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 “10년 전에 (같이) 어느 프로그램에서?”
주병진 : “아, 난 기억이 안 나”
노사연 : “아까 얘기한 것도 기억이 안 나” (웃음)
《라디오 스타》의 주병진, 노사연 씨가 출연해서 웃음 아닌 웃음을 줬다. 하지만 웃픈 현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떨어진다. 그 누구도 세월의 힘을 비켜갈 수 없다. 누군가 이름, 지역, 식당 등 질문을 하거나 생각할 때, 머릿속, 입가에만 맴돌 뿐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머릿속이 깜깜해진 느낌이다. 농담 삼아 ‘나, 치매 아니야?’라고 이야기하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시골집에서 만난 아버지(팔순이 되신)와 나눈 대화다.
“차가 많이 막히더라고요.”
“어떤 도로로 왔니?”
“음... 거기 춘? 수도? 뭐시기 였던 것 같은데요.”
나는 급하게 T-map을 켜서 다시 한번 다녀온 길을 찾아봤다. 아버지도 집안으로 사라지셨다.
“아, 수도권 제1 순환고속도로였어요.”
“맞아. 거기네.”
아버지도 집안에서 노트북으로 이미 검색을 하신 것이다.
이렇게 뭔가를 떠올리려면 검색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기억의 편린을 찾아서 다시 조각 맞춤을 해야 한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아, 그거였구나’라고 생각한다.
《특별시민》이라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장 최민식의 기사로 출연한 배우의 얼굴이 너무 낯이 익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깜깜하기만 했다. 역시 스마트폰에게 도움을 청했다. 영화를 검색한 후 등장인물을 찾아서 그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을 찾아봤다. 바로 기억의 습작을 마칠 수 있었다. 《극한직업》과 《승리호》에 열연한 배우 진선규 씨였다.
작년부터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바로 기록하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의 도움을 받아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겼다. 책을 읽고 나면 매달, 또는 분기마다 ‘복기’를 했다. 가족과 모이면 사진을 찍고, 부모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일기는 5년 전부터 매일 쓰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이런 사람을 주위에서 본 적이 없다)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인지하기 위함이다. 음식 중에서 1순위를 차지한 것은 ‘잔치국수’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음식이 더 좋은 것은 왜일까? 이미 내 몸 안에는 충분한 영양분이 넘쳐서 그런 것일까? 참고로 2위는 꼬막이다. 둘이 늘 1,2위를 다투고 있다.
아이들과 식사를 할 때 이런 습관도 생겼다. 저녁에 ‘장어’를 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혀끝으로 장어와 소스의 맛을 음미했다.
“음... 얘는 10위...”
“그러면 10위에 있던 음식은 밀린 거야?”
“응...”
“10위가 뭐였어?”
“그건 찾아봐야겠다.”
어제 먹은 장어
이렇게 순위를 매기면서 아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한다. 나름대로 순위를 매기면서 혼자 고민하고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마저 대화를 이어 간다.
“얘들아, 아빠 제사상에는 10위 안에 드는 음식은 올려줘야 한다.”
안 차려 줄 것 같아서 한 마디 더 붙인다.
“인스턴트식품으로도 많으니깐...”
1등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잔치국수
음식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음악 등도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나이가 더 들수록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기 때문에 꾸준히 복습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더 많아지고, 그만큼 기록할 것도 많다. 연륜이 들면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음식도 그렇다. 물론 사람도 포함해서다. 새로운 것도 꾸준히 시도하지만(영화, 드라마, 관광지, 음식 등), 기존에 좋았던 경험도 반복한다. 뭐든지 좋은 것은 꾸준한 감동을 주는 법이다.
호기심, 기록, 반복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한 습관을 갖는다면, 보다 명확하게 기억을 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지금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식 베스트 10을 써보면 어떨까? 그 음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일 것이다. 특히 마흔 이후에는 ‘기록’의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기억을 도와주는 다양한 도구들을 많이 활용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계속 경험하고, 나의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당연히 기억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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