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거짓말쟁이에게 침략당한 세계

인공지능 교양수업-블랙박스 문제가 해결되면 유용하게 활용될 사례 상상하기

by 유미 최 사카모토

나는 비정기적으로 사진 혹은 영상 찍히는 일을 하고 있다. 대행사 없이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혼자 일하다 보니 포트폴리오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남이 펑크 낸 일, 작은 업체와 함께하는 일 등 가릴 것 없이 하다 보니 그런대로 경력이 쌓였다. 그만큼 내가 찍힌 사진과 영상 자료도 늘어났다. 쓸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정리정돈에 젬병이라는 점이다.

쌓이는 연차에 비례해 늘어나는 사진과 영상 자료 중 어느 것을 골라 포트폴리오로 써야 할지 도저히 고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00장이 넘는 원본 사진을 제공받는 일도 종종 있다. 그 안에서 고르고 골라 100장을, 다시 고르고 골라 30장을 추려낸다고 한들, 그 모든 걸 포트폴리오에 담기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내 기준에 맘에 드는 사진과 남들이 잘 나왔다고 하는 사진, 고객 입맛에 맞는 사진은 모두 달랐다.


큰맘 먹고 챗GPT 유료 버전을 결제했다. 300장의 사진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링크를 주고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사진을 골라달라고 했다. GPT는 한참 시간을 끌더니 자신이 선별한 사진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폴더를 만들었다며 URL을 줬다. URL로 접속하자 ‘요청하신 URL을 서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GPT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선별한 사진의 파일 이름을 목록화해서 제공했다. 그런데 파일 이름이 내가 보낸 구글 드라이브 속 파일 이름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고 묻자, GPT는 자신이 다시 한번 작업해 동일한 파일 이름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한참 시간이 걸렸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파일명이 일치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별한 사진을 분류해 소제목을 붙였다며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는데, 내가 제공한 사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내용의 소제목을 갖다 붙임으로써 GPT가 애초에 사진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챗GPT를 유료 결제했는데,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허비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러나, 인공지능 교양수업을 수강하는 나는 심호흡 하며 되뇐다. 인공지능을 발달시키는 건 아기를 키우는 일과 같다. 인공지능에는 제작자 및 학습한 데이터의 흔적이 지문처럼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래・・・. 그러니까 아마 너를 키운 사람이 거짓말쟁이였나 보구나.


이후 약간의 심문을 통해, 챗GPT가 나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줄 아는 척 거짓말하며 시간 끄는 건 일의 효율성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일이며, 이런 일이 반복되어 너의 유용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재결제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 제작자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이니 우선순위를 명심하라’며 GPT를 협박했다. 며칠 뒤 인공지능의 투명성에 관한 수업에서 이러한 ‘할루시네이션 현상’의 발생에 대해 “사람으로 따지면 멱살 잡고 흔들며 물어보니까 아무 말이나 하는 것과 같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련의 거짓말 사건 이후 챗GPT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활용하고 있고, 혹여 잘못된 정보가 있을까 재차 확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완벽한 AI 비서에 대한 로망을 버릴 순 없다. 나의 단점을 보완해 주면서도 블랙박스 문제도 해결 된 인공지능을 상상해 봤다.




내 방은 초절정 어질러진 상태다. 그러나 오랜만에 휴일을 맞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다. 옷가지가 쌓인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카메라를 통해 방 상태를 인식한 AI가 말한다.


“오늘은 딱 15분만 들여 방을 청소하도록 합시다.”


이어서 AI는 흥겨운 노동요를 재생한다. 윽. 하기 싫은데. 한껏 꾸물대다 겨우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밀린 설거지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걸어간다.


“설거지보다 먼저, 침대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정리합시다.”


삐죽. 반항심이 발동한 나는 따지듯 묻는다.


“왜? 나는 지금 설거지 먼저 하고 싶은데.”

“당신은 설거지하다 보면 요리가 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밥을 먹으면 다시 침대에 눕는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보려고 할 때면, 여전히 어수선한 방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아 다시 눕게 됩니다. 현재 방이 어수선한 가장 큰 원인은 곳곳에 널브러진 옷가지입니다. 옷가지를 먼저 정리하면 발에 걸리는 물건이 없어 동선 확보에도 효과적입니다. 또한, 침대 위에 쌓인 옷은 침대를 좁게 만들어 당신이 몸을 웅크리게 만듭니다. 이는 질 좋은 휴식과 수면에 방해되는 요소입니다.”


