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기록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아빠의 병원을 옮긴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병원을 옮긴 다음 날에는 장어집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다음 날에는 유튜브 촬영을 했다.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다. 약 4주 만에 맞은 휴일이었다. 눈이 떠진 지는 꽤 됐지만 어쩐지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누워있는데 핸드폰 착신음이 울렸다.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아빠가 사레가 자주 들러 연하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빠가 있는 병원은 재활 운동 치료를 주로 하는 곳이기에, 연하 검사를 하기 위해서 다른 병원 외래진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빠는 혼자 움직일 수 없으므로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 검사 가능한 날짜는 당장 내일과 다음 주 목요일. 공교롭게도 양일 모두 유튜브팀 회의가 있는 날이다.
숨이 막히고 이성적인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 어… 그러니까…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숨을 골랐다. 가슴안에 무거운 돌덩이가 자리잡은 기분이다. 유튜브 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이게… 왜 이렇게 됐지…. 침대 위를 뒹굴며 핸드폰 화면 속 애꿎은 달력 앱만 노려봤다.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서 봐도, 옆으로 누워서 봐도, 엎드려 누워서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아무래도 빨리 검사받는 편이 낫겠지. 병원에 전화 걸어 내일 가겠다고 알리고, 팀에는 양해를 구했다.
다음 날 만난 아빠는 며칠 만에 얼굴 살이 올라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기운이 솟았다. 아빠에게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자 밥 주는 양이 이전 병원보다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재활 치료는 어때? 별거 없어. 그래? 어떤 거 하는데? 이런 식으로… 손으로 뚜껑 같은 것을 쥐는 시늉을 하며 말을 잇던 아빠의 목소리는 페이드아웃 되듯 점차 희미해지다 이내 끊어졌다. 아빠에게 단답형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면 그런 식이었다. 말소리와 동작이 느려지고 작아지다가 멈춘다. 멈춘 것인지 아주 천천히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한동안 기다리다가, 아빠가 부담을 느낄까 봐 염려되거나 내가 민망해질 때쯤 말을 돌렸다. 그날도 이제 곧 우리 연하 검사를 하러 근처 병원에 간다며 말을 돌렸다.
진료 예약 시간이 다가오자, 아빠 병실의 담당 간병인이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휠체어에 앉혔다. 그는 비록 같은 남성이긴 해도 체구가 작은 편이었는데, 아빠에게 다가가 자기 어깨를 잡으라는 식으로 필요한 요청을 해가며 적재적소에 적절한 힘을 써 혼자서도 능숙하게 아빠를 옮겼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감탄하던 나는 행위가 다 끝날 즈음에야 나도 뭔가 도와야 했나 싶어 아차 했다. 몇 달째 누운 모습만 봤던 아빠가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약간 감격스러웠다. 나는 아빠가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레 휠체어를 밀었다.
병원에서 지원해 주는 차량은 트렁크 쪽 문이 아래까지 완전히 열려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휠체어에 탄 아빠가 뒤쪽에 타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바로 근방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간단한 진료 후 연하 검사실 앞에 줄을 섰다.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 중 아빠보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다가 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황급히 나를 나무랐다. 아빠보다 덜 건강한 사람들을 두고 이따위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나봐.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아빠 뒤에 서 있는데 아랫배가 묵직하고 다리가 아팠다. 아무래도 생리가 다가오는 탓인 것 같다. 줄이 조금 줄어들자, 검사실 바로 앞에 놓인 기다란 대기 의자가 보였다.
「ちょっとあっちに座ってるね。」
잠깐 저쪽에 앉아 있을게.
나는 아빠의 시야에 내가 닿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 휠체어를 세워두고 잠깐 의자에 앉았다. 앞서 줄을 선 사람이 하나둘 검사를 마치고 곧 아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보호자분 검사실 들어오셔서 환자분 검사 받는 거 보시겠어요?”
앗, 네,라고 거의 곧바로 대답하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그런 스스로가 의아했다. 뭐 때문에 고민한 거지? 당연히 검사를 지켜보고 아빠 상태에 대해 더 이해하는 게 좋을 건데.
의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x선 투시된 아빠의 옆모습이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얼굴뼈와 목뼈 아래로 희미하게 장기의 실루엣이 보였다. 검사자의 지시에 따라 아빠는 조영제가 첨가된 각기 다른 점도의 액체를 차례로 삼켰다. 물처럼 완전히 액체 상태에 가까운 물질을 삼키자, 식도로 다 넘어가지 않고 남은 액체가 턱 밑 공간에 고여 찰랑였다. 의사는 그 부분을 가리키며 연하 작용이 잘 되고 있지 않는 거라고 설명했다. 액체의 점도가 낮을수록 이렇게 식도로 다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이것이 아래에 있는 기도로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이 올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원래는 이 정도 수준이면 아직 콧줄을 꽂고 있어야 할 단계인데요. 아아, 네, 그렇군요… 아빠가 콜록콜록 기침했다. 재활 치료로 좋아질 수 있는지 묻자 노화의 영향도 있어 장담은 어렵다고 했다. 아빠는 섬망이 왔을 때 콧줄 끼고 있는 것을 유독 괴로워했는데. 혹시나 콧줄을 다시 꽂아야 한다고 할까 조마조마한 마음과 일반식을 먹다가 폐렴이 올까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이미 일반식으로 넘어갔으니, 콧줄을 다시 꽂기보다는 음식이든 물이든 점도 증진제를 타서 드리는 걸로 하죠.”
