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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01. 2019

[4]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지 않으려고

 새벽이다. 눈을 뜨고 새벽임을 알았을까,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는데도 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지금은 아마도 새벽 5시 30분일 테지.’ 알람은 분명 5시 40분에 맞췄는데 어느 날부터 무조건적으로 부스스 눈이 떠진다. 무려 10분을 더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40분에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일어나야 한다. 


그 10분 동안 온갖 생각들이 씨줄날줄처럼 얽히고설켜 새벽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솔직하게 말해서 기분 좋게 짓누른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숱하게도 외쳤던 그 말, ‘카르페 디엠(Carpe Diem, Seize the Day)’. 오늘도 어김없이 속으로 외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휴! 




39분 50초 정도 되었다고 느껴지는 찰나에 겨우 이불킥을 소심하게 날리며 일어난다. 그래도 여전히 꾸물거린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온 우주가 힘을 합쳐 나를 ‘중력*1,000,000,000배’의 힘으로 내리누르는 것만 같다. 우와, 도저히 ‘벌떡’ 일어나지질 않는다. 


회사원이라는, 나를 지칭하는 용어가 바뀌면 모든 것을 다 잘해낼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 현실과 판타지는 분명 다른데 말이다. TV 속에서는 어찌 그렇게도 아침만 되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슝 일어나서 출근하는지.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 님은 완벽하게 칼기상, 칼출근, 칼점심, 칼퇴근을 하며 칼 같은 나날들을 보내는지. 


나는 오늘도 눈이 떠지는 그 순간만 칼 같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하니 기분은 왜 이렇게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기만 하는 것일까.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다. 양치를 했다. 세수를 했다. 옷을 입었다. 어머니께서 아침 먹고 가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신다. 하지만 먹고 간 적은 없다. 지난 몇 주간….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내 표정을 보신 어머니는 더 채근하지 않으신다. 




출근하는 첫 날에는 맛있게 먹었다. 주말드라마 포스터 속 행복한 가족의 여느 아침과 다름없었다. 아침 뉴스를 보시다 식탁으로 건너오신 아버지, 국그릇을 옮기며 미소가 끊이지 않던 어머니, 주먹을 불끈 쥐며 “회사 열심히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할 것만 같은 오그라드는 나. 건강에 좋다는 현미밥에서 유난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불고기는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미역국은 뱃속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머니는 비타민까지 챙겨주셨다. 이렇게 매일 먹어야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소화불량이 오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직장인의 리얼 라이프였던 것이다. 둘째 날부터는 출근하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눈길이 뒤통수를 타고 어깨로 내려앉았다. 죄송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어제는 회식 마치고 몇 시에 집에 도착했더라? 그나마 요즘엔 회식이 목요일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금요일에는 조금 여유를 부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집에 도착했을 때가 거의 새벽 1시였으니. 그것도 나는 신입이라 먼저 일찍 들어가라고 나름 배려해주셔서 그때쯤 들어왔다. 집에 와서는 역시나 바로 기. 절. 


팀 내 다른 분들은 좀 더 늦게까지 계셨을 테니 다들 지각하시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우리 부서에 어기적거리며 들어섰다. 그런데 난 바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들 나보다 먼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게 뭐지?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무시무시함. 게다가 표정도 더없이 밝았다. 늦게까지 회식을 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만 쓰러질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박 차장 이하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괜찮은 거죠? 조심히 잘 들어갔죠? 가볍게 한잔했으니 오늘도 열심히 해봅시다.” 오늘은 분명히 금요일이다. 요일이 주는 분위기만으로도 조금은 처져 있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조금은 딴 생각을 가져도 되지 않은가? 조금은 밍기적거려도 문제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 빼고는 아닌가보다. 아니면 ‘조커’를 능가하는 포커페이스의 소유자들일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일이 많아서 ‘월화수목금금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마음가짐부터가 토요일과 일요일은 없다는 느낌이다. 늘 한결같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직장인’이라고 하는 것일까? ‘회사원’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회사를, 사회를 쉽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회사가 싫어 죽겠다는 생각 때문에 ‘싫어증’에 걸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희망이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무를 다하면서, 권리를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판단.


모두들 회사 다니기 싫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다닌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고통이겠는가. 조금만 더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고, 그보다 더 잘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득이 아닐까 싶다. 같은 팀에 있는 이 분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날을 무사히 보내는, 아니 치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제부터 말할 수 있겠다. 오늘부터 나는 진짜 직장인이 된 것이다. 다녀야만 하는 회사에서 진정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겠다. 마구 흩어져 있는 퍼즐의 첫 번째 피스를 끼워 맞춰 넣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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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가슴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조금함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긴다.
- 김수환 추기경     


가톨릭 사상 최초 한국인 추기경이자 선종 당시 추기경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추기경이라는 기록이 있는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인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과 민주화 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우리 시대 지도자 중에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시대 당시, 동성상업학교 재학 시절, ‘천황 폐하의 생신을 맞이하여 황국신민으로서 소감을 쓰라’는 윤리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그러므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당당함과 대범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여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특히 민주화 운동 당시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며,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고 외쳤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2009년 2월 향년 88세로 떠나면서도 “그동안 많이 사랑 받아서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라며 자신을 더없이 낮추었던 그 분의 모습을 통해 ‘진짜’ 내가 누구인지,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나답게 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가장 현명하게 행동하는 법, 그러한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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