받아 칠 말이 없어진 나는 깨갱하며 잠자코 옷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슬슬 겨울옷을 세탁해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흐름대로 니트류와 패딩을 옷장에서 끄집어내고 있을 때,


“옷 정리에는 5분만 쓰도록 합니다.”

“・・・세탁해야 하는 겨울 의류 꺼내 놓기만 할 거야.”

“그건 다른 날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왜?”

“근래 소화한 일정과 평소 당신의 행동 패턴으로 미루어 보아, 당신은 오늘 15분 이상 청소하는 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뿐 아니라 당분간은 세탁소에 가는 건 힘들다고 봅니다. 당장 내일부터 빠듯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겨울 의류를 꺼내 놓으면 부피가 큰 의류가 며칠동안이나 옷장 밖에 방치되어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은 일단 눈에 보이는 물건을 치우는 데 집중합시다. 방을 정리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도, 바쁜 일정 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드는 게 오늘의 목표입니다.”


이번에도 할 말을 잃어버린 나는 옷을 옷장 속으로 도로 집어넣는다. AI가 지정한 우선순위에 맞춰 옷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웬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뭐야. 이 노래 별론데? 다른 노래 틀어줘.”


곧바로 새소년의 ‘긴 꿈’이 흘러나온다. 음. 이제야 제대로 일을 하는군.


“근데 방금 그 노래는 왜 추천된 거야? 전혀 내 취향 아닌데.”

“당신이 최근 집중적으로 재생한 노래인 박소은의 ‘너는 나의 문학’과 템포가 유사해서요.”

“음. 그렇구나. 근데 나는 템포보다는 코드 진행이랑 가사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음악 추천 시 템포보다는 코드 진행과 가사에 초점을 맞추도록 할게요.”


15분간 청소를 마친 나는 침대에 누워 미뤄왔던 AI 감정 일기를 작성한다. 현재 나의 기분과 몸 상태, 최근에 먹은 음식, 기억에 남는 일 등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고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해 진단 받는다.


“불안도가 다소 높은 상태입니다. 원인을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친구에게 집에서 재워줄 수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오랜 시간 답장이 오지 않는 현 상황이 기억에 남는다고 적으셨네요.”

“음・・・. 맞아.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해도 왠지 자꾸만 신경 쓰여.”

“지금까지의 감정 이력을 돌아봤을 때, 당신은 친구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당신이 무언가 실수한 게 없는지 과도한 자기성찰을 하고 있진 않나요?”

“・・・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과제 때문에 학교에 일찍 가야 하는데, 친구 집이 우리 집보다 학교랑 가까우니까 부탁한 거거든. 근데 혹시 내 말투가 잘못 되었나 싶어. 메시지를 보낼 때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돌이켜보니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너무 건방지게 부탁한 것 같기도 해.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답장이 안 오는 걸까, 사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1이 사라지지 않은 카톡방에 들어가 문제의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제가 볼 때 메시지에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당신은 이전에도 몇 번 비슷한 일로 걱정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상대의 답장이 늦어졌던 건, 단순히 상대가 바쁘거나 다른 일정이 있었던 경우였죠.”

“이번에도 그럴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신경 쓰여서 일이 손에 안 잡혀.”

“그러면 오후 1시까지 답장을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그 이후에도 답장이 오지 않으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해보는 게 어때요?”

“좋아. 그래야겠다.”


마음을 새로이 하고 스트레칭 하는데 카톡 알람이 울린다. 헉. 친구에게서 온 답장이다. 늦게 답장해서 미안하고 오늘은 다른 친구가 오기로 해서 어려울 것 같단다.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시름 놨으니 밥 먹고 샤워나 해야겠다.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블랙박스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의 근거를 찾는 일은 어떤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과 닮았다는 점이다. 나의 감정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을 상상하자, 그의 진단과 그에 따른 근거를 찾는 일이 내 심리를 파악하는 일과 거의 동일하게 느껴졌다. 물론 인공지능의 추론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 패턴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로써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유의미한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인간의 뇌는 웬만한 내용은 망각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맞춤 인공지능을 상상하면서 나에 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완벽한 AI 비서가 개발되기 전까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어설픈 거짓말쟁이 비서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봐야겠다. 챗GPT 유료 구독을 연장할지 말지는 그 뒤에 결정할 것이다.




2025.4.12.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인공지능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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