네, 하며 의사에게 꾸벅 인사한 후 아빠와 함께 검사실을 나왔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무력감과 두려움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 쓰느라 한동안 아빠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이제 와 어떤 노력을 기울인들, 아빠의 육체는 완전한 회복을 향해 가는 게 아닌 조금 느리게 죽어갈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어려웠다.
다시 차를 타고 아빠가 입원한 병원으로 돌아와 아빠를 병실에 데려다줬다. 침대에 누운 아빠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아 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 이 기분을 느낀 건 좀 더 이전부터였던 거 같은데…아까 검사실에 들어갈 때부터였나? 아니면 오늘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게 무슨 기분이냐면, 뭐랄까… 몸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꿈지럭대며 그곳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어 했다. 그곳은 또 어디지? 아빠의 병실에서? 병원에서? 혹은 내 몸에서? 이것 역시 잘 모르겠다. 오늘 진료 보러 간 거 말고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러지. 아마 생리 전이라서 그런가보다. 피부 안쪽에서 번지는 정체 모를 간지러움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 즈음, 아빠에게 할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얼른 병원을 빠져나왔다.
서울로 돌아와 렌트 차량을 반납한 나는, 문득 혼자 있는 게 두려워졌다. 오늘 모임을 가졌을 유튜브팀 언니에게 연락했다.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하고 있다기에 나도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당역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팀원들과 합류해 감자전을 시켜 먹고 노래방에 갔다. 마야의 진달래꽃을 열창하며 잠시간 이상한 기분을 미뤄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해소되지는 않았다. 혼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금 그 기분이 덮쳤다. 그 기분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이 몸이 근질거린다.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싶다. 성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면서, 육체가 행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괴상한 몸짓으로 춤추면서. 아니면 누가 나를 흠씬 두들겨 패 줬으면 좋겠다. 완전히 짜부라뜨려 뭉개버리거나, 안쪽에서부터 팽창시켜 터뜨려 주거나,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면 좋겠다. 영혼이 몸 안에 벗어나려고 탭댄스를 추는 것 같다. 사나운 춤사위가 몸 안쪽을 이쪽저쪽으로 쿡쿡 찔러대며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2024년 6월 28일 금요일
오늘은 아빠를 보러 가는 날이다. 저녁에 장어집 아르바이트가 있기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지만 몸이 마음 같지 않았다. 이번 주에 일정이 비는 날은 그저께인 수요일 딱 하루여서 원래는 그날 병원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생리가 시작됐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침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늘 가게 되었다. 셋째 날인 오늘 비교적 생리통은 덜하지만 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출발 예정 시간이었던 여덟 시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은 시간인 아홉 시가량 출발해 열두 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아빠에게 인사하고, 간병인에게 요청받은 물품을 사러 근처 의료기상사에 들렀다. 돌아오니 아빠의 침대 위 탁자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두부와 간장, 그리고 갈린 흰죽이 담긴 그릇과 채소 반찬을 간 것 같은 초록색 죽이 담긴 그릇이 놓여있었다. 간병인은 흰죽과 초록죽에 분말 형태인 점도 증진제를 섞고 자리를 떴다. 아빠가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식사를 시작했다. 숟가락을 쥔 아빠의 오른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빠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우측 편마비를 겪고 있기 때문에, 오른손보다는 왼손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렇지만 아빠는 오른손잡이다. 마비 증상이 남아있는 오른손과 잘 쓰지 않던 왼손 중 어느 쪽 손으로 숟가락을 잡든 움직임이 막힘없이 흐르지는 않는다. 아빠가 쥔 숟가락이 음식물을 떠서 입가에 가져가고, 입을 벌리고, 음식물을 입에 넣는 중간중간 숟가락의 각도가 기울어지면서 음식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위장이 쪼그라들 듯이 조였다. 아빠의 신체 기능 회복을 위해서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꺾지 않기 위해서도 내가 큰 도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보는 게 버거웠다. 내가 도움을 줘서 아빠가 편하게 식사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과, 그건 내 욕심일 뿐이라며 꾸짖고 억누르는 마음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표현되지 않은 아빠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내 것처럼, 어쩌면 내 것보다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느껴졌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을 한순간에 잃은 기분이 얼마나 끔찍할까. 매분 매초가 당신의 몸이 더는 당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한다면…. 매일 먹는 저 지긋지긋한 갈린 죽은 또 어떻고. 나는 남는 숟가락을 가져다가 초록 죽과 하얀 죽을 살짝 맛봤다. 초록죽에서는 겉절이 같은 맛이 났고, 흰죽은 보이는 그대로의 흰죽에 소금만 약간 들어간 맛이었다. 소금 간 만큼은 잘 되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매일 먹지 싶었다. 나 같으면 다른 메뉴 달라고 항의하는 심정으로 굶을 것 같은데…. 아마도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해서 빨리 나아지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 빨리 나아지고 싶은 이유 중에는 가족을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당신이 평생 곁을 지켜왔던, 마음이 곯은 늙은 여자가 시무룩한 얼굴로 당신을 만나러 올 때면 마음 편히 아프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온다고 뭐 다를까. 우리 집엔 키 작은 아빠보다도 더 조그만 여자들밖엔 없다. 불쑥 주치의의 사식 금지령으로 한우 곰탕을 먹지 못해 아쉬워하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병원을 옮기던 날, 한우 곰탕 가져왔다는 말에 아빠는 거의 울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기뻐했는데.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다음에는 몰래 소고기죽이라도 가져와 볼까? 근데 그걸 먹는 편이 오히려 아빠에게 해롭지는 않을까? 그걸 먹은 뒤로 병원 밥이 참을 수 없이 지긋지긋하고 맛없게 느껴진다면 어쩌지?
