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내일부터 방학이야!”
요즘 초등학교의 겨울방학은 봄방학까지 합쳐서 두어달의 긴 기간을 겨울방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사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이라고 하면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시어머님께서 아이들의 겨울 방학 동안 주중에 우리 집에 와서 지내다가 금요일에 집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사실 시어머님이 집에서 오래 머무신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어린이집 겨울방학, 유치원 겨울방학에는 어머님이 오시기도 하셨고, 시댁으로 아이들을 며칠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클수록 장난감도 없는 할머니집보다는 우리 집으로 어머님이 오시는 것에 아이들도 어머님도 더 나아 보였다.
사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면 이제 방학에 어머님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초등학교의 방학은 여름방학은 최소 2주, 겨울방학은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두달이었다. 방학이라고 어디에 더 가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초롱이의 점심이었다.
이제 막 1학년이 된 초롱이에게 매일 집 앞 쌀국수수집에 가서 사 먹으라고도 할 수 없고, 매일 배달을 시킬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어머님 찬스를 쓰기로 했다. 어머님은 두어달의 긴 기간이지만, 흔쾌히 초롱이를 챙겨주러 오신다고 하셨다.
대신 어머님이 와 계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버님은 혼자 식사를 챙겨 드셔야 하기에 우리는 일요일 저녁에는 어머님을 모시러 가면서 아버님과 함께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오곤 했다. 아버님도 아이들과 함께 매주 저녁을 먹는 것은 너무나 좋아하셨다. 그렇게 어머님 방학찬스가 시작되었다.
“할머니, 저 아침에는 계란국이랑 먹고 싶고요, 점심에는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
“그리고 할머니 저 저녁에는 된장찌개랑… 또 이것도 저것도 먹고 싶어요!”
할머니에게 다음날 먹고 싶은 것을 조잘조잘 대는 초롱이를 보며 어머님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으셨고, 초등학생인데 할머니 입맛이랑 같다며 좋아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초롱이는 나물과 찌개, 국을 좋아하는 한식 파라서 할머니와 함께 방학 내내 밥을 먹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소시지나 스팸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초롱이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은 무엇이든 엄지 척을 내보이며 너무 맛있다고 한 그릇씩 뚝딱뚝딱 비워내었다.
어느 할머니가 이런 손녀의 모습을 보고 오고 싶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초롱이의 립서비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할머니, 이것 어떻게 한 거예요? 엄마랑 아빠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할머니, 저 내일 또 먹고 싶어요, 내일 또 해주세요!”
이렇게 밥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연신 숟가락을 크게 입 안으로 넣으니 할머니는 연신 웃으시며 좋아하실 수밖에.
어머님이 오시면 사실 초롱이의 점심과 퇴근 후, 우리의 저녁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나는 너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롱이가 점심을 먹고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저녁때까지 혼자서 집에 계셔야 하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혹여 정리가 안되고 정신없는 나의 책상과 아이들의 책상, 책장을 보고 뭐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지, 베란다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나, 집안 곳곳 지저분한 곳은 없나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전에는 빨래를 건조기에 돌려놓고 출근했다가 저녁에 꺼내어 개곤 했는데, 빨래를 어머님이 심심하다고 건조기에서 꺼내어 개어주시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퇴근 후 피곤해도 건조기까지 돌려 빨래를 다 개어놓고 잠을 자야 했다. 남편과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인 육퇴 후 OTT 시리즈보기도 혹 TV 소리에 어머님이 깨실까 봐 신경이 쓰이는 둥, 내가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더 신경 쓰면서도 초롱이가 아직 어리기에 어머님 찬스가 필요한 것을 너무 잘 알아서, 조금 짜증 나는 일이 있더라도, 몸이 피곤하더라도 어머님이 계시는 기간에는 늘 평소보다 오버해서 목소리톤을 높이곤 했다.
“엄마, 갑자기 왜 그래? 엄마 이상해!”
‘그래, 엄마도 알아! 엄마도 이상한 것 아는데, 이제 그만 얘기해 줄래!!!!!!!’
이렇게 눈으로 아이들에게 레이저를 발사하면서 말을 해도 아이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척 말한다.
“할머니, 엄마가 이상해요, 갑자기 막 친절하게 말해요!”
이럴 때는 정말 엄마가 그리웠다. 그리고 엄마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회사에 다녔으니 아마도 워킹맘 1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일하는 엄마가 거의 없었기에 주위에 도움을 주거나 받을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학교 후에 시간을 학원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내 기억에 그 당시에는 학원이라고 해봐야 피아노와 미술, 태권도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주위에 방학이라고 우리의 점심을 부탁할 상황도 아니었으니, 엄마도 아직 어린 우리의 방학이 늘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한줄기 빛은 바로 이모였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나 역시 겨울방학에는 할머니 같은 셋째 이모의 손에 자랐었다. 이모는 7남매 중 막내인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거의 할머니뻘이었다. 그 당시에 셋째 이모는 엄마와 나이차이가 20살이 넘게 났으니 이모는 우리를 조카라기보다 손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일본말을 잘하셔서 경주에서 일본 관광객 상대로 면세점 같은 곳에서 일을 하셨었다. 그렇게 활동적이시던 이모에게 엄마가 SOS를 친 것이다. 이모는 손녀뻘의 조카가 귀여워서 하던 일도 그만두고 한달음에 달려와주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젊은 엄마도 아마 아빠의 눈치를 많이 보았을 것 같다. 아무리 우리를 돌봐줘야 해서 불렀던 언니였지만, 친정엄마뻘인 처형이 와 있으니 아빠도 불편했을 것이고, 성격이 보통은 아니었던 아빠의 불편과 눈치를 참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모가 불편하진 않을까 신경 써야 했던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나도 초롱이처럼 늘 말하곤 했다.
“이모, 엄마가 해주는 국은 맛이 없어! 이모가 새우국 끓여줘!!”
“이모, 오늘은 간식으로 도넛 만들어 줘!!!”
“이모는 왜 이렇게 음식을 잘해? 너무너무 맛있다! 이모 가지 말고 우리랑 평생 같이 살아요!!”
초롱이를 보니, 그 시절 조잘거리는 내가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속상하다.
그 시절의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이미 너무 잘 하고 있어! 그리고 너무 고마워!"