마의 말대로 내가 나쁜 아이인가? 엄마를 직접 괴롭히거나, 혹은 괴롭히는 사람을 돕는 행위를 나도 모르는 새에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잘못한 사람도 없는데, 왜 나는 나를 낳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만 하는 걸까? 종잡을 수 없는 순간에 심하게 화내거나 과장되게 웃는 엄마 앞에서,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뢰 찾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으, 아, 윽. 지뢰를 밟을 때마다 행동반경이 대폭 줄었다. 표출되지 못한 감정과 욕구가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나의 몸짓과 말짓은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워졌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떼쓰지 않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미움받는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아, 아무래도 나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가 보다. 학교에서도 일본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과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렇구나. 나는 태어난 것을 사과해야 하는구나. 나는 잘못된 존재였다. 나의 출생은 축복이 아닌 불행이다. 이 땅 위에 내가 발 디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도 가끔 웃는 얼굴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과자를 쥐여주며,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오라고 했다. 교회에 가면 온갖 종류의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들의 호의를 의심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다 보면, 천사 같은 얼굴을 한 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인간은 죄인이라고.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도합시다…… 아멘.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어린아이의 뇌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아를 분열했다. 그중 대체로 지휘봉을 잡았던 건,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에 비위 맞추며 생존을 허락받는 자아였다. 혼자 생존할 힘이 없는 아이가 스스로 힘을 갖출 때까지 그 자아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 아래 억울함, 분노, 공격성 등 바깥에 표출하면 유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것을 가두는 하수처리장 같은 자아가 짓눌려있었다. 온갖 오물과 찌꺼기를 머금은 자아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폭탄 돌리기 식으로 미루고 미룬 감정과 욕구를 모두 떠안은 자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는, 아이의 정신이 붕괴되어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식도 그다지 유효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는 부엌 칼꽂이에 꽂힌 식칼과 옥상 난간 너머의 지면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얼마 뒤 아이 엄마가 정신 병원에서 타온 약을 먹고 입을 다물게 되면서, 아이는 아홉 시 뉴스에 나올만한 큰 사건을 치르지는 않게 되었다.
어찌어찌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아이는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그때 내가 나쁜 상상을 했던 건 내가 물려받은 병의 씨앗 때문이었을까? 그 씨앗은 어디로부터 흘러왔을까? 그렇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나의 몸에 기생하는 그 씨앗과 앞으로도 평생 함께해야 한다면, 나와 타인에게 몇 대 몇 비율로 그 빚을 지워야 할까?
그 씨앗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온전히 나의 몫으로 감내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불행을, 더 이상 내 탓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없게 된 일들을, 아주 사소한 조각으로 잘게 떼어내기 위해. 민들레 씨앗처럼 작고 가벼워진 그 조각들을,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퍼뜨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