아빠는 내가 보고 있으면 식사를 빨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존심이 강한 아빠는 이토록 무력해진 꼴을 내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아빠, 미안해, 그냥 다. 사실은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다 그만두고 편히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더 이상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어쩌면 그때 그렇게 말하는 편이 나았을까?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빨리 서울로 출발해야 하는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계와 지도 앱을 번갈아 보며 예상 소요 시간을 몇 번씩 새로고침 하다가, 마지노선에 다다라서야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今日はバイトがあるのでもう行くね。」
오늘은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이제 그만 갈게.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차가 미친듯이 막혔다. 뜨끈한 햇살이 내리쬐는 나른한 금요일 오후, 좀처럼 진척 없는 도로 위에서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왜 갈수록 막히나 했는데,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줄줄이 사고를 내는 모양이었다. 꼼짝없이 막히는 구간을 살짝 빠져나올 때면 양옆 혹은 앞뒤로 붙어있는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삼십 분 정도 여유롭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찔끔찔끔 미뤄지던 예상 도착 시간이 어느새 처음보다 한 시간가량 늘어났다.
아무래도 지각할 것 같은데… 매장에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 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만 죄송하고 싶었다. 죄송하다는 건 내가 잘못했다는 말이잖아. 잘못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나는 정말 잘못한 사람이 되고 말잖아. 잘못한 사람이 되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 미움받을까 봐 두려웠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태껏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왠지 모르게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억울하긴 뭐가? 그러니까 네가 진작에 출발했어야지. 수요일에 생리통을 핑계로 병원에 안 간 것도, 그래서 오늘 급하게 일정을 잡은 것도, 그마저도 일찍 일찍 움직이지 않아 이렇게 지각하게 된 것도, 모두 다 네 잘못이잖아. 뭐,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고? 아빠를 보니까 우울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갑자기 차가 막혔다고? 어디까지 받아줘야 해? 누구는 안 힘든 줄 알아? 다 힘들어. 다 힘든 데도 살아가는 거야. 누구도 네 사정을 봐줘야 할 의무는 없어. 어리광 피우지 마. 지극히 개인적인 네 사정이잖아.
내면의 목소리에 호되게 혼난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죄송한 목소리를 내야 해. 알지?
“아…저 유미인데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오늘 네시 출근인데… 지금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 삼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네, 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옹색한 변명으로 범벅이 된 전화를 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이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세 시간 반의 운전 끝에 네시 이십팔 분쯤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반납하고 허겁지겁 장어집으로 뛰어갔다. 가장 먼저 마주친 직원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횡설수설 상황 설명을 하며 무전기를 찼다. 아직 손님이 많은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저녁 장사에 대비해서 할 일이 잔뜩 쌓여있었다. 재빠르게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다른 직원을 마주쳤다. 또 사과해야 하나? 무언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처럼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또 죄송하면 왜인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어… 안녕하세요…. 애매하게 인사 하고 얼른 싱크대 앞에 자리 잡아 버섯과 양파를 잘랐다. 그러다 손질 타이밍을 놓쳐 애매하게 길어진 손톱을 라텍스 장갑 채로 썰어버렸다. 다행히 손가락은 무사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서 하나둘 손님이 오더니 어느 새 만석이 됐다. 정신없이 손님 테이블에 장어를 나르고, 반찬을 리필하고, 물을 갖다 주고, 테이블을 치웠다. 원래대로라면 아홉 시까지였던 근무시간이 연장되어 열 시 반에서야 퇴근했다. 갑작스런 연장근무로 인해 그나마 지각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몸과 정신은 너덜너덜하고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각성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된 것 같다. 언제 숨을 제대로 쉬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내일도 모레도 장어집에 출근하고, 월요일엔 유튜브 촬영하고, 집안일은 밀려있고…….
언제 끝나지?
뭐가? 뭐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건데? 끝나지 않는 꼬리잡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잡히면 큰일 날까 봐 뛰어다니지만, 막상 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뛰지 않는 게 뭐지?
분명 뭔가 잘못된 느낌인데, 이거 절대로 끝까지 못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영혼이 몸 안에서 비틀대며 우스꽝스러운 탭댄스를 춘다.
어디로 가고 싶은 줄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