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9

삼국통일의 시대 4 ―(안시성 전투, 양만춘, 그리고 연개소문)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9

― 삼국통일의 시대 4 ―

(안시성 전투, 양만춘, 그리고 연개소문)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과 전투가 있다. 그중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을 흔히 ‘3대 대첩’이라 부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안시성전투' 역시 규모와 전투 의의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영향력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고구려 국경에서 침공을 막아낸 전략적 승리

안시성전투는 20만 당군 침략을 국경선 일대에서 초전에 차단한 전투였다. 즉, 적이 국토 깊숙이 난입하기 전에 막아내어 고구려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 자체 봉쇄했다.

반면 3대 대첩들은 대부분 적이 이미 국내 깊숙이 침입한 뒤, 혹은 후퇴 과정에서 이루어진 전투였다. 이 점에서 안시성전투 방어 성격은 훨씬 더 선제적이고 전략적이었다.

2. 중국 황제 ‘당태종’이 직접 지휘한 20만 대군을 3개월 버텨낸 전투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사에서 보기 드문 명장으로 꼽히며, ‘정관의 치’를 이룬 중국 역사상 최고 '명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 황제가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3개월 동안 공략했음에도 끝내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한 유일한 전쟁이 바로 안시성전투이다.

당 태종이 직접 참여한 대규모 전쟁이라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그 상징성과 의의는 매우 크다.

3. 3개월에 걸친 장기 공방전에서의 고립 방어

안시성은 외부 지원 없이 3개월을 버텨냈다. 보급도 어려운 고립된 성이 초대형 제국군을 상대로 장기전을 치러 승리했다는 점은 한국사 어느 전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따라서 사망자 규모만 보면 3대 대첩에 비해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전략적 결과와 파급력에서는 ‘4대 대첩’에 포함되어도 무리가 없다.

5. '양만춘', 실존 인물이었는가?

흔히 안시성 성주로 알려진 '양만춘'은 오늘날 대중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으나,

실제 역사기록에서는 존재가 불확실하다.

중국의 '구당서', '신당서' 등 안시성전투를 상세히 기록한 당나라 사서에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에도 언급이 없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고려·조선 시대의 문학작품과 민간전승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영웅화되었다.

즉, 양만춘은 실제 역사기록 보다 후대 문학적 창작과 전승에 의해 형성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6. 연개소문 역할과 ‘영화 안시성’ 설정 문제

'영화 안시성'은 양만춘과 연개소문을 극적으로 대립시키고, 연개소문이 양만춘 암살자를 보낸다는 설정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허구이다.

연개소문이 안시성 공격했다거나 성주를 암살하려 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오히려 연개소문은 고구려군권을 장악한 최고실력자로서 요동방어 전체를 총괄하며 전략을 지휘한 인물이었다.

안시성은 서북부 방어선의 핵심 요충지였으며, 연개소문이 성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중국 측 기록에서도 당군 패배한 책임과 고구려 승리 배경에서 연개소문이 중심인물로 인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중국 경극 속 ‘연개소문’ 이미지

중국 전통 경극에서도 안시성 전투는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독목관(獨木關)’,

‘어니하 (淤泥河)’와 같은 작품에서 연개소문은 당태종을 압도하는 거대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장창을 휘두른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크게 꺾는다.

달아나는 당태종을 구해내는 인물이 바로 ‘설인귀’다.

중국 민간전승에서 설인귀는 당태종 패배 상처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영웅 이미지로 나온다.]

이처럼 중국인들조차 안시성전투 주인공을 양만춘이 아닌 연개소문으로 기억해 왔다.

당태종이 유일하게 완전히 패배한 전투였기 때문에 그 충격과 상징성은 더욱 컸다.

8. 마무리

정리하자면, 안시성 전투는

당 태종이 직접 지휘한 최대규모 침공을 막아낸 전투였으며 고구려 국경방어 전략 핵심이었다.

안시성전투가 장기간 고립방어 끝에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이다.

또한 양만춘은 역사 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후대 전승 속 상상의 인물이었을 비중이 크고, 중국과 우리 기록 모두에서 안시성전투 주인공으로 연개소문 이 더 핵심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다음 글에서는 안시성전투의 세부 전개 과정을 이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 초롱박철홍 ―

(두 번째 사진: 중국 경극 속 연개소문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