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3

남북국 시대 4 ㅡ(통일신라 시대 1)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3

ㅡ 남북국 시대 4 ㅡ

(통일신라 시대 1)


먼저 ‘통일신라’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러 이견이 존재함을 밝혀 두고자 한다.


우리는 초·중·고 학창 시절, 신라가 676년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 라는 점에서 이 시기를 ‘통일신라’로 배우며 그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받아 왔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이전과 달리 한반도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에서 ‘통일신라’라는 명칭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발해 존재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남북국 시대론>이 부상하면서, ‘통일신라’라는 용어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발해사 연구자 '한규철'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668년부터 발해가 건국되는 698년까지의 약 30년간에 한해서만 ‘통일신라’라는 용어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시기에는 한반도와 요동일대에 신라 외에 병존하는 통일왕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해가 건국된 698년 이후에는 ‘통일신라’라는 명칭에 단호히 반대하며 대신 ‘대신라'(大新羅)라는 호칭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또 다른 일부 역사학자들은 삼국 통일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가 아닌 ‘후기신라’로 부르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1980년대까지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통일신라’라는 용어 보다 현재 학계에서는 <남북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이 점차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나 또한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통일 이전 '신라'와 구분하기 위한 편의상 본 글에서는 기존에 익숙한 명칭인 ‘통일신라’를 사용하고자 한다.


통일신라는 제29대 '태종무열왕'부터 제51대 '진성여왕'에 이르기까지 약 220여 년간 존속하였다.


676년 '나당전쟁'이 종결된 이후, 수백 년간 지속된 대규모 전쟁이 사라지면서 한반도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비교적 안정된 평화기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겉보기엔 평온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부 갈등은 피할 수 없이 누적됐다.


이 시기는 다시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한 ‘중대’와, 귀족 간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진 ‘하대’로 구분된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 내부에는 고구려계· 백제계·말갈계 등 다양한 종족 집단이 공존하였다. 신라는 이들을 통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봉건적 성격에서 벗어나 점차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 이행하는 등, 삼국시대 신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적 성격을 보이게 된다.


통일신라는 완전한 의미 통합국가 아니었으나, 한반도 역사상 최초 단일국가 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고대국가 성격과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중세국가 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함께 보여 주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는 삼국 시대를 ‘고대’, 고려 이후를 ‘중세’로 구분하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통일신라를 고대에 포함시킬 것인가, 중세 시작으로 볼 것인가 대해서는 학자들 간 견해가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고대국가’로 분류하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통일신라가 지닌 대표적인 고대적 요소는 폐쇄적인 '골품제'였다. 이 제도는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었고, 특히 6두품을 중심으로 한 지방호족세력 성장과 반란은 국가분열과 몰락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유민통합을 이룬 '신라'와,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고려'를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 학자들은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고려의 성립을 우리 역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구분하는 분기점으로 본다. 이에 따라 통일신라 시대는 고대에서 중세로 이행하는 전화기적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비교적 지금까지도 ‘통일신라’라는 명칭이 공식적 사용된 배경에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통일'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강조하려는 국가적· 사회적 인식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라는 약1,000년에

걸쳐 존속한 세계사적으로도 손꼽히는 장수 왕조였다.


한편,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고대국가들 국호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명칭과는 차이가 있다.


‘고구려’는 '장수왕' 대에 국호를 ‘고려’로 변경했으나, 왕건이 세운 고려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후대에서 ‘고구려’로 통칭하고 있다.


‘고조선’ 역시 본래는 ‘조선’이었으나,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발해’ 또한 건국 초기에는 '진(대진국)’ 이었으나, 현재는 편의상 ‘발해’로 통일해 부른다.


신라 역시 초창기에는 ‘사로국’ 등 여러 명칭을 사용하다가, 제22대 지증왕 대에 이르러서야 ‘신라’라는 국호가 확립되었다. 그럼에도 역사 서술에서는 편의상 초기부터 ‘신라’라는 명칭으로 통칭한다.


통일신라 시대는 정치·경제·사회· 문화 전반에서 커다란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대부분을 지배하며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고, 왕권강화와 관료제정비를 통해 효율적인 행정체계를 구축하였다.


2. 삼국문화가 융합되며 독창적인 통일신라 문화가 꽃피웠고, 불교문화의 전성기를 맞아 석굴암· 불국사·첨성대·성덕대왕신종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창조되었다.


3. 당나라·일본·서역과 활발한 교류 속에서 문물과 기술을 수용하였으며, '장보고'가 설치한 완도 청해진은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4. 골품제를 중심으로 한 신분 질서는 유지되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그 한계가 노출되었고 지방호족 세력이 성장하며 중앙 권력에 도전하였다.


5. 전쟁 없는 평화 속에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조세제도 정비와 함께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통일신라는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간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으며, 지방 호족의 반란이 빈번해졌다.


결국 이러한 혼란 속에서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가 등장하며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합 하면서 통일신라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한반도 역사는 본격적으로 중세로 진입하게 된다.


통일신라 시대는 삼국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가 정착된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로 평가된다.


이어서 통일신라 시대의 주요 왕들과 그 업적을 살펴봅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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