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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Dec 13. 2018

05. 가족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며느리. 조선시대에 혼례 후 신부가 폐백을 드리고 신랑의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절을 올리고 나면, 며느리라는 지칭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 보이는 추측성 가설은 몇 가지 있다. 


먼저 중세 국어에서 ‘며늘’이라는 단어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기생하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에 ‘아이’가 합쳐졌다는 추측이다. 학술적으로 얼마나 맞는 가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시집 간 여성을 낮추어 생각하는 옛 사고방식이 느껴지는 듯해 불편하다. 


한편 제사 음식 중 밥을 지칭하는 단어인 ‘메’와 나르는 사람을 의미하는 ‘나리’가 합쳐져 며느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동안 수많은 며느리들이 어떤 노동을 해왔을지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며느리라는 단어의 정확한 어원을 알 수는 없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다음 해인 1447년에 집필된 불경 언해서 《석보상절(釋譜詳節)》에도 ‘며느리’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는 알려져 있으나, 더 이상의 추적은 쉽지 않다.


역사 속에서 며느리들의 시집살이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고초 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 당할 소냐. 열두 폭 다홍치마 눈물 받아 다 썩었네’라고 하는 가사의 민요도 존재하고,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같은 속담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유행했다.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와 시집살이를 하나의 공식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며느리들도 구전의 형태로 다양한 불평불만을 표현해왔다. 더불어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 숙종 때 학자 권두경의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등을 살펴보면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인자하고 온후하게 대하는 것이 법도이며, 딸과 다름없이 아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사위는 어떻게 생긴 단어일까? 가장 기본적으로는 딸의 남편을 일컫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 싸회, 사휘’ 등으로 쓰이기도 했고, 한자어로는 서(壻), 여서(女壻), 서랑(壻郎), 서생(壻甥), 탄복(坦腹)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중 탄복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중국 왕희지의 이야기인데, 진(晉)나라 극감(郤鑒)은 왕씨 집안에서 사윗감을 고르고자 했다고 한다. 다른 자제들은 들떠 있었는데 홀로 태평하고 천연덕스럽게 무관심해 보였던 희재. 그런데 극감은 그러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딸을 시집보냈고, 이후 사위를 탄복이라 불렀다는데….


사위에 대한 속담도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말로는 ‘사위는 백 년 손이요, 며느리는 종신 식구이다’라는 것이 있다. 사위는 한평생을 어려운 손님으로 맞아주고, 며느리는 죽어도 내 집 식구라는 의미이다. 


더불어 인연이나 관계가 멀어져 정이 끊어진 경우도 사위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고 한다. ‘미운 놈 보려면 딸 많이 낳아라’ 하는 말은 사위를 보려면 보기 싫은 것도 많이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위에 대한 인식은 며느리에 대한 인식과는 달랐다는 점이 느껴진다.




며느리의 반란, 고개 숙인 사위    

 

바야흐로 며느리 반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올바른 권리 찾기를 생각한다면 수도 없이 박수를 쳐줄 일이다. 명절 때마다 이런 대화가 자주 오고갔던 기억이 난다.     


“아주버님, 술상 봐드릴까요”
“어머니, 아직 전을 덜 부쳤는데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거 같아요.”
“동서, 어서 슈퍼 가서 밀가루 좀 사와. 빨리 빨리.”     


부산스러운 가운데 오고가는 대화였는데 그 와중에 남자들은 TV를 보거나 화투를 치며 언성이 높아지는 극한의 분위기만 연출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달라졌다. 우리의 어머니, 즉 누군가의 며느리들은 술상 차리기를 거부했다. 


전은 남자도 부칠 줄 아는 거라며 부엌에 틈새 공간을 마련했다. 잔심부름은 남자도 갈 수 있는 거라며 TV 좀 끄거나, 화투를 그만하라고 조곤조곤 이음새 있게 말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은 망설였지만, 그 아들의 아들은 보고 듣는 바가 있었다.     


“어머니가 맞는 말씀하셨네. 기분 좋은 명절에 술은 무슨 술이에요.”
“작은아버지가 안 하실 거면 제가 한번 해보죠. 요즘은 이런 거 못 하면 결혼도 못 하거든요.”
“운동 삼아 심부름 좀 다녀오세요. 아버지.”     


일절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 최근에 자주 연출되고 있다. 가족이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차오르는 변화가 시나브로 이어진다.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명절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분명히 있다.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다. 이것이 결코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는 조화를 중요시하는 학문이기에 한쪽으로 치우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여 지금은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져버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먼저 따뜻하게 다독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은 이를 본받으려 하지 않을까. 어색하고 괜히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마음가짐이라면 충분히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공경을 받고, 존중을 받고, 배려를 받고 싶다면 말로만 할 것이 아니다. “요즘 것들은 말이야, 쯧쯧.” 이렇게 말하는 어른은 결코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한다. 대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왜 저러는 걸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십중팔구 어린 시절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셨을 것이다. 스스로를 꼰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마흔 정도 되면 부모님의 몸이 조금씩 아파올 때이다. 그러다가 욕심이 과해지면 재산에 눈이 멀어 탐욕적인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이도 있다. 그러면 그 모습을 그대로 자녀들이 보고 있을 텐데 똑같이 배워서 행동하지 않겠는가. 부모님께 따뜻하게 잘하는 모습을 본 자녀가 조금이라도 효도하려고 애쓰지 않겠는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보면 딱 맞아떨어진다. 굳이 효도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 없다. 말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인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마흔인 나는 아직 미혼(가끔은 비혼 선언을 할까 고민 중이기도 하다)이라 결혼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리지 못했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결혼, 진짜 해야 하는 거야’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이라고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결혼이라면…’ 하는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둘만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엮여 있는 사람이 워낙 많지 않은가. 명절 때마다 툭툭 한마디씩 건네는, 얄밉기 그지없는 친척들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도 결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주던 혜택을 인정사정없이 팍팍 줄여버렸으니 더욱 신경 쓰이기는 한다. 


결혼, 꼭 해야 하는 것인가. 만약 한다면 내가 그 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까? 어느 날 명절 상여금으로 100만 원을 받았다고 하자. 이번에는 정말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올 마음이 가득했을 때 나 혼자였다면 마음의 짐이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있다면, 상여금으로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 상대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분명 망설일 것이다. ‘우리 부모님만 보내드리자고 하면 큰일 날 텐데. 그렇다고 몰래 보내드릴 수도 없고.’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죽자고 싸우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상황이 불효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더불어 더없이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며느리, 사위 문제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지금의 나여서 마음이 놓인다. 결혼, 효도, 가족, 명절, 며느리, 사위, 장인어른, 장모님… 머리 아프다. 아니, 아직은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어서인지 ‘강 건너 불구경’이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아버지가 늙으면 제가 써야지요”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노오로 이급인지로 유오유 이급인지유


天下 可運於掌.

천하 가운어장.


(뜻풀이)

내 집안의 어른을 어른으로 섬겨서 남의 어른에게까지 미치며, 내 집안의 어린 아이를 사랑해서 다른 사람의 어린 아이에게 미치게 한다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움직일 수 있다.
                                                                           — <양혜왕 上> 


                                                                                                                                               @ cocoacheese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영등포 교보문고 북콘